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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 죄책감이 될 때

클린트 벤틀리 감독. 조엘 에저튼, 펠리시티 존스 주연. 기차의 꿈

by 백승권

석 달도 안 돼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내 이름 한 번만 더 불러줘

당신이 부르면 너무 좋아,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어


그만 갈게

보고 싶어서 어쩌지

나도 사랑해




불행의 급습을 피하려는

인간의 영악함은 욕망과 본능마저

제어의 영역 안에 두려 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 한다

이미 늦은 줄도 모르고


신이 뭘 하든

인간의 기도에 아랑곳없이

인간은 서로가 모르는 순간

세상에서 사라진다


너무 간절하면 기울어진다

안돼 거긴 반대쪽이야

모든 운이 불운이 된다


사랑은 왜 발명되어서

삶을 지옥으로 불태울까

왜 서로의 목소리에 자꾸 빠져들게 하고

서로를 가까이 두려고 하고

떠나고 싶지 않은데 떠나게 하고

가장 필요할 때 곁에 두지 못하게 하고

마지막 비명도 듣지 못하게 하고

숲을 쓰러뜨리는 힘이 있어도

누구도 구하지 못하게 하고

잿더미에 누워 울게만 할까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게 할까

폭우를 맞으며 울음소리를 숨기게 할까

어린 생명마저 앗아갈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둘이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너는 태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너흰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로버트는 자신이 떠나온 곳이

불길에 휩싸이며

과거와 미래를 모두 잃는다

거긴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길과 함께 사라지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주검도 인사도 없고 바람 곁에 목소리만 남는다


계속 보인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보인다 그들과 사랑했던 과거가

계속 들린다 그들이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그들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내가 너희 곁을 멀리 떠나

누굴 도와주는 실수를 해서

이런 형벌을 받는 걸까

용서해 주세요

저는 제가 하는 짓이 뭔지도 몰랐어요


떠나고 싶지 않을 때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이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나를 얼마나 기다리고 원망했을까

마지막 순간에 내 이름을 얼마나 불렀을까

도착하지 못한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가 구하러 올 거라는 희망을...


사랑하면 빼앗기고

빼앗기면 돌려받지 못한다


로버트(조엘 에저튼)는 남은 생 내내

자신의 죄를 찾아 용서를 빌어야 했다


먹고살려고 무수한 나무를 쓰러뜨릴 때마다

내 삶이 그렇게 쓰러질지 몰랐어

나무에 깔려 동료들이 묻힐 때에도

그게 내 삶의 장례식으로 돌아올지 몰랐어

돌이킬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살 거라고

생사도 모르는 부모들은 말해주지 않았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육체와 정신으로 직접 겪으며

짐승의 가죽을 벗기듯 살점을 흘려

잿더미가 된 집 위에 뿌려야 했다


남아있는 사람이 되어

고통을 끝까지 느끼는 게 벌이라면

나무 침대 위에 뉘인 몸 위에서

이름 없는 풀들이 자랄 때까지

여기 남아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나무를 베어

절벽을 다리로 이어

세상과 인간을 연결했지만

로버트의 삶은 온통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엉엉 짐승처럼 울어야 했다


죽은 자와 연결되어

죽은 나무와 연결되어

흐르는 강물과 연결되어


로버트는 자신을 기다리던

자신이 기다리던 이들에게 돌아간다


사랑하고 잃는 순간

상실은 독처럼 퍼져

죽을 때까지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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