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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Nov 05. 2022

214 각자도생의 슬픈 대한민국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예레미야 33:6-8)


세계적인 음악가 정명훈 씨의 피아노 연주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처: 한겨레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등의 피아노곡을 연주하며 1부를 마친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2부를 시작하기 위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가 연주하기를 기다리며 온 관객이 숨죽여 지켜보던 그 순간 객석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리" 벨소리는 금방 꺼졌지만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정명훈 씨는 울렸던 벨 소리를 피아노 건반에 그대로 옮겼습니다. "시도파미도" 그제야 관객들도 웃으며 박수로 화답했다. 그는 다시 한번 벨 소리를 피아노로 치면서 그 마지막 음을 자신의 연주곡 첫 음과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2부 공연을 시작했다. 


자칫 공연을 망칠 수 있었던 누군가의 실수를 덮고 이를 연주로 승화시키는 거장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본문에는 죄악으로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 말씀은 치료와 용서와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짓고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시작된다. 

혹시라도 실패한 일로 주저앉아 있는가? 무너진 인생을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감사 QT 365> 중에서 



이태원 참사로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눈 뜨자마자 본 경북의 광산 노동자들의 10일 만의 귀환 뉴스는 미소를 짓게 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나라지! 생존자 하나라도 끝까지 찾아 나서는 게 국가가 할 일이지!"


눈 떠보니 선진국이었던 때가 올해 초였다면, 

요즘에는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명 식당 거리를 지나가다가 압사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아무도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희생자들의 이름 또한 유가족의 슬픔 또한 뉴스에 나오질 않고 있다. 


각. 자. 도. 생.


참 무서운 말이다. 

나라가 나를 못 지켜 줄지도 몰라.... 이 말을 현실로 보게 되니 무섭게 느껴졌다. 

당일 112에 신고한 국민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미 금요일에도, 경찰들이 서 있으면 사고가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위치까지 정해주는 시민들의 신고가 대다수였단다. 

나라를 믿으니까... 

나라가 내 의견을 당연히 받아들여줄 거라가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전화를 끊으면서 마지막 인사는 


"감사합니다~" 


울림이 있다. 혹시 그 신고를 했던 분들은 생존하셨을까?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이번 안타까운 죽음을 나라가 어떻게 대처할지 우리는 꼭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나라답게 책임지고, 국민이 국민답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려고 했던 경찰과 검찰과 언론일지라도) 기본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무능한 총리의 외신기자 브리핑 때의 그 웃음과 농담에 화들짝 놀랐고

책임이 없다는 용산구청장과 참사가 아닌 사고사로 덮으려는 경찰청장과 장관을 보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최고책임자의 뇌진탕 발언(뒤로 자빠질 공간이 어딨어, 압사라니까!)은 두고두고 코미디로 회자가 될 것이다. 




분노 게이지가 치솟는 가운데. 

190미터 갱도 밑에서 열흘 간 믹스 커피와 떨어지는 물로 생존했다가 구출된 두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자신들을 구하려는 소리를 그 밑바닥에서 다 들었다는 거 아닌가.

어둡고 눅눅하고 외롭고 죽음의 공포가 무섭지만, 

그들에겐 구원의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렸기에 살 수 있었다.  

 

며칠 전의 서울 한복판에서의 대형참사처럼.... 

이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니 언제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기회가 있을 때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려고 손을 뻗고 계시는데,

그 예수님이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믿으라고 하시는데. 빨리 그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 


그 소리는 생명의 소리요, 삶의 희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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