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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늘 곁에 있다는 것.

by DesignBackstage

집 근처에는 고속도로를 따라 늘어선 아파트들 사이로 사람 몇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우리 가족은 종종 그 길을 걷곤 하는데, 하루는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가 두리번거리며 질문을 했다.


"엄마, 이 나무들은 산책길을 만들려고 심은 걸까요?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걸까요?", "글쎄, 규칙적으로 심어진 게 아닌걸 보니 이 자리에 있었던 나무들이 아닐까?" "그럼 옆에 고속도로와 아파트 단지도 나무들로 덮여 있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글쎄, 그 했을 수도 있겠다." "음, 그럼 식물들은 영문도 모르고 베인 거예요? 만약에 그런 거라면 좀 너무 한 거 같은데요? 동물도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배웠는데 식물에게는 식물권이 없어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질문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도로나 아파트 같은 시설을 조성할 때, 그 부지에 있는 나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건 찾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 질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 한마디가 대화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그동안 숲길을 걸을 때마다 늘 이렇게만 생각해 왔다. ‘공기가 좋다. 그늘이 생겨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좋다. 풍경이 아름다워 좋다.’ 나무는 내게 언제나 '좋은 것'이었다. 그저 내게 쉼과 위안을 주는 존재, 내 필요와 만족을 위한 배경처럼 여겨왔던 것이다. 그 시선은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달랐다. 그는 나무의 입장에서 묻고 있었다. '그 나무들은 왜 베어야 해?' 질문 덕분에, 나를 중심으로 돌던 세계가 살짝 기울었다. 그 틈으로, 새로운 여러 생각이 흘러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흔히 동식물을 보호하자고 말하지만, 정작 식물은 늘 동물뒤에 조용히 가려진다. 왜일까? 수많은 매체에서 동물 실험이나 공장식 축산 문제들로 동물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학대당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윤리적인 소비와 채식 등을 실천하려는 움직임도 늘어났다. 동물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성적인가,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고통받을 수 있는가이다.


동물들은 외적인 충격이나 고통을 받으면 소리나, 이상행동 등으로 자신들의 고통과 감정을 표현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동물은 이성적이거나 말할 수는 없지만 고통을 받을 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떤가? 식물은 고통을 받으면 소리를 내지도 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그들의 권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일까? 동물과 식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생각다 보니, 문득, 사회 안에서도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소리를 내는 이에게는 귀 기울이고, 조용히 존재하는 이는 쉽게 지나친다.


성석영의 장편소설 <투명인간> 속 주인공 만수가 떠올랐다. 주인공 만수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보통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족을 부양하고, 노동을 하며, 큰 욕심 없이 착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성실하게 살았음에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투명인간처럼 살아갔다. 만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름 없이 사라진 보통 사람들’이 '소리 없이 사라진 흔한 나무들'같았다. 그는 늘 곁에 있었지만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마치 조용히 그늘을 만들어주던 가로수 나무처럼.


개발부지 내에 나무가 있는 경우에 나무를 마음대로 벌목할 수는 없다고 한다. 산림보호, 환경보전, 도시 미관 유지 등의 이유로 다양한 법적 절차와 행정적 허가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국가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나무를 마음대로 벨 수는 없다. 식물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산림을 보호하는 법적장치가 있음에 안도했다. 둘째 아이는 평소에도 주변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지역구 기후행동 회원으로도 활동하며, 주변 동식물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비 온 뒤 하굣길에 도로에 나온 지렁이 몸이 마르지 않게 자기가 마실물을 몸에 뿌려주거나, 학교 가는 길 나무옆에 자라는 버섯을 보며 포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혼자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그 아이에게는 궁금한 게 참 많은 여름이다. 단지 식물에 대한 관심일 수도 혹은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나무들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말없이 자신의 생각을 삼킨 채 조용히 몫을 다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마트에서 선입선출을 하며 빠르게 가격표를 정리하는 손, 회의 후 흐트러진 의자를 정리하고 나가는 배려, 식당에서 자신이 먹었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일어나는 뒷모습. 그들은 모두 티 내지 않고도 세상을 조금 더 단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목소리보다 태도가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배웠다. 그동안 말 없는 존재들을 그냥 ‘배경’으로 여기며 지나쳤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아이의 질문은 굉장히 날카로웠고, 나는 그 질문에 깊게 베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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