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내성이란 현실 앞에서
11월 28일 목요일
음.. 처음으로 글이 안 적힌다 뭐라 시작을 해야 할지..
우선 또 내성이 생겨서 항암제를 바꿔야 한다
휴약기동안 소화가 안 되는 느낌, 배꼽 위 통증, 허리가 아팠다
먹는 양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통증은 경미했는데
허리통증은 밤이 되면 심해져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외래에서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허리가 아닌 옆구리 쪽이라며 콩팥이 늘어졌을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고
만약 그렇게 되면 요관 스텐트를 삽입해야 한다고 그림자 ct를 우선 찍어 보자고 하셨다
그림자 ct : 조영제 없이 말 그대로 형태만 보이는 정도
그림자 ct를 찍고 다시 교수님을 뵈러 갔는데 다행히 콩팥이 늘어진 건 아니고 췌장과 림프절이 부어 보인다며 우선 입원을 해서 ct를 빨리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 교수님은 이렇게 조금만 아파도 주의를 기울여주시고 바로 입원을 시켜주신다..
그게 이때까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입원에 엄마는 세종에서 서울, 서울에서 세종 또 세종에서 서울, 서울에서 세종
추운 날씨에 무려 4번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저녁에 ct를 찍고 계속 금식 유지를 하라고 하셔서 물만 마시고 밤에 또다시 시작되는 옆구리가 찢어질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현재 느껴지는 몸상태와 함께 또다시 올라간 종양수치
대충 예상되는 ct결과를 애써 외면하고 생각을 하기가 싫어서 어차피 결과는 내일 나오니까 뇌를 멈춘 상태로 그렇게 하루를 넘겼다
도대체 뭘 얼마나 더 아프고 노력해야 하는 건지
나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 주고 희생하고 있는 우리 가족과 남자친구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냥 푹 쉬고 싶다
밤새 진통제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도 통증은 그대로다
11월 29일 금요일
오전에 교수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전날밤에 찍은 ct를 보니 단순한 췌장염은 아닌 것 같고 역시나 암들이 커져있었고 림프절이 부어서 배를 누르고 있다고 했다
이 정도면 많이 아플 텐데 어떻게 참고 있냐고,
낮엔 괜찮고 밤에만 통증이 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게 아니라 낮에도 똑같이 아픈데 내가 통증에 너무 무디다고..
아프면 참지 말고 말하라고 이제 마약성진통제를 맞으라고 하셨다
담당간호사선생님도 오셔서 다른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고 그러는데 왜 그렇게 참는 거냐고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해야 한다고 한 소릴 들었다
나는 진짜 죽을 만큼 아파야 모르핀을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 마약성진통제를 생각보다 빨리 맞게 된 것 같아서 씁쓸하다
암을 이겨내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이후로 강해진 나의 정신력은 고통마저 덜 느끼게 하나보다
결국 모르핀을 투여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펫시티를 찍기로 했다
그리고 펫시티 결과를 보고 아무래도 항암제를 바꿔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우선 공식적으로 위암의 마지막 항암제인 이리노테칸이 아닌 임상을 먼저 권유해 주셨고 임상조건이 맞게 되면 임상에 들어간다
4사이클 하러 왔다가 갑자기 입원을 하고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몰려와서 머리가 아프다
교수님 설명 듣고 난 직후에 두통이 심하게 오고 구토를 했다
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탁사는 3사이클(총 9번)로 짧고 굵게 끝났다
종양수치가 정상까지 내려갔고 사랑니발치로 3주 항암을 못했고 야속하게 또 짧은 시간 사이에 생긴 내성을 또다시 겪으니.. 더 이상 지난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이번에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고 약하게 지쳐있는 모습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
내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도 없다
그저 빨리 현실로 들어오는 수밖에
나한테는 안 오겠지 했던 순간들.. 1차, 2차 항암치료하는 동안에는 이렇게 수술만 생각하면서 이겨내는 게맞다 (전이가 된 4기 환자는 수술을 목표로 항암치료를 한다)
무조건 좋은 생각 하면서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면 된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생각해 보니까 이번 휴약기동안 얼마나 내성 때문에 불안해했는지
하루하루 일상을 즐기는 동시에 시도 때도 없이 이리노테칸을 검색하는 나를 억지로 제어시켜야만 했다
이제 진짜 토하고 먹기 싫어도 토하면서 억지로 먹고 견뎌야 하고
더 강하게 마음먹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을 위해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끝나지 않은 나와의 싸움
어떤 항암제를 맞을지 임상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정해진건 없지만 오늘은 임상 동의서에 이름 세 글자를 적어 제출했고, 딱 하나 분명한 건 더 독하게 마음먹고 싸워야 한다는 것
감사하게도 아직 몸뚱이가 잘 버텨주고 있으니 이겨낼 수 있다 끝까지 내가 나를 놓지 않으면 이겨낼 수 있다
이제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 목숨을 연장해 가며 살아야 하는 삶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시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건강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저에게 무너지지 않고 이겨낼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을 살자 ‘ ’ 긍정적인 생각, 마음가짐‘
1년, 스물다섯 번의 항암을 받는 시간 동안 늘 마음속에 품고 지낸 말이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온신경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날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처받은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나의 짜증으로 한번 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웬만하면 웃는다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항상 웃으면서 진료실을 들어와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마지막 항암제라는 이 무거운 상황 속에서도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라며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이 암을 없애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투병생활을 어떤 방향으로 할 지, 남은 내 인생을 하루하루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현실 앞에서 조금 움츠려 들기도 하고,
전처럼 마냥 긍정적일수만은 없지만
확실한 건, 아직 이겨낼 힘이 있다는 것
나의 오늘도 암과 함께 동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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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암과 함께 동행은 18화를 마지막으로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항암제라는 현실과 함께 저에게 새로운 목표가생겼습니다
‘오늘도 암과 함께 동행 2’를 완결하는 것
정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덕분에 저의 짧은 글이 지하철역 사랑의 편지에도 12월 한 달 동안 실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9호선, 신분당선 제외)
저의 소소한 항암일기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는 ‘오늘도 암과 함께 동행 2’로 뵙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분들
오늘도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