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서 사람과의 만남에서 많이 지쳐있었다. 유학을 나온 사람들은 경쟁적인 사람들이 많았고, 대화를 하면 할 수록 피곤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뜸 강남출신인지를 묻지를 않나, 나이를 물어보며 서로간의 위계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피곤했다. 소개팅 앱을 사용해봐도 한때 서로 알아갈 수 있던 사람은 있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게 어려웠던 상태였다. 해외생활의 외로움에 잠식되어 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모임에서 지인이 "저 이번 휴가에 헤밍웨이 집에 가요!"라고 말을 하며 긴장된 눈빛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곳에 무슨 마음으로 가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그 공간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던 것 같았다. 마이애미에 간다고 했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헤밍웨이 집에 간다고 하니, 그 말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그 모임이 지나고 2주 후에 학교 선배랑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너는 '무시받기 싫다'라는 감정에서 그간 멍청한 세미나를 하던, 여러가지 행동들을 해온거라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된다"라고 말했다. 부인할 수는 없어도, 그것때문만은 아닌거 같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더 대화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적당히 흘려들었다. 그나마 이해해주려고 하는 시도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이후, 한 일주일이 지난 이후, 하루종일 처음으로 수학을 한 글자도 안 건드리고 내 인생에 대해서만 10시간을 생각했었다. 나는 무엇을 동력으로 살아가는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누우면 잠을 자야 하는데, 머릿속은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계속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고민이 떠오르고,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왜 잠이 안 오는 걸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걸 알아차리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 깨닫고 나니 생각이 이리저리 휘몰아쳤다. 혼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 새롭게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오래된 파일함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흩날려 버린 후, 하나하나 다시 찾아 정리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문득 떠올랐다. 아, 내가 지금까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나만의 상식, 생각,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 정비하고 있는거구나. 돌아보면 나는 지금까지 감정을 머리로만 대했던 거 같다. 그런데 이젠 뭔가 다르다. 그냥 좋다 싫다를 받아들이는건 아닌거 같고, 이렇게 감정을 곱씹을 수 있는 순간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이게 나를 흔들었다.
난 3-4살때 어렸을때 블록쌓기를 할 때 정말 특이하게 했었다고 한다. 어렸을때 집 앞에 지나가는 전철을 보면서 레고로 전철을 만들고, 전차선을 만들고 역 주변의 시설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3-4살때 라이언킹 영화를 여러번 봤다고 하는데, 어렸을때는 자폐 스펙트럼의 일환이라고 생각했고 최근에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렸을때부터 나는 세상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바라볼지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이 있었고, 그게 지금 수학전공까지 이끌었다. 라이언킹도 여러번 봤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3-4살이 그 영화에 담겨있는 생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여러번 봤던거 같다.
현대차 장학금을 받고 난 후부터는 인생의 계획을 10년단위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왜 그럴까하고 깊이 생각해보니, 그때가 처음으로 외부에서 나를 처음으로 인정해준 순간이었다. 그냥 학교안에서 열심히했다고 한게 아니라, 외부에서 처음으로 나를 인정해준 순간이었고. 구조화하고 준비하고 방향을 세우려는 힘을 그때부터 세웠던거 같다.
왜 헤밍웨이 집에 간다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왜 나는 갑자기 일반적인 휴양지에 가는 것과 다름을 느꼈을까? 헤밍웨이가 Key West에 있는 별장에 있던 시절, 사람으로서의 헤밍웨이 자체는 매우 행복한 시기였지만,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에게는 비극의 순간이었다. 이때 헤밍웨이는 의미있는 작품을 전혀 쓰지 못하던 시기라 매우 괴로웠던 시기였다. 그 시기를 거쳐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썼다. ``나는 아직도 열정은 있지만, 지쳤다. 그러나 나의 의지는 죽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산티아고를 통해 표현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여정을 거쳐나가는 산티아고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속에서 ``파멸당하더라도 패배할 수 없다.''라는 문장을 쓴 헤밍웨이의 의지가 머리속에 스쳤다.
그건 내가 그간 묻어왔던 내 생각, 연극과 뮤지컬, 영화, 그리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던 감정을 내 방식대로 소화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시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작품을 보면 좋고 나쁜걸 말하면 되고, 그걸 느끼면 되지, 뭘 해석하려고 하냐고 그렇게 심각하게 바라봐야하냐고 핀잔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것 때문인지, 사람들과 많이 만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 지내긴 하지만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어짜피 저 사람도 똑같을거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젠 내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나만의 언어로 무엇인가를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새롭게 얻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니, 너무 생경했고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다. 옛날에는 소설도 못 읽었지만, 어느순간부터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연극, 영화도 무엇인가 옛날보다는 또렷하게 보인다. 남의 시선에 갇혀 감정을 억누르던 내 모습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