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페브르의 공간적 실천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적인 행위나 반복적 활동 등을 통하여 공간을 생산해내는 양상이다. 공간의 실천은 사회적 공간들 사이에 응집성을 부여한다.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공간적 실천 과정에서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망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르페브르의 공간적 실천을 3가지로 구분해 영화 <우리들>에서 나타난 시선에 따라 구분해 서술하고자 한다. 간략히 구분하면 첫째, 이선의 시선이라는 일상적인 활동 등을 통해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 가는지, 둘째, 사회적 공간들 사이 응집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들>에서 권력 관계를 지각하는 공간 그리고 셋째, 주체들 사이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공간을 <우리들>에서 순환/반복되는 공간의 대칭성으로 전이되어 이후 계급 차이를 인식하는 공간이라는 점에 관해 서술하고자 한다.
<사진 2> <사진 3>
영화 <우리들>은 주인공 이선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영상 흐름이 전개된다. 초등학교 4학년, 이선에게 일상 공간은 대표적으로 학교와 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2>에서 볼 수 있듯 피구 팀 가르기를 하는 영화 초반 장면에서 이선은 친구들 주위에 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갈 길을 잃은 듯하다. 자신과 같은 팀을 하기 꺼리는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의기소침해한다. 즉 <사진 2>는 닫힌 형식으로써 선택을 받기를 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분리되어 이선의 소외를 강조한다. 그리고 <사진 3>에서 이선 뒤로 지나가는 아이들, 선생님을 통해 구조의 밀도가 꽉 차게 된다. 이와 이선의 표정을 통해 혼란스러운 그녀의 심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광각렌즈를 사용해 이선뿐만 아니라 주위 친구들에게도 시선이 분산되어 소외감을 증폭시킨다.
<사진 4> <사진 5> <사진 6>
반면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아래 동생을 돌보는 어른스러운 모습도 지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진 4>,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망원렌즈를 통해 이선에게 포커스를 맞춰 집에서만큼은 이선의 주체적인, 어른스러운 모습을 표출한다. 그리고 피곤한 어머니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은 이선의 일상적인 행동이 반영된 곳, 이선이라는 주체성이 잘 드러나는 특화된 공간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학교와 집, 이 양면적인 모습은 이선만의 일상 공간으로 투영됨을 구체적인 미장센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선 집의 식탁에서의 활동으로도 위와 같은 이선의 어른스러운 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 <사진 5>처럼 이선이 식탁을 볼 때 로우앵글이다. 그 대상은 생계를 위한 김밥을 만들고 있는 엄마와 술을 마시고 있는 아빠가 식탁에 앉아 대화를 한다. 후반부 장면, <사진 6>에서는 이선이 직접 그 자리에 앉아 피곤한 엄마 대신 김밥을 만들고 동생에게 잔소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을 통해 이선은 집에서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선의 방, 잠을 깬 한지아가 식탁에 이선과 엄마의 다정한 모습을 로우 앵글로 보고 등을 돌린다. 이는 자신에게 부재한 엄마의 존재로 인한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한지아의 심리를 통해 알 수 있듯 식탁이라는 공간은 엄마라는 보호자의 역할이라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 7> <사진 8>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람 3명이 모이면 호랑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공간을 만들었어도 그 공간 속 응집성에 따라 상대적인 지배, 피지배 관계가 형성된다. <사진 7>에서 이선은 홀로 있고, 최보라 무리들은 같은 공간 속 응집하고 있다. 그 3명이 한 교실을 장악한 듯 이선의 시선은 왠지 모르게 그곳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최보라의 무리들이 프레임을 꽉 채우고 프레임 밖에 이선을 배치함으로 공간의 양의 대비를 통해 힘의 공간적인 위계질서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 8>과 같이 이선이 한지아의 생일 선물을 전달해주는 장면에서 한지아와 이선은 수평적인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최보라의 무리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하이앵글로서 한지아와 이선을 쳐다본다. 이선의 뒷모습은 프레임 중앙에 있지만 한지아와 최보라 무리에 의해 둘러싸여져 소외감이 증폭된다. 즉 최보라 무리와의 수직적인 권력 관계를 지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교실과 한지아 집 앞을 대표적인 곳으로 둘 수 있다.
<사진 9> <사진 10> <사진 11>
이선은 한지아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기존 순환/ 반복되는 일상 공간과 ‘대비’되는 놀이 공간을 접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교실 속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 학교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생일날 방방을 타자는 것과 <사진 9>와 같이 수다를 떨며 놀이터를 지나가는 모습 등을 통해 이러한 놀이 공간은 혼자가 익숙했던 기존 이선의 일상 공간이 아니다. 소위 최보라의 무리와 같은 권력 집단의 일상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고로 이선은 <사진 10>, 최보라 무리를 한지아가 보지 못하게 막는 모습이 나타난다. 즉 보이지 않는 계급에 대한 암묵적 불안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지아와 방방을 타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이선이 방방을 탈 돈이 없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이 둘의 계급 차이를 드러낸다.
이선과 한지아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공간은 이선이네 집이다. 한지아가 자신의 콤플렉스, 부모님이 이혼해 할머니 집에 살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본 상황을 한지아의 집을 통해 계급적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과 함께 다루고자 한다. 이선의 집의 프레임은 항상 사람으로 꽉 찬다. 이와 다르게 <사진 11>, 한지아의 집, 한지아와 이선이 등장하는 프레임은 넓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선의 일상 공간에서 한지아가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에 대한 열등감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면, 이런 이선의 일상 공간 범주에 벗어나는 공간을 통해서는 계급적 차이를 공간을 투영해 나타낸다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