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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by 백승권

혼자 죽지 마

먼저 죽지 마

서둘러 죽지 마


대형서점 건물에 걸린 카피는

한 목소리로 말해


원문을 쓴 시인들이

모두 같은 감정과 판단으로

각 문장을 끓여내지는 않았겠지만


모두가 보이는 곳에

문장이 걸리는 순간

동아줄이 되고

구명조끼가 되고

산소호흡기가 되고

절벽의 나뭇가지가 되어


이미 마음의 눈을 닫은 이들에게

전부 찾아가 흔들진 못하더라도

꽝꽝 언 심장에 송곳 하나 안 들어가도

너무 늦거나 이미 틀렸더라도


다음 또 다음 사람

다음 또 다음 증오

다음 또 다음 자학

다음 또 다른 죽음을 막으려


문장은 퍼져

줄이 긴 작살과

성량이 큰 목소리

빠르게 확산되는

물 안의 잉크가 되어


혼자 죽지 마

먼저 죽지 마

서둘러 죽지 마


누구는 웃거나

누구는 죽거나

누구는 죽기 전에 웃거나

누구는 죽지 않고 울거나

누구는 울거나

누구는 읽거나

누구는 멈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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