머리숱 부자가 전문가를 대하는 자세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어느 누구보다 많이 가진 게 딱 하나 있다. 우리 동네 머리숱 1등이다. 수많은 미용실을 거쳐오며 숱이 많다는 것은 알아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굳이 원한적도 없지만 어디 가서 1등 해보겠냐는 말이지. 숱 적은 사람보다 4배쯤 많은 것 같다. 조선시대 숱이 많은 남자들이 상투가 너무 커져서 속 알 머리를 밀었다(배코 치기)는 이야기를 듣고 배꼽 빠지게 웃다가 엄청 공감하고 있는 내가 웃프다.
그나마 출산 후 많이 빠져서 이 정도인데, 그동안 더 빠져도 되겠다는 소리를 꽤 많이 들어왔다. 그만큼 품도 많이 들고 약품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들어가니 그런가 보다. 한 가지 억울한 건 얼굴 앞쪽은 휑 비었고 뒤쪽만 그렇게나 많다는 거다. 숱이 적은 것보다야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얼굴과 만나는 헤어라인은 텅텅 비어서 화장할 때 흑갈색으로 빈 곳을 채우곤 한다. 속눈썹도 좀 길고 풍성하면 좋으련만 머리카락만 그렇게 많다.
미용실 원장님 말씀처럼 신은 공평하다고 숱이 많은 만큼 새치도 많다. 유독 헤어라인 쪽만 하얗게 샜다. 미래에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거지 지금부터 할머니 같아 보이고 싶진 않다. 2주만 지나도 이마 쪽과 귀밑 머리 쪽이 허예지니 한 달에 한번 꼬박꼬박 미용실에 간다.
새치 때문에 머리색은 변화를 줄 수가 없으니 항상 비슷한 머리를 하고 있다. 지금 이 머리가 베스트임을 알기에 불만은 없지만 가끔씩 지겹기도 하다. 어쩌다 단발머리를 하고 예뻐진 사람들을 볼 때면 너무 부럽다. 왠지 상큼해지고 가벼운 느낌에 무엇보다 머리 감고 말리기가 편해 보여서 꼭 그렇게나 유혹에 넘어간다. 그리고 항상 결과는 실패다.
숱이 이렇게나 많은 건지는 예전에 단발머리를 해보고 제대로 깨달았다. 따라 한다고 숱 많고 반곱슬인 사람이 층 내지 않은 칼 단발을 해달라고 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초코송이 삼각김밥이 되어버렸다. 피부색, 모질, 모량, 모근 방향, 얼굴형, 키 등을 고려한 헤어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왜 뜯어말리지 않으셨나요. 그랬다면 사진첩 안의 흑역사는 사라졌을 텐데. 다시 기르느라 한참이 걸렸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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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책 <인생에 고민이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에 수정, 보완 되어 실렸습니다^^
책에서 만나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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