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 다른 크기
물론 우리나라만 청년 자살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높은 빌딩이 가득하고 곳곳이 포장도로로 연결된 나라라면 어디든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실제로 바로 얼마전까지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청년이 자살했다.4) 1988년 우리나라 청년 자살률은 10만 명 당 10.3명이었고, 일본 15.3명이었다. 2006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청년 10만 명 15.8당 명이 자살했는데, 일본에서는 21.5명이 자살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질렀다. 2007년 일본의 청년 자살률은 10만 명 당 22.0명이었고 우리나라는 22.2명이었다. 2009년에는 각각 23.5명과 28.7명이었고, 2019년에는 16.4명과 22.4명이었다. 이제는 자살대국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청년이 자살한다.
복지국가 독일의 청년 자살률도 우리나라보다 높았다.5) 1980년대 독일에서는 매해 10만 명 당 22명 정도가 자살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청년 자살률의 두 배 정도다.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8년의 우리나라보다 80년대 독일에서 더 많은 청년이 자살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독일 청년 자살률은 꾸준히 낮아졌다. 역전의 순간은 1996년이었다. 1996년 우리나라 청년 자살률은 10만 명 당 15.4명이었다. 그런데 독일 청년 자살률은 13.1명으로 줄었다. 시간이 흐를수혹 격차는 더 가파르게 벌어졌다. 2009년 독일 청년 자살률은 8.4명이었고, 2019년에는 7.4명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청년 자살률은 줄곧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2002년에는 청년 자살률 뿐만 아니라 자살자 수 자체가 역전되었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는 청년 2,682명이 자살했는데, 독일에서는 청년 2,495명이 자살했다. 이후로도 격차가 계속 벌어져서, 2019년 우리나라에서는 3,220명이, 독일에서는 1,523명이 자살했다. 기간을 넓게 잡아서 비교해 보면, 2002년부터 2022년까지 독일에서는 청년 3만8천 명 정도가 자살했는데,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는 그 두 배에 달하는 7만 명이 자살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다. 2022년 기준으로 독일 청년 인구는 우리나라보다 7백만 명 많았다. 그런 독일에서 청년만 태운 타이타닉호 한 척이 가라앉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두 척이 가라앉았다.
우리나라는 자살률로 악명 높았던 북유럽도 뒤로 제쳐 버렸다. 스웨덴의 청년 인구는 서울과 비슷하다.6) 2022년 스웨덴 청년 인구는 272만 명이었고, 서울 청년 인구는 290만이었다. 하지만 청년 자살자는 서울이 더 많다. 같은 해 스웨덴에서는 청년 343명이 자살했는데, 서울에서는 588명이 자살했다. 자살률로 보면, 스웨덴에서는 청년 10만 명 당 12.6명이 자살했는데, 서울에서는 20.5명이 자살했다. 비교 대상을 서울로 좁혀도 이런 격차가 나타난다.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덴마크의 경우, 청년 인구가 부산과 경남의 청년 인구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7) 2022년 덴마크 청년 인구는 150만 명 정도였고, 부산과 경남은 다 해서 157만 명 정도였다. 청년 자살자는 역시 부산과 경남 쪽이 더 많았다. 같은 해 덴마크에서는 청년 116명이 자살했다. 부산과 경남에서는 391명이 자살했다. 자살률로 보면, 2022년 덴마크에서는 10만 명 당 7.8명이 자살했고, 부산과 경남에서는 24.9명이 자살했다. 나라와 지역을 비교하든 나라와 나라를 비교하든, 우리나라 청년은 덴마크 청년보다 세 배 많이 자살한다.
우리나라는 주요국보다 더 많은 청년을 잃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자살대국으로 통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가 더 위험하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청년 인구가 많지만, 우리나라보다 청년 자살자가 더 적다. 덴마크에서 청년 한 사람이 자살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청년 세 사람이 자살한다. 격차가 큰 만큼,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똑같이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살률 역전은 대체로 IMF 외환위기 이전에 일어났으니, 위기를 탓할 수도 없다. 분명 우리나라 청년이 절벽 끝에 더 많이 몰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