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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교육의 방향

학생 한 명을 연구자로 길러내기 위해 어떤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가?

by 권석준 Seok Joon Kwon

한국의 많은 이공계 학부생들은 고등학교 과정까지 대부분 잘 정의된 문제를 풀어내는 연습에 익숙한 상황일 것입니다. 그것은 명문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수능 점수 높고, 좋은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라고 해도, 절대다수는 (체감상 80% 이상?) 스토리가 주절주절 나오는 류의 문제를 만나면 처음에 굉장히 낯설어합니다. 실로 뇌가 얼어버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박사과정 첫 학기, 열역학 과테말라 지열발전소 문제를 해결하라는 문제를 받고서, 30분 동안 문제 description만 반복해서 읽으면서 뇌가 얼어버리는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시험은 망했고요. 그렇지만 굉장히 인상 깊은 시험이었습니다. 실제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렇게 복잡하고 중요한데, 정작 학생들이 배운 이론과 지식은 그것과는 간극이 굉장히 넓다는 것도 절감했습니다.


사실 학부생들이 4년 공부를 마치고 졸업해서 전공 분야든 아니면 유관 분야든 가리지 않고 현업에 나가면 다양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것이 연구 현장이든 산업의 현장이든, 문제가 교과서처럼 정형화되어서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사실 그런 문제는 이제는 엔지니어나 공학자들에게 굳이 비싼 인건비 주면서 해결하게 할 필요도 없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요즘 같은 복잡한 시스템과 환경 속에서, 경쟁이 극심한 필드에 대해서라면 거의 나오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학생들이 학부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이론에 대한 주입식 교육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변 환경을 살펴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취합하여 문제부터 formulation 하는 것이 진짜 프로로서 요구되는 problem skill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학생들, 특히 이공계 학부생들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려면 단순히 주어진 문제를 공식에 맞혀 기계적으로 푸는 것 그 이상을 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과 철학으로는, 제일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론의 철저한 반복 학습과 실습입니다.


1. problem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지식 범위 내에서 'frame'으로 만든다.

2. 그 프레임으로부터 'formulation'을 이끌어 내고, 방정식으로부터 'solution'을 찾아낸다.

3. 솔루션으로부터 결과물을 'visualization' 한다.

4. 시각화한 결과물에 대해 실제 데이터와의 비교를 통해 'feedback'을 받는다.

5. 이를 기초로 당연히 에러가 있을 것이므로, 다시 프레임과 방정식과 솔루션을 다시 정교하게 가다듬는다.

6. 에러가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최적화를 반복한다.


이공계 학부 과정에서 배워야 할 부분은 이런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 죽어라 이론 과목을 배우고 실습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러한 도식을 거쳐 실무 문제 해결 경험으로 연결되게 만드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들의 책무라고 보고요.


결국 학생들이 진짜 익혀야 하는 것은 practice problem solving skill이 아닌, skill for converting situation to problem인 것 같습니다. 일단 problem이 정의되면 그때부터는 목적지가 정해진 셈이 됩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물론 만만찮은 과정이지만, 그래도 다양한 툴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애초에 맵에서 목적지가 어디인지 특정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첨단 GPS와 자율주행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목적지에 당도할 수 없겠죠. 학생들이 정말 익혔으면 하는 스킬은 바로 맵에서 목적지를 찾는 스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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