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시 만 감독. 인사이드 아웃 2
불안은 사춘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감정은 아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사춘기를 지나며 기쁨과 슬픔을 압도할 정도로 커진 감정 요소로 불안을 핵심 캐릭터로 내세운다. 사춘기 이전엔 기쁨, 슬픔, 화남, 소심 등의 감정이 각자 비중을 조율하며 외형적인 태도와 반응을 결정했다면 불안은 이 모든 것을 넘어 섬세하게 일상의 틈을 비집으며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비상식적인 선택과 행동을 정당화한다.
감정의 질풍노도 시기 시즌2를 맞게 된 라일리는 내면을 빠른 속도로 완전히 장악한 불안에 의해 수많은 변수를 겪게 된다. 애초 라일리를 자신들이 컨트롤한다고 믿었던 기존의 감정들은 새롭게 등장한 불안에 의해 라일리가 잠식당하자 기존의 자아와 함께 지위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다. 감정들의 자리싸움이 격해질수록 사춘기 라일리의 현실은 엉망이 된다. 처음부터 라일리를 결정하는 것은 라일리가 아니었다는 듯 라일리는 외부적인 압박과 내면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단기적 성과를 거둬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원하는 미래를 가질 수 없다는 거대한 불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건 사춘기에 막 들어선 한 소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 타자와의 서열을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반응이다. 불안에 휩싸이는 순간 그동안 의지했던 상식과 판단력은 모두 폐기 수순을 밟는다. 자신의 언행에 대한 자각 기능과 객관성을 위협받는다. 불안은 잠재적인 결핍을 전 인류를 멸종시킬 핵버튼 수준으로 격상시키며 끊임없는 의심과 자학을 멈추지 못하도록 제어한다. 불안은 스스로 커지며 쉽게 숙주를 만들고 점점 더 거대한 불안으로 자신과 숙주 모두를 몰아넣는다. 난 왜 이모양일까. 자기혐오가 견고한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인생이 내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기 탓만큼 쉬운 게 없으니까.
기존 감정들의 고민과 반성은 각성으로 이어진다. 라일리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라일리의 기억을 선별하고 밝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 와서 보니) 그게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건강한 자아가 오직 긍정적인 기억만으로 제대로 형성될 수 있을까. 불안에 잠식된 라일리를 구원하려던 시도는 과거의 기준을 바꾸는 데까지 이른다. 라일리의 감정과 자아는 이렇게 불안과 혼돈의 통증 끝에 모든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성장에 이른다. 어떤 경험과 기억도 현재를 형성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기존과 새로운 감정들은 좌충우돌 끝에 안정과 해피엔딩에 이른다. 불안이 사라진 해피엔딩이 아닌 불안과 공존하는 해피엔딩으로.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가 추억 할머니가 주인공이 될 때까지 계속 만들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