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향기 Jul 06. 2023

산행

초록숲(편안함)

 산을 좋아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발령 초기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직원 여행을 자주 갔다. 주로 방학하는 날이었고 때로는 방학 중에 가기도 했다. 그때는 직원 여행에 빠지는 것을 교사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리자들이 많아서(조직의 단합을 해치는 사람 취급) 어린아이도 없고 자유로운 아가씨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직원여행의 코스 중엔 등산도 꽤 있었다. 모든 아가씨 선생님들이나 젊은 30대 선생님들은 산행을 거부하곤 했다. 산 초입에서 그냥 차를 마시곤 했는데 나는 어른들과 함께 꾸역꾸역 산에 올랐다.


  숨이 차오른다. 그래도 좋다. 어떻게 오른 산인데 끝까지 가야 된다. 때론 산을 정복해야 될 공부처럼 대한다. 끝까지 못 가면 지는 거야. 산이랑 싸울 기세다. 차오르는 숨을 물 한 모금으로 내린다. 다른 아가씨들은 아무도 오르지 않는 산을 오른다고 예뻐해 주시는 선배님들 사이에서 괜스레 뿌듯함도 느낀다. 산정상에 오른 내가 대견하다. 온 산을 내가 다 품은 느낌이다. 드디어 정복했다. 어릴 때의 내 산행 모습이다. 지금은 다르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의 내가 산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잡념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걸으면 모든 상념이 사라진다. 발 밑에 차이는 돌은 말 그대로 그냥 돌일 뿐이고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들은 그냥 나무일뿐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도 그냥 물일 뿐이다. 돌, 나무, 계곡물을 보며 생각에 잠길 이유가 없다. 사물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발바닥이 아프도록 걷기만 하면 되는 게 산행이다.

  생각을 하기엔 다리가 아프고, 숨이 너무 차고, 남은 거리가 아찔하다. 앞서 가는 사람들의 빠른 발검음만 눈에 보이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기에 바쁜 그런 게 산행이다. 모든 생각을 없애버리는 게 산행이다.

   

  생각을 없애버리는 산이 좋다.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산이 좋다.

  나의 도전을 말없이 받아주는 산이 좋다.

  같이 간 사람과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는 산이 좋다.

  걷다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내려와도 비판하지 않는 산이 좋다.


  정상에 올랐을 때 뿌듯함이 좋다.

  산 곳곳의 초록빛 싱그러움이 좋다.

  여기저기서 귀엽게 튀어나오는 다람쥐도 좋다.

  힘들다고 투덜거려도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묵묵한 산이 좋다.

  초록빛 맑음으로 나를 비판 없이 온전히 받아주는 그런 산이 좋다.



 남편은 산행을 싫어합니다. 땀도 유독 많고 걸음도 느립니다. 산에서 미끄러지기도 잘합니다. 왜 미끄러졌냐고 묻습니다.

 "아름다운 당신 뒤태를 보느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사람을 놀립니다.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다.

 

    

  

  

이전 03화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을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