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경가소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by 미라쌤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자는 마음을 먹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과거의 습관은 쉽게 바뀌질 않았다. 자꾸만 다시 가면을 쓰려는 나를 만났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값비싼 물건을 가지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내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끊임없는 의구심이 올라올 때 나는 수행을 만나게 되었다.

수행이라고 말하니 거창해 보인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에서 황장군 역할을 맡은 신현준이 생각난다. 무릎 꿇고 온몸으로 눈을 맞으며 밤새 한 여자를 기다렸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사랑을 받아줄 때까지 천년이고 만년이고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비장한 마음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수행은 왠지 밥도 굶고 추위도 참고 졸음도 참아야 할 것처럼 보인다. 종교인들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인내심을 요하는 행위로 깨달음에 다가간다. 그래서 감히 내가 수행자입니다 라는 것이 부끄러울지 모른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다. 속세에서 살아가고 있다. 스트레스받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이들과 매일 마주친다. 아무런 이유 없이 길거리의 고양이나 비둘기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로에서 칼치기로 내 차를 위협하는 사람, 더 크게는 묻지 마 폭행까지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무시무시하고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최대한 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큰 이해심으로 그들의 행동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흘려보내야 한다.


나는 이게 바로 수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속세에서 수행하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다. 특히 나처럼 과거에 감정이 왔다 갔다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었던 사람들이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과거에 미친 원숭이처럼 감정이 날 뛰었던 나의 모습에서 현재의 평안함으로 바뀌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뇌의 신경가소성이다.


뇌는 신경가소성으로 바뀔 수 있다

나의 얼굴은 아빠를 닮았다. 시원한 이목구비 중 특히 큰 눈이 매우 닮았다. 성격은 엄마를 닮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믿는 순수함과 시장에서 물건 깎아달라는 말을 두 번은 고민해야 하는 소심함이 있다. 나의 손톱은 외할머니를 닮아 뭉툭하다. 노트 정리를 하고 있으면 남자애들이 와서 어떻게 그 손톱으로 글씨를 쓰냐면서 놀렸고 심지어는 너 손톱 잘린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듣고 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엄마 아빠는 안 그러는데 나만 손톱이 못생겨서 한동안 외할머니를 원망했었다.


이렇듯 내 몸과 마음은 전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것이다. 당신도 그러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나의 외모와 성격이 정해진 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 살면서 조금씩 사회 능력치가 올라가고 성형수술로 다른 사람인 듯 바뀌어 보일 순 있지만, 뿌리는 여전히 나 자신이다.


만약 소심한 사람에게 당장 내일 수천 명이 있는 공연장에서 진행을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무대에서 소변을 볼지도 모른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큰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인기 국민 진행자인 유재석 씨는 카메라 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인 시절에 말을 더듬고 버벅 대는 영상이 올라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지금의 유재석 씨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진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진행자가 꼭 되어야겠다는 결심과 ‘동기들은 잘 나가는 데 왜 나만 이럴까’ 하는 좌절감이 있었던 무명시절의 서러움이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타고난 성격은 바꾸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뇌에는 신경가소성이란 게 있다. 가소성은 쉽게 말하자면 플라스틱 같은 고체가 열이라는 외부의 힘을 받으면 휘어지게 된다. 휘어진 형태로 놔두면 그 플라스틱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굳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가소성이다. 이렇듯 뇌에는 신경가소성이 있다. 뇌의 신경세포는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한다. 신경세포는 각기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신경회로와 외부의 자극이나 경험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화되고 재조직된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려면 성격을 고치려는 욕심은 버리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몸인 뼈에도 가소성이 있다. 멀쩡했던 척추가 어느 날 병원에서 척추 옆 굽음증(척추측만증)으로 진단받는 이유가 이것이다. 뼈도 휜다. 내가 앉고, 걷고, 자는 습관에 따라 바뀐다. 이렇듯 몸과 마음에는 가소성이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뇌가 변화하고, 움직이는 습관에 따라 몸이 바뀐다.


나는 이러한 몸과 마음의 가소성을 알고 난 뒤,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내 삶의 가이드라인을 잡았다. 내가 하는 생각 하나하나가 세포에 새겨지고 몸과 마음을 변화하게 만든다. 좋은 생각을 계속해야 내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의 뿌리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외로워질 것이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천일을 넘어 꾸준히

나는 좋은 생각하는 법을 천일동안 수행했다. 수행하는 동안 참 많이 흔들렸다. 화내고 싶은데 화를 왜 참아야 하며, 내 마음대로 망가지고 싶은데 왜 절제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올라와 힘들었다. 예전의 습관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 멋대로 하고 살았던 서른 살의 내가 나왔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 괴로웠기에 죽음이 오히려 쉽게 다가왔던 나였다. 과거의 내가 자꾸만 튀어나오려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네가 그랬구나. 네가 지금 이거 하고 싶구나. 하고 싶은데 마음이 요동을 치는구나.’ 하고 바라봐주었다. 가소성을 바꾸는 단계에서 감정을 바라봐주니 내 마음은 더 이상 난리 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3살짜리 어린아이가 먹던 사탕이 바닥에 떨어져서 우는 것과 비슷하다. 사탕을 먹던 즐거움이 없어지니 슬픈 것이다. 내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라면 어떻게 할까? 울지 말라고 다그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공감할 것이다.

“사탕이 손에서 떨어졌구나. 그래서 슬프구나. 이 사탕이 맛있었는데. 그렇지? 그렇구나. 엄마랑 다른 사탕 사러 갈까?” 그러면 아이는 눈물을 뚝 그친다. 알아주면 된다. 내 마음도 아이랑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