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명사들의 마지막 한마디: 제인 구달 박사
침팬지는 우리와 가장 가까워서
DNA의 98.7%가 일치하고
행동은 거의 동일해요
내 눈에 보인 그들은
음침하고 공격적이고
잔인하게 행동했어요
원시적인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죠
그래서 난 공격성이 선천적이라고 믿어요
늘 말하지만 나의 가장 큰 희망은
연민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시민들을 키워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엄혹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으면 우린 끝이에요
우리가 만든 이 어두운 세상에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자포자기한 사람들 틈에서
자라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아는
인류의 종말이라고 할지라도
끝까지 싸워 봅시다
힘을 합치면 희망이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줘야죠
누구도 손을 쓸 수 없게 될지라도
포기하고 수긍하는 대신
끝까지 싸우는 편이 나아요
제인 구달
1934-2025
......
제인 구달 박사의 부고 뉴스가 뒤덮고
얼마 후 넷플릭스는 마지막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온에어한다
스티브 잡스 사망 후 곧바로
벽돌만 한 인터뷰집이 서점을 뒤덮었던
풍경이 겹쳤다
타임라인을 도배하는 말과 말들
직접 보고 듣고 읽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최악이더라도
직접 보고 듣고 읽은 자의
기개가 더 드높다
현 인류 중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와 함께 찍은 사진에
노출되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될까
익숙한 키워드들이
사라지지 않는 시대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제인 구달 박사의 인터뷰 영상도 그랬다
셀럽의 가십을 파고드는 모든 눈과 귀가 집중할만한
두 번의 결혼에 대한 조심스러운 언급도 흥미로웠지만
영적인 체험에 대한 증언과
희망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말자는 권고에서
오랜 저항에 익숙한 투사의 이미지가 읽혔다
희망이라...
저걸 어떻게 가질 수 있나
뭐가 희망이다 누가 희망이다 언제가 희망이다
차라리 희망은 각자의 거울 속에만 있다
희망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희망을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
희망 자체가 된다는
중간 결론에 이르렀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는 자에게
희망이 무슨 소용일까
타인의 욕망을 염원하는 게 희망일까
탐욕이 아니라?
희망이 '긍정적인 가능성'에 대한 통칭이라면
긍정은 누구를 위한 어떤 긍정인가
그 누구가 악의를 지녔다면
악당의 희망 또한 존재의 정당함을 획득하나
(독재자와 극단적 환경 운동가가
겹쳐 보이는 가상캐릭터인)
타노스가 절반의 생존을 위해
나머지 절반을 말살할 때
이런 희망조차 공감과 동참의 대상이 되는가
제인 구달 박사의 마지막 염원에 담긴
희망을 오역하려는 게 아니다
희망이라는 키워드가 얼마나
다양한 해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발언자가 추구하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지닌
순수한 의도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의문은
희망에 대한 깊은 사유의 입증보다는
얼마나 혼탁한 렌즈로
선한 영향력을 받아들이는지 대한
침침하고 해상도 낮은 셀피이기도 하다
제인 구달 박사의 생애를
깊고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지만
사후에 공개될 영상에 스스로 겪은 고난을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모습 속에서
얼마나 많은 순간을 부조리와 편견,
성차별과 남성우위문화 속에서
싸우며 살아남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기 삶을 사랑한다고
만인 앞에 고백할 수 있는 삶이란
고귀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제가 아닌 열 살부터였다는 것
희망에게는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수치를 적용한 계량화가 필요하다
열 살의 제인 구달이
자기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확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측정 불가의 희망을 얻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짐작조차 못할 언제 어딘가에서
저런 희망들은 무수한 빛을 뿜어내며
어둠조차 경의를 표하는
기적을 생성하고 있을 것이다
나만 빛내려는 희망에 골몰했었고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테지만
진짜 희망은 바깥과 타자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바깥과 타자를 향한 무구한 헌신이
스스로를 태양이 아닌
위성으로 만드는 시도들이
그래서 의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완료될 수 없는 실패와 눈물의 모든 기록들이
희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제인 구달 박사와
늘 함께 다니는 침팬지 인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