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골에 홀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벌써 제가 이곳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지도 2년이 되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도 모르게 여유롭기도 했고 바쁘기도 했던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 벌써 2년이 되었네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나의 하루의 끝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온하고도 지루한 일상을 사는 사람인지라 '뭐가 기록할만한 것들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기에 사진으로 기록하는 기록물과는 달리, 글은 나중에 이 곳에서의 지난날들을 더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별거 없는 일상이더라도 글로 남겨봐야겠다 결심했어요.
이 글은 아무도 모르는 외딴 시골에 홀로 내려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저의 소소한 일상과 시골에서 살기까지 그리고 살아가면서 제가 겪었던 경험들에 대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아무도 모르는 이 시골에 혼자 내려와 살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어떤 대단한 계기나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서울과 경기도에서 태어나신 분들이라 소위 말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이란 걸 갖지 못했던 저는 초중고등학교도 자연스레 서울에서 졸업을 하였고 스무살이 될때까지 시골에 가 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대학생활을 하게되면서 산과 나무로 둘러쌓인 심심하고도 적막한 시골생활에 대한 환상을 마음 한구석에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겨진 그 씨앗 같은 환상이 지금 제가 여기 시골에 집을 짓고 살게된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길대로 스펙을 쌓고 인턴을 하고 취업을 하여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총 8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였고 중간 중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에 맞춰 이직도 했습니다. 직장생활 중 휴가 때나, 이직하기 전 시간이 남을 땐 꼬박꼬박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은 필수였어요. 그것이 직장생활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것 같아요. 쉬러 어딘가 가고 싶지만 마음을 쉬일 고향이나 시골이 딱히 없어서인지 국내나 해외 곡곡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출퇴근 시간 미어 터질 듯 사람으로 꽉찬 대중교통과 꽉 막힌 도로, 어딜가도 많은 사람들 등 저와 맞지 않는 도시생활에 점점 지쳐갈 무렵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점점 얕은 곳까지 떠올랐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스레 대학에 진학했듯 대학을 졸업하고 한번도 내가 직업으로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진 못했었던 것 같아요. 마치 답정너처럼 대학 졸업 후엔 스펙 쌓아 서울에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당연한 거였죠.
해외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엔 만점 가까운 토익점수에 미국 금융자격증까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은 정말 열심히 쌓았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하니까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정말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은 부푼 꿈도 있었습니다. 저의 첫 직장은 공기업에서의 인턴쉽이었어요. 그 후엔 몇몇 회사의 해외사업팀과 기획조정실에서 일을 하며 해외 프로젝트 리서치나, 사업 재무 분석, 중장기 사업 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하였습니다.
신입사원 때는 누구보다 열정 넘치게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일을 배우는 것도 재밌었고 워낙 꼼꼼한 성격이어서 일도 곧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집이 경기도 광주였는데 을지로까지 매일을 대중교통으로 편도 한시간 반을 통근하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 가는게 즐거웠습니다. 주말이면 '빨리 회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제가 언젠가부터였는지 딱 집어 말할 수도 그리고 그 계기가 뭐였는지 명확히 하나를 말할 수도 없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나의 하루가 단 하루라도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치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취업준비-직장생활까지 너무 앞만보고 달려온 나머지 번아웃이라는 게 왔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특별히 다른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잘 버티며 살고 있지만 제 정신과 마음이 버티질 못했던 거죠.
중간에 이직을 하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책임감과 그에 따른 부담감이 점점 커지면서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잠을 못자니 출퇴근이 힘들고 회사에서도 비몽사몽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악순환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못하는 일들은 피해가며 잘 해왔지만 '여기서 더 올라갈 수는 없겠다, 내가 더 잘 할 수는 없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도 떨어지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부당한 마음도 커져갔습니다. 회사와 그 부당함을 해결하고자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저란 사람은 무던하게 어느정도의 부당함을 받아들이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성격은 되지 못했던 사람이었던 거죠. 그 때 처음 알았던 것 같아요. 제가 회사라는 조직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취업하기 전 나라는 사람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내 진로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깊이 생각했다면 내 인생의 이런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직서를 낼 시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건 회사를 다니는 것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 어디에서 살지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지만 8년 가까운 시간을 끝으로 제 직장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전 저는 이 곳에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