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일상에서 시간을 정해 두고 철저히 지키는 분이 있다. 움직이는 시계라고 할 만하다. 바로 장인어른이시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을 한다. 정확한 시간에 세끼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신다.
장모님은 젊었을 때 종종 저녁에 부부동반 모임을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장모님은 식사 후 바로 집으로 가길 바라는 장인어른의 성화에 모임 장소를 일찍 빠져나오곤 하셨다고 한다. 초저녁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남편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식사 후 이런저런 담소는 사치품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두 분은 부부동반 모임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저녁에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남편의 잠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아내의 보호본능인 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끔 장모님의 동생 분들이 먼 미국에서 왔을 때 저녁에 집에서 만찬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 없었다. 대신 늘 인근에 사는 동생의 집에 모이곤 했다. 지금도 동생들이 낮에 인사를 오면 간단한 다과로 대신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장모님은 그런 남편과 한평생을 사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냐고 물을 때면 이해를 해야지 어쩌겠냐고 하신다.
불편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신다. 두 분만 계실 때는 오후가 되면 늘 심심했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우리 부부가 같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웃으신다. 그 모습에는 긴 시간을 헤쳐 나온 내공이 숨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집사람이야 일찍부터 경험을 한 터라 그러려니 하겠지만 나는 어색한 게 사실이다. 결혼 전부터 얘기를 들어 장인어른에 대한 독특함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같이 생활을 하면서는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가끔 불편한 자리에 초대를 받으면 마지못해 가는 경우가 있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은 그런 자리가 내키지 않는다.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2년 전쯤에는 같이 근무를 했던 국장님의 퇴직 기념 회식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영 내키지 않았다. 마지 못 해 참석한 자리, 대부분 잘 모르는 사람이었던지라 자리가 어색해 일찍 그곳을 떴다. 역시 불편한 곳은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 우린 그 불편함과 동행해야만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의무로 다가오는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인생이다.
예전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곳에서 공직생활을 하셨던 장인어른의 하루는 이렇다. 새벽 두 시 반에 기상을 하시고 오후 세 시 반에 저녁을 드신 후 잠자리에 드신다. 그래도 현역을 은퇴하시고 얼마 동안은 오후 다섯 시쯤에 잠자리에 드셨다고 한다. 장인어른의 독특한 생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침 기상과 함께 잠자리까지 온종일 거실에서 텔레비전과 함께 지내신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던 친구들과의 모임도 거의 안 나가신다. 텔레비전과 신문이 벗인 셈이다. 담배를 피우러 잠시 나가시거나, 간식이나 식사 거리를 위해 마트에 가시는 경우 외에는 거실을 지키신다.
얼마 전부터는 식사 시간이 다르다 보니 자주 혼자서 하시는 장인어른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해 왔다. 그래서 인가? 이 불편한 동거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장인어른에 대한 사위 사랑이 익어가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