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끄적거림 10화

잠잘 때만큼은, 푹 쉬세요

그대도 충전이 필요한가요?

by 무기명

2019년 겨울,

떡볶이집 아르바이트 마감을 마치고 춥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집에 도착했습니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고 있는 거실에 외로이 켜져 있는 TV가 잠든 아버지를 비추고 있네요. 안방에 전등을 킨 채 잠이 든 어머니께 인사 후 다시 거실 전등을 끄고 외로이 켜있는 TV 전원을 끕니다.


이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온수매트 코드를 꼽아 침대를 예열하고 방을 컴컴하게 만든 후 밀린 SNS를 합니다. 웃긴 영상들이 다 떨어지면 이제 핸드폰을 충전시키며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역시 그런 날일 겁니다. 영상을 보던 중 살짝 열린 내 방문을 바라봅니다. 어떤 웅얼거리는 선명한 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올라왔네요.


“이거 저기로 가져가.”

“그래, 그렇게 하면 돼.”


담배를 입에 문 채 말을 건네는 듯한 웅얼거림이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2년 전쯤 인가...

사회복무요원 신분은 아르바이트할 수가 없어, 소소하게 들어온 봉급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끼리 간단히 당구장 가고 술 마시는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지만,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전시회, 맛집, 여행 등 당시 받는 봉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자주 부모님께 용돈을 당겨쓰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3달 연속 반복되자 어머니의 압박이 들어왔어요.


“아들, 이렇게 당겨쓰는 거 습관 되면 안 된다. 이제부터 용돈은 제때제때 줄 거야.”


“음… 이번에 마지막으로 해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차라리 아르바이트해라”


“저 아르바이트하면 안 되는데”


“그럼 아버지 일 도와주고 용돈 받아. 한번쯤 힘든 일도 해봐야 돈의 소중함을 알지.”


난생처음 새벽 5시에 토요일을 맞이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대는 알람을 본능적으로 끄고 속옷을 챙겨 씻을 준비를 합니다. 이미 아버지는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들 준비됐으면 가자. 차 막히기 전에 가야 해”


씻지도 못한 나는 비몽사몽 트레이닝복을 입고, 유행 지난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었습니다. 얼음 가죽 같은 딱딱한 트럭에 올라타고 어딘지 모를 곳에 가고 있습니다. 쌩쌩 달리는 주변 차들의 바람소리가 유독 큽니다. 빠르게 달리는 차를 바라보며 주말인데 저 분들은 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상상해봅니다. 아침 6시도 안 되었는데 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건 참 낯선 풍경입니다.


그렇게 두 시간 후, 위례 신도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전기 관련 공사를 하신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자세히는 몰랐습니다. 사실 깊게 물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방학 숙제로 부모님 직장 탐방 보고서 작성한 경험은 다들 있을 겁니다. 당시 아버지 회사에 가서 꽁지머리를 한 남자 직원분과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긴 합니다. 아참... 옥상에 강아지도 있었어요.


그나저나 공사 현장에 들어와 지하로 내려가니 창고와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아직 건물의 뼈대만 있는 곳이라 엄청난 먼지와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는 도착하자마자 간이 전등을 켜고 히터를 틉니다. 컴컴했던, 창고라 불렸던 곳이 밝아지고 서서히 창고 속 생활용품이 먼지를 뚫고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헬멧, 장갑, 마스크, 전기 선, 이름 모를 공사 용품들, 커피믹스, 물, 그리고 쌓인 먼지들. 어색한 장소와 아버지와 같은 창고에 있자니 먼지들까지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머지않아 다른 직원분도 오셨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추위와 졸음을 이겨낼 겸 미지근한 믹스커피를 벌컥벌컥 마십니다. 그 후 아버지는 담배를 입에 물며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 브리핑을 하셨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냥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물품 4층까지 옮기고, 사다리 잡아주고, 전기 선 테이핑 하거나 정리하고, 주위 청소도 했습니다. 따스하고자 했던 패딩은 어느새 먼지와 위험 요소로부터 보호해주는 작업복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심을 먹은 후 한숨 자고, 16시까지 반복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끝났습니다. 헬스로 단련된 줄 알았던 이두, 삼두, 그리고 허벅지가 부르르 떨리고 더 이상 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에는 깊게 파인 마스크 자국이 일의 고됨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차에 오르기 전 옷에 붙은 땀내나는 먼지를 털어냅니다. 몸속 깊이 들어간 먼지를 내뱉듯 한숨을 푹 뱉으며 차에 올라탑니다.


“아버지 이거 매일 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엄청 힘들던데…”


“매일 하면 안 힘들어. 네가 힘이 없어서 그래”


“집 도착하면 푹 쉬어야겠어요. 그리고 오늘은 헬스 못 갈 것 같네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서로 주고받는 입김의 온도로 따듯해집니다. 현관문을 열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쌓인 먼지를 쓸어 내립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난생처음 앉아서 샤워를 했습니다. 금방 식은 물방울들을 닦아낸 후 바로 침대에 뻗습니다. 문득 왜 아버지가 집에 오면 TV를 틀고 금방 잠에 드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된 일을 몇 십 년 동안 묵묵히 해왔다는 것을 이렇게 몸소 알게 되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 하루입니다.


머지않아 2019년 겨울,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던 나는 계속되는 아버지 잠꼬대 소리를 듣고 방을 나왔습니다. 실은 선명한 웅얼거림이 잠꼬대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거실에 나온 뒤 한동안 곤히 잠든 아버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위례 신도시에서 공사했었던 그는 자정이 지난 지금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문 채 직원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아버지의 잠꼬대에 도중에 말을 끊어서라도 이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잠잘 때만큼은 푹 쉬세요.”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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