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여기 수많은 하나님의 자식들이자 어린 양들이 모여있습니다. 이번 일주일도 계속 힘겹게 달린 자식들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더 힘차게 뛰어나갈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 나이다. 아멘.
다음은 찬송 시간이 있겠습니다. 다 같이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를 부르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영근은 예배 중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졌다.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근이 뚫어질 듯 바라보는 것은 피아노를 치는 경수였다.
경수의 연주에는 다른 피아노 연주자의 연주들과는 다른 묘한 힘이 있었다. 경수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실수가 꽤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실수가 다른 연주자들의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경수의 실수는 연주의 묘미를 떨어트리지 않고, 되려 실수 덕분에 피아노 연주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묘한 어긋남이 연주와 합창을 더 돋보이게 했다. 지휘자와 합창단, 그리고 합창을 따라 하는 신도들 모두 그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휘자는 경수가 실수할 때도 한 번도 경수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마음대로 연주하라고 독려하는 편이었다. 피아노 건반에 닿는 경수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경수가 찬송에 진심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편이었다. 영근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아무리 바쁘거나 겹치는 일정이 있더라도 합창단의 찬송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합창단에 들어가서 함께 연주할까도 여러 차례 고민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한다면 경수의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내 포기했다. 찬송이 끝나고 예배가 마무리되면, 영근은 경수가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고, 항상 먼저 인사했다.
수고했어, 경수야.
아, 네 감사합니다.
영근이 경수에게 몇 차례 말을 편하게 하라고 말을 했음에도 경수는 영근에게 절대로 말을 놓지 않았다.
경수야, 네 연주는 들을 때마다 정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것 같아.
실수가 잦았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실수는 무슨. 그게 핵심인데.
둘의 대화는 항상 이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영근이 넘어가려고 할 때마다, 담임목사이자 경수의 아버지 현서가 항상 경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현서는 영근이 경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항상 경수가 아닌 영근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한창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매번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목사님.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요.
주말 예배뿐만이 아니라 수요 예배도 돕고, 교회 내 여러 사무도 담당해 줘서 항상 고맙네.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평소였으면 그럼 이만, 이라고 말하고 경수와 함께 현서가 영근으로부터 멀어질 타이밍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영근아,
네. 목사님.
복음교회 부목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순간 경수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현서와 영근 모두 이를 보지는 못했다.
네?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게 어떠냐는 말이야.
저도 항상 그 길을 꿈꿔왔습니다. 담임목사님.
좋다. 네가 꿈꾸는 세계로 성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현서는 경수를 데리고 영근으로부터 멀어졌다. 영근은 다른 것보다도 자신이 이상향이라고 생각한 현서가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경수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더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경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옆에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영근은 뛸 듯이 기분이 좋았다.
영근은 부모님 앞에서 신학과로 진로를 정했다고 선언했다. 아버지의 공장을 이어받기를 원한 영근의 부모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집 안의 그릇이 모두 깨질 것 같이 큰 목소리의 호통과 악마가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의 회유로 영근을 흔들었다. 앞으로 경제적인 지원은 결코 없을 거라는 압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영근은 완고했다. 신학과가 아니라면 자신은 앞으로 삶의 목표가 없을 것이다. 목회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목회자의 삶과 정반대의 세계로 가져다 놓아도 나는 항상 내가 목표하는 세계로 뛰어가 언젠가는 그 삶에 도달할 것이다. 영근의 목소리는 낮고, 분명하고,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영근은 굉장히 공부를 잘했다. 항상 전교 1등이었다. 중학교에서도 전교 1등, 고등학교에서도 전교 1등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매번 1등을 놓치지 않은 영근도 중학교 1학년까지는 공부에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성적도 중위권을 맴돌았다. 왜 USB 용량 안에 가득 차지도 못하는 현실의 지식을 자신의 머릿속으로 넣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물어도, 공부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기 전에 먼저 공부나 하고 하라는 타박이 이어졌다. 당연히도 영근에게 이는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
영근이 늘 품고 있던 의문은 어느 날 우연찮은 계기로 완전히 해소되었다. 같은 반 친구가 주말에 함께 교회에 가자는 제안에 영근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친구를 데려와야 자신이 문화상품권을 받는다는 말에 피시방 2시간 비용을 받는 걸 약속받고 교회로 향했다. 복음교회였다.
영근은 현서의 설교를 듣고 자신이 왜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었다. 현서는 사람들이 하는 일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일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집중하고 몰두하는 법을 계속해서 일상 속에서 수련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닿았을 때 누구보다 빨리 발을 내디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근의 어두웠던 머릿속에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영근은 이날 이후 주말마다 가던 피시방 대신 복음교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매일 롤(League of Legends)을 하자고 보채는 친구들의 말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복음교회에 다니고 난 이후, 영근은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이전 시험에서 전교 200등을 하던 영근이 갑자기 전교 1등을 하자 선생님들은 영근의 부정행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학생이 갑자기 공부에서 일등을 한 것이 영근이 삶의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믿지 않았다. 반에 있는 모범생의 답안을 베꼈다고 생각한 선생님들은 영근이 하지 않은 부정행위에 대해서 취조했다. 공부에 열심히 임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는 영근의 답변에도 혹독한 회초리로 자백을 요구했다.
야, 너 베꼈잖아. 왜 거짓말해? 너같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보려고 하는 애들, 내가 한두 번 본 줄 알아? 엎드려.
짝
대답 안 해? 하, 이 새끼 봐라.
짝…. 짝….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는 영근의 허벅지를 회초리로 내려치는 소리가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짝…. 짝…. 짝….
영근은 이것 또한 하나님의 말을 진정으로 따르기 전에 하느님이 내리는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허벅지가 피멍이 들어 파란빛이 돌아도 맞아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영근은 매를 맞으면서 기도를 중얼거렸다.
하나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오늘도 미약하지만 발을 내딛고자 노력했습니다. 날마다 행복하고 의미 있게 보내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일어나. 너 이거 풀어봐.
영근은 방금까지 욕지거리를 하는 선생님조차 답안지가 없으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정자로 풀이 과정을 쓰기 시작했다. 한 문제, 두 문제, 열 문제, 스무 문제…. 영근이 선생님에게 몸의 여러 부위를 구타당하는 걸 보고 쟤 왜 저런대? 라며 비웃었던 선생님들의 얼굴에 드러났던 조소가 하나둘 사라졌다. 어느새 교무실 안에는 영근이 종이에 연필로 풀이 과정을 적는 사각, 사각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영근이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은 급격하게 늘었다. 영근이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영근은 대부분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다. 교회 내 행정 및 서류 처리 업무를 돕고, 예배당 물품 관리도 도맡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먼저 나서서 청소했다. 영근은 자신이 작게나마 교회가 운영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평생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을 느꼈다. 이전에는 자신의 태도로만 하나님께 자신이 자격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면 지금은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행위에 자신의 태도를 중첩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하지만 영근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영근이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경수와 마주칠 때가 많아졌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늘어났다. 경수와 대화를 나눌 때 영근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영근이 할 일이 모두 끝나서 교회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을 때도 공부를 핑계로 머물렀던 것은 경수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영근은 매일 경수가 예배당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경수의 눈에 띄지 않는 맨 뒷자리에 앉아 경수의 연주를 들었다. 경수의 연주는 합창단과의 합주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합주 때마다 나오던 실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한 치에 오차도 없이 유려했다.
영근은 매일 경수의 연주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부정했다. 자신은 하나님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머무는 것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럼에도 피아노가 있는 예배당을 계속해서 기웃거리는 자신의 발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매일 예배당을 향하던 영근은 어느 날, 용기를 내서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 경수에게 다가갔다.
경수야, 안녕.
네…. 안녕하세요.
정말 훌륭한 연주였어.
감사합니다. 저 그럼 이만.
경수는 짐을 챙겨 영근을 뒤로한 채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영근은 경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경수가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영근은 경수를 향해 말했다.
너 연습 때는 실수 안 하더라?
경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피아노 연주는 경수에게 유일한 분출구였다. 연주할 때만큼은 자신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고, 자신 또한 현실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자신의 손으로 누르는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로 나오는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경수는 너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와 교회에서 벗어났다. 교회 CCM이나 찬송곡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 손이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는 것과 귀에 건반을 누를 때 나오는 소리만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마치 달리기를 할 때의 러너스하이(Runner‘s high)를 경수는 피아노를 칠 때 느꼈다. 자신이 유일하게 발붙이고 있는 현실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경수는 여러 CCM과 찬송가 반주를 수천 번 연주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틀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본 예배 때 의도적으로 다른 건반을 짚었다. 경수에게는 몰래 일부로 다른 건반을 짚어 불협화음을 낼 때 자신이 이 세계의 질서를 헤치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교회 목사와 신도가 집중하고 있을 때 자신만 다른 세계에 있는 셈이었다. 그 세계는 경수를 제외하면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누구도, 심지어 아버지도 침범할 수 없었다.
경수는 어느 날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경수는 온전히 피아노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어긋났다. 자신과 피아노만의 세계에 침범하는 존재였다. 경수는 최대한 기계적으로 영근을 대했다. 자신의 세계에 더는 들어오지 말기를 바랐다. 특히 영근 만큼은 자신의 세계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영근이 자신의 아버지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세계로 향하는 것에 대한 강한 신념에 그로 인하여 삶의 의지와 성취감을 느끼는 점도 같았지만, 본질적인 색이 같았다.
경수는 사람을 색깔로 인지했다.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의 색깔을 본질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러한 색깔을 아우라라고 칭하곤 했지만, 경수는 명확하게 색깔을 구별할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회색에 가까운 무채색이었다. 흰색에 가까운 사람도 있고 검은색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몇몇 극소수의 사람들은 달랐다. 쨍한 빨간색인 사람도, 물에 여러 가지 물감이 풀어지는 것처럼 여러 색깔이 혼합된 사람들도 있었다. 색이 있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무언가가 달랐다. 똑같은 말을 해도 회색인 사람이 말을 하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도 빨간색이나 파란색인 사람이 말을 하면 말의 힘이 달라졌다. 더불어 사람의 색은 항상 변했다. 빨간색이었던 사람이 노란색이 되기도, 파란색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회색으로 바뀌면 다시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돌아오는 것을 경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색은 일반적인 무채색과 달랐다. 일반적인 검은색이 아닌 주변에 모든 빛을 흡수하는 반타 블랙에 가까웠다.
경수가 처음 영근을 보았을 때, 영근은 흰색이었다. 다만 다른 무채색의 사람들과 달랐던 점은 영근의 흰색에는 어떠한 검은색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흰색이었다. 하지만 영근이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본격적으로 보내기 시작하면서 영근의 색도 반타 블랙에 가까워졌다. 경수의 인생에서 반타 블랙의 존재는 아버지만으로 충분했다. 경수는 영근을 대할 때 최소한의 예의와 에너지만 사용했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대하면 자연스럽게 영근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근은 마치 자신이 반타 블랙인 것을 안다는 듯, 주변을 미친 듯이 흡수하면서 계속해서 경수의 근처에 머물렀다. 끈질겼다. 그 부분마저 아버지와 닮아서 경수는 영근을 더욱더 멀리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영근에게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에요. 실수 많이 해요. 그럼 이만...
아 잠시만, 혹시 바빠?
네, 가봐야 해서요.
잠시만.
영근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십자가 무늬의 다이어리였다.
이거 가져. 선물이야.
네?
선물이라고. 혹시 너무 허접해서 안 받는 거야? 이거 나름 비싼 건데.
경수는 다이어리 앞에 그려진 큰 십자가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토가 나올뻔한 걸 경수는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그니까 이걸 왜 저한테….
이걸 보자마자 경수 네가 생각나서
제가요?
응. 딱 봐도 네 거 같지 않아?
영근은 너무나도 티 없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영근의 색이 순간 살짝 밝아졌다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경수는 자신이 이 선물을 받지 않으면 영근의 색이 더 침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그래. 연습 고생했어. 매일 귀 호강시켜 줘서 고마워
영근은 이후 별다른 말없이 예배당을 먼저 나갔다. 경수는 한동안 예배당에서 영근에게 받은 다이어리를 응시했다. 십자가 무늬가 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경수는 다이어리를 불태워버릴지 고민했다. 불태워서 까만 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경수는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잠재우고 일단 가방에 다이어리를 넣고 예배당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