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녀석이 5시까지는 집에 들어오겠다고 엄마와 굳은 다짐을 한 후 친구들하고 놀러 나갔다. 큰 도시가 아니라서 친구를 만나도 갈 곳이 뻔하기 때문에 가끔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는 둘째 녀석을 잡으러 나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을 잡아주기 위해 오늘처럼 엄마와 시간 약속을 하고서 나간다. 5시가 다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다. 보통 집에 들어오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를 한번 한 후 엄마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가는 착한 아이임을 확인받은 후 집에 들어오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집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가 참다못해 5시 15분쯤 둘째 녀석한테 전화를 했는데 역시나 친구들하고 정신없이 놀다가 시계 보는 것을 놓친 것이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집에 오는 바람에 아이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하는 말은 '친구 OO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노는 시간이 너무 줄어들어 이렇게 되었다'라고 주저리주저리 오늘 시간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핑계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누구나 핑계를 댄다.
어학사전에는 핑계에 대해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구차한’ 이란 단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핑계를 댄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깎아 내리는 구차한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든 어른이든 잘못된 일에 대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핑곗거리를 찾고 핑계에 대해 먼저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대편은 알고 있다. 그녀가 구차한 변명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몸이 굉장히 좋지 않은 날 실수가 발생되었다.
보고서에 넣은 데이터가 잘못된 것이다. 후배가 작성한 보고서에 데이터가 잘못된 것을 내가 보고서 검토 중에 확인하고 데이터 수정을 요청하였는데, 자료를 최종 취합하는 사람과 소통이 잘못되었는지 최종적으로 임원에게 보고된 자료에는 데이터 수정 전 자료가 제공된 것이었다. 임원에게 보고 되기 직전에 최종 검토를 내가 한번 더 했어야 했는데, 몸이 안 좋다 보니 방심을 한 것이다. 이것이 결국 탈이 났다. 임원의 많은 질책에 입에서는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이 쌓여 갔고 나의 머리도 복잡해졌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분명 데이터 수정을 요청했는데 중간에서 누군가가
실수를 한 거지!'
'아니, 여기에는 내 실수도 있어. 결국 최종 보고서에는 내 이름이 들어가고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질책을 받으니 마지막까지 정말 문제가 없는지 철저하게 검토를
했어야 해'
'나만 혼자 질책을 받는 것은 억울해 그리고 그때 몸이 매우 안 좋았잖아'
'몸이 안 좋아서 실수를 했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 요소잖아. 그리고 여기서
누가 실수를 했다고 말을 하면 고자질하는 것 같고 내가 엄청 쪼잔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 어찌 되었든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잖아'
힘들었던 1시간의 회의는 그렇게 끝났고, 많은 말들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어떤 놈들도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나도 그랬지만 누구든 핑계를 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에요, 전 열심히 했고 정말 공정하게 하려고 했어요. 나한테 책임을 묻지 마세요. 어쩔 수 없었다니깐요.’ 이렇게 핑계를 대서 잘 넘어가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하고 똑같이 핑곗거리만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런저런 실수에 대해 핑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실수를 했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게 할 것인가에 대해 복기를 하는 행동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