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가 기존 세대와 달랐던 점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득에는 쉽게 반응하지만 비논리적이고 체면치레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것이다. X세대 이후에는 대부분 이렇지만 그전 586 세대만 해도 이렇지만 않았다. 그래서 X세대와 기존 세대 간 갈등이 항상 초반에 많이 발생을 했으며,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는데 586세대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내가 입사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과장님이 새로운 업무를 내게 주었다. 일반적으로 입사 3년 차부터는 선배 도움 없이 스스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고 보고,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주어진다. 업무가 상대적으로 쉬운 부서나 경력자로 입사한 인력은 이 기간이 더 당겨지기도 하지만 경험이 많이 필요로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대략 3년 차쯤에 독립을 시킨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담당하게 된 새 업무가 아무리 봐도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업무라고 판단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일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일에 대한 비합리성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 드렸다. 과장님은 내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들으시고는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위에서 내려온 지시니까 그냥 해.’라는 짧은 대답으로 긴 나의 설명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다.
‘아, 미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짧은 편두통이 나한테 처음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1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위에서 내려오는 많은 요구들에 대해 후배들과 함께 잘 헤쳐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내려온 업무에 대해 입사한 지 3년쯤 된 후배가 이 업무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따져 들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오히려 Loss입니다. 노력 대비 얻는 성과가 얼마 안 된다고 판단됩니다. 그래도 꼭 해야 됩니까?"
"물론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Loss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data를 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거든. 그런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큰 Loss는 아니지 않을까?"
"제 생각에는 얼마 후에 이 일을 없애자고 현장에서 의견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수행을 한다고 해도. 미래가 뻔히 보이는 이런 일을 꼭 해야 합니까?"
'오래전 애사심과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는 나도 이렇게 말을 했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 그 일이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비록 몇 년 후에 모두 사라질 것이 뻔히 보이더라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그냥 따라야 하더라고. 나도 그걸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 생각보다 회사가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더라고.'
아마도 회사를 떠나기 전에는 이 짧은 편두통이 사라지지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