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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루

집 마당이 목장처럼 변하고 있었다. 엄마와 싸움까지 해가며 암소 한 마리를 수송아지 두 마리와 바꿔 오신 아버지. 자못 신바람이 나셨다. 외양간 바로 앞 마당에 말뚝을 치고 산에서 베어온 소나무 가지에 껍질까지 벗겨 매끈하게 다듬으신다. 거기에다 울타리를 만들어 송아지들을 풀어놓고 키우시겠다는 것이다. 수송아지들을 길들여 이다음에 싸움소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 엄마는 제정신이냐고 악다구니를 쓰고, 그렇게 몇 날 며칠 입씨름을 하다가 일단은 아버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울타리는 기둥을 박고 나무를 덧대고 철사로 묶어 못질까지 해가며 한참이 걸렸다.


송아지 두 마리는 무럭무럭 자랐고 몇 달이 지나자 중소만큼 커졌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지게가 넘치도록 풀을 가득 베어서는 가마솥에 푹 끓여 소들에게 주었다. 짚단 채 던져주거나 찬물을 먹이는 집들도 많았지만 끓여 먹여야 배탈이 없다며 수고로움을 자청했다. 소들을 어루만져주고 털을 빗겨주는 모습은 자식에게 대하듯 다정스러웠다. 소들이 낮에는 울타리에서 자유롭게 지내도록 해주고, 저녁이면 외양간으로 들이셨다.


그런데 친구처럼 잘 따르던 녀석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돌변했다. 고삐 줄을 풀려고 고개 숙이던 아버지의 머리를 뿔로 받았다. 아버지는 “어이쿠” 비명을 지르셨고,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얼른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이마에는 옴폭하게 구멍이 패었다. 뾰족하고 단단한 소뿔이 아버지 이마를 뚫은 것이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럽다며 방으로 들어가서는 누우셨다. 평소에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난 아버지를 다치게 한 소가 너무 미웠다. 작대기를 들고 몇 번 때렸다. 소는 입에 허연 거품을 흘리며 ‘퍼르륵’ 소리를 내더니 눈을 이상하게 치떴다. 그러더니 외양간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얼른 방으로 숨었고 마당으로 나가기가 겁이 났다. 다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버지는 여전히 소죽을 끓여주고 녀석들을 보살피셨다. 그런데 소들은 점점 이상해졌다. 자꾸 뿔로 사람을 받으려 하고 망나니같이 날뛰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도 볼일 보러 면 소재지에 나가시고 집에는 우리 세 자매만 남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묶어둔 고삐 줄이 풀린 것이다.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조심스레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줄을 기둥에 묶으려고 했다. 언니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묶지 않으면 소들이 탈출해 도망갈까 염려스러웠다. 이미 아버지가 뿔에 받혀 다친 것을 봤기에 많이 두려웠지만 용기를 낸 것이다. 줄을 잡고 조심스레 묶으려는 순간 황소가 그것을 눈치채고는 뿔로 나를 받으려고 했다. 난 울타리를 타 넘으려고 했지만 높은 울타리를 바로 넘을 수 없었다. 놀란 언니가 내 팔을 잡아당겨 거꾸로 처박히면서 가까스로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흥분한 황소 한 마리가 드디어 울타리를 뛰어넘은 것이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에 힘깨나 쓴다는 앞집 친구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황소의 거센 힘을 당하지 못했다. 고삐 줄을 잡으려는 오빠가 오히려 황소에게 질질 끌려갔다. 온 마을은 뛰쳐나온 황소 때문에 혼비백산했다. 아이들이나 아낙들은 무서워 집으로 숨고, 마을 청년 몇몇이 힘을 합세해 겨우 소를 잡을 수 있었다. 소는 무엇이 분한지 발굽으로 땅을 탁탁 차기도 하고 발버둥을 쳤다.


결국, 그 소동으로 소들은 소 장수에게 넘겨졌다. 소들이 난폭해져 아버지나 우리 가족만 위험한 게 아니라 놀란 마을 사람들이 당장 팔아치우라고 성화였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소가 미쳤다고 했다. 황소들은 트럭에 태워졌는데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엄마는 그 소들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흥분하면 날뛰는 소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다치게 했던 소이지만 도살장에 끌려간다니 무척이나 가여웠다. 아버지가 정성 들여 키웠기에 더 안타까웠다.


이제 애써 만든 울타리는 무용지물이 되어 뜯어내야 했다. 소똥이 앉을까 봐 풀을 베어서 깔아준 자리는 주인이 없어지니 휑했다. 마치 해일이 일어나 모든 것을 다 휩쓸어 가버린 듯 집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키우던 소를 재산목록 1호로 여기며 언제나 정성을 다했던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 후 다시는 황소를 들이지 않았다. 비어있던 외양간도 머지않아 암송아지 한 마리가 채웠고, 일 년이 지나자 어른 소가 되었다. 근 일 년에 한 마리씩 송아지를 낳아주고 우리 집의 논을 삶고 밭고랑을 켜주었다.


시골에서 소는 단순히 기르는 가축의 개념을 넘어 농사일에도 큰 보탬이 됐다. 다 자란 소는 일소로 길들이는데 소 목덜미에 멍에를 걸어 쟁기와 연결한다. 물론 그 족쇄와도 같은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도리를 치고 뒷발질로 바동거리지만 코뚜레를 바짝 잡아당기면 맥을 못 춘다. 아버지는 고삐 줄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때는 “이랴!”하고, 똑바로 가지 못하는 걸 바로잡을 때는 “어뎌뎌뎌”하며 고삐 줄을 잡아당긴다. 일소가 되는 과정도 가르치는 과정도 힘겹기만 하다. 밭을 갈다가 힘들어지면 소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버틴다. 제자리에서 꿈쩍을 하지 않고 숫제 밭에 주저앉기도 한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소의 입에서는 거품 같은 침이 연신 흘러내리고 왕방울 같은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인다. 더구나 만삭이 다 된 어미 소가 무논을 갈며 가쁜 숨을 몰아쉴 때는 아버지도, 나도, 어미 소도 울었다. 소가 아니면 대신해줄 수 없는 그 일을 안 시킬 수도, 말릴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잔인하기만 했다.


힘겹게 송아지를 낳은 어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송아지의 양수를 혀로 다 핥아주었다. 그렇게 해야 털이 빨리 말라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미는 새끼를 낳느라고 용을 있는 대로 쓰고도 자기가 낳은 태반을 다 먹어 치운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그것을 먹는 것은 일종의 사명 같았다. 태반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키는 모습은 눈물겨웠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하나의 의식이랄까. 다 삼키고 난 소의 커다란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힘겨움에 지쳐서인지 아니면 어미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때만큼 소가 위대해 보인 적이 없다. 어쩌면 모성애는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 지극해 보였다.


애지중지 핥으며 키운 송아지는 젖을 떼면 소 장수에게 팔려 간다. 떠나보낸 송아지는 우리들의 공납금과 육성회비가 되었다. 암송아지 같은 경우는 계속 키워 또 새끼를 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긴하게 돈이 필요하기에 팔 수밖에 없다. 송아지 한 마리가 농가에는 가장 큰 목돈이 되었다. 소에게서 새끼를 떼어놓는 일이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송아지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어미 소의 신경전은 송아지 싫은 트럭이 떠남으로써 종결된다. 하지만 새끼 잃은 어미 소의 슬픔은 오래도록 계속된다. 밤새 송아지를 찾느라고 울부짖고 며칠 동안 여물을 입에 대지 않는다. 나는 어미 소가 울 때마다 팔려 간 송아지가 걱정되었다. 소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온 데 산을 휘감고 돌았다. 나는 소에게 속삭였다. “다음에는 절대 소로 태어나지 마.” 내 말에 어미 소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커다란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십여 년이 지났다. 어미는 송아지가 팔려 갈 때마다 새끼를 찾느라 목이 쉬도록 울었고, 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가슴을 할퀴는 심정은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송아지를 데려다주고 싶었다. 엄마는 “에구 딱하지…….”하며 새끼 잃은 어미 소를 보며 늘 같은 말씀만 되풀이했다. 어미 소도 늙어 더 이상 새끼 낳기가 힘들어질 때 다시 팔려 갔다. 죽도록 논밭 갈아주고 마지막 갈 곳은 뻔하다. 소는 여물 얻어먹는 대신에 인간에게 주고 가는 게 더 많다. 오롯이 다 내어주고 떠난다. 휑뎅그렁한 외양간엔 죽어야만 벗을 수 있는 멍에가 저 혼자 쓸쓸하다.


※ 2020년 동서문학상 맥심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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