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영화<우리들>에 나타난 일상 공간의 의미연구

르페브르의 공간 이론을 중심으로

by 무기명
목차

1. 서론

2. 시선에 따라 지각되는 일상 공간

3. 차이와 모순이 인지되는 공간

4. 주체로서 전유하는 체험 공간

5. 결론


3 차이와 모순이 인지되는 공간

공간재현은 일종의 개념화된, 혹은 추론적인 것으로서 이해되는 공간성이다. 사소하게는 공간의 길이나 넓이에 대한 인식에서, 물리학적 공간 인식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객관성을 표방하는 공간 인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간을 언어적 상징과 기호들의 체계로 인식하는 방식은 거의 모든 미디어에 의해 반복적으로 전파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의 지배 질서 내지 이데올로기가 공간의 실제적으로 각인된다.

피구장은 피구라는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우리들>안에서 나타나는 아이들의 지배, 피지배 관계를 반영하는 공간을 잘 드러낸다. 피구장 아래 정해진 선(line)이 있고 아웃이 된 사람은 상대편 선 바깥에서 상대를 제거하고 이를 관조해야 한다. 이러한 피구는 상대를 제거해야 하고 서로 생존하려고 발버둥 치는 비참한 모습을 일종의 스포츠라고 합리화 할 수 있다. ‘피구장’이라는 공간에서는 교실에서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주로 팀을 구성하며, 이로써 이선과, 한지아와 같이 소외를 당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들은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상대방에게, 더 나아가 자신의 팀이지만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즉 피구라는 행위는 피구장이라는 공간에서 합리적인 스포츠이다. 교실에서 드러난 아이들 간 지배, 피지배 관계를 피구장이란 공간을 통해 확고히 각인된다고 볼 수 있다.


4. 주체로서 전유하는 체험 공간

먼저 르페브르가 사용하는 ‘전유’라는 단어는 보통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그에게 있어 전유는 “자신의 육체, 욕망, 시간 등을 스스로 장악하고 주체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공간의 전유에 대하여 그는 “한 집단의 필요와 가능성을 위해 변화된 자연적 공간에 대해 이 집단이 이를 전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재현 공간은 ‘체험된 공간’으로 이는 공간의 사용자들 환경의 전유를 통해 끊임없이 공간을 창조하게 된다. 이 공간은 상상력이 “변화시키고 자기의 것으로 길들이려고 시도하는 공간”으로 이렇게 구성된 대상들은 상징과 심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체험이란 권력과 폭력의 상징 등을 수동적으로 겪어온 측면과 규범적 실천을 벗어나 ‘공간의 재현’들에 자발적으로 저항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사진 12> <사진 13> <사진 14>


바다는 파도가 무한히 순환하는 것처럼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를 깨닫게 되는 공간이다. <사진 12>, 같이 바다에 가자고 하는 장면을 통해 바다라는 공간은 이선과 한지아에게 일상 공간에서 벗어나는 이상향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교실에서의 주체가 지배 관계인 권력층으로부터 겪어온 고통, 일상 공간을 탈피하고 싶어 하는 주체의 본능이 바다라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더해져 이상향이 된 것이 아닐까. 이선은 한지아와 함께 바다에 가자고 약속하지만 이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면서 가족끼리 바다에 가게 된다. <사진 13>, 그곳에서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쓸쓸한 옆모습을 쳐다보고 나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그 후 이선의 일상 공간에서의 주체는 더 적극적으로 전유한다. <사진 6>에서 평소 엄마가 김밥을 싸던 식탁에 앉아 김밥을 만들며 이윤의 친구인 연우에게 맞고 온 동생에게 엄마처럼 잔소리한다. 연우에게 맞았으면 다시 때려야 한다는 파도의 단면적인 주고받음의 순환 즉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이선은 바다라는 이상향을 통해 인간관계의 순환적 모습에 대해서만 깨닫게 된 것이다. 즉 이를 통해 집이라는 일상 공간에서의 어른스러운 모습을 확고히 했다. 앞으로 한지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직 단면적인 인간관계의 순환이란 중요성만을 파악한 이선에게는 한지아와 화해하는 것보다는 그저 자신이 소외를 당하고 있던 교실에서의 주체를 유지할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이선은 이후 계속된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바다에서 본 파도가 단면적인 순환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선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이윤 그럼 어떡해?

이선 다시 때렸어야지.

이윤 또?

이선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이윤 그럼 언제 놀아?

(대사정리: 김화국)


즉 자신의 일상 공간의 탈피를 위해 형성된 바다라는 공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이선은 차이와 모순이 인지된 공간에 자발적으로 저항하게 된다. <사진 14>는 영화 후반부 피구를 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세력의 힘이 정점으로 드러나는 피구장에서 첫 장면에서 이선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한지아에게 발생한다. 이 모습을 보고 이선은 지배적인 세력들에게 저항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주고받는 순환적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선의 첫 발걸음이지 않을까.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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