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늘 질문합니다.
여러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묘사를 잘 하면 좋을 글을 쓸 수 있다'입니다.
글이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소재를 알맞은 흐름으로 엮고 표현해내는 작업입니다.
묘사라고 했지만 묘사 속에는 단순히 외형을 묘사할 수도 있고, 내가 부여한 인상, 다른 사람의 심리묘사까지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묘사하기 연습은 묘사가 좋은 글을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용케도 하나 찾았습니다. Yes24 헌책방에 아이들 책 사러 갔다가 무료로 나눠주는 '채널 예스 5월호'를 얻어 와서 읽었습니다.
큰 느낌없이 흘러 가다가 잡지의 마지막 무렵, '나도 에세이스트' 라는 코너에 어느 대학생이 응모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비 오던 날을 기억해' 이고 글은 김영 이라는 대학생이 썼습니다.
내용은, 이 대학생이 초등학교때 친구들과 관계가 멀어져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비오던 날, 아빠가 우산없이 골목에 나가 비를 맞자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아빠와 딸은 비를 흠뻑 맞고 옵니다. 그리고 나서도 친구와의 소원한 관계, 고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당시 아빠가 먼저 고민을 말하지 않는 딸에게 나름의 방법으로 위로를 해준 것이 아닐까 하고 글을 맺습니다.
이 에세이에서 아빠와 딸이 비를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묘사가 뛰어 납니다. 옮겨 적어 봅니다.
밖으로 나가니 비는 안에서 볼 때보다 더 거세게 내렸다.
나는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비를 마주하고 있었다.
주춤거렸다.
차마 빗속으로 불쑥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아빠는 먼저 걸어 나갔다.
아빠의 머리칼이 굵어지기 시작했고 안경은 수많은 물방울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눈가와 입가에 한가득 주름을 지으며 들어오라고 했다.
시원하다고.
개운하다고.
조심스레 처마를 벗어나자 순식간에 정수리가 차가워졌다.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빗줄기에 몸이 움찔거렸다.
비는 나의 살갗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빠가 말한 시원함이 비의 온도인지, 비의 무게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전문를 읽으시려면 월간 채널 예스 5월호 88페이지를 보시면 됩니다.)
읽을 수록 묘사가 아름다운 글입니다.
묘사가 좋으면 순간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습니다.
비오는 순간, 머뭇거리다 한 발 내딛기까지 저렇게도 긴글로 표현했네요.
오늘 하루 나에게 다가오는 풍경을 묘사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