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아내와 내가 한 대화다.
"여보, 나 눈썹 좀 다듬어 주라"
"나 잘 못하는데 하하하"
나이 50을 넘으니 아내에게 의존하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 중 가장 자주 기대는 것이 눈썹 다듬기다. 처음에는 혼자 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내가 해 준다. 그때마다 그녀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아래 대화는 아내가 성당에서 하는 성서백주간이라는 공부 반에 들어가고 싶은데 매번 갈 때마다 발표할 과제를 좀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이번에는 나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내가 말했다.
"나 성당에서 하는 성경 공부반에 들어가려 하는데"
"그거 좋네. 해봐"
"그런데 숙제를 혼자서 하기가 좀..... 그래. 당신이 도와주면 좋을 거 같아."
"네. 도와드려야죠"
요즘은 비혼 주의자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과 함께 그들은 협력자 겸 동반자로 하나가 되어 간다. 나무와 뿌리의 관계처럼. 둘은 오랜 생활 같이 생활하며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낸다. 싸우기도 하고 같이 사느니 못 사느니 하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들며 평생 동반자로 서로를 지탱하며 깊은 신뢰를 쌓는다. 어쩌면 결혼 후에야 사랑을 알아가는 것처럼.
수년 전부터 아내와 나는 장모님을 모시고 살며 많은 일을 겪고 있다. 장모님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을 반복한다. 아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마다 남편인 나는 늘 착한 동반자가 되길 노력했다. 병원이나 의사 선생님을 선택할 때나, 수술을 결정할 때, 약 처방전의 내용이 어떤지 등을 살필 때는 나무를 지탱해 주는 튼튼한 뿌리처럼 묵묵히 그 역할에 충실했다.
5년 전의 일이다. 장모님이 오래전부터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 등의 부작용으로 큰 사달을 겪은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아이가 종종걸음을 하듯 걸음걸이를 하셔서 이상하게 여긴 나는 처방된 약의 성분을 한 다국적 제약회사에 확인을 해 보았다. 그리고 약들에는 남용하면 부작용이 심해지는 것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할 때면 종종걸음 증상을 보였던 친척분의 일이 생각나 바로 조치를 취했다. 다행히도 얼마 후 장모님은 정상으로 돌아와 안도했지만 그냥 지나쳤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번은 집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지는 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그때도 장모님은 다행히 수술을 받으시고 재활치료를 거쳐 일상으로 돌아오셨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수술 후 재활병원을 알아보는 것부터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를 대신해 장모님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까지 여러 난관이 우리 부부를 기다렸다. 코로나로 병실도 부족했고, 간병인은 더욱 귀했으며, 재활병원에 가야만 하는데 퇴원 후 바로 집으로 오시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장모님을 설득하는 일, 좋은 시설을 갖춘 재활병원을 물색하는 것은 간단치 않았다. 코로나19의 창궐로 병원 방문이 어려워 일일이 찾아다니며 알아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며, 처음 겪는 일이라 경험이 있는 주변인들과 장시간 전화통을 붙들고 조언을 구해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 착한 동반자로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부부는 얼마의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그분들을 건강히 모시며 생활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 임무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도록 늘 착한 동반자, 따뜻한 협력자로 살아가길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나는 오늘도 장모님의 손을 잡고 당신이 좋아하시는 메밀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