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서울. 빌딩들 사이로, 복잡한 도로 위로, 지하철 개찰구 마다마다로, 비 오는 날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가만히 멈춰있는 젊은 여자, '신애'가 보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칠 필요도 없는 듯이 가만히 눈물만 흘리고 있는 그녀를 사람들은 그저 지나쳐 가기에 바쁘다.
신애는 스물넷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상경했다. 뭣도 모르고 지원한 방송국 계약직에 붙었기 때문이다. 일단 시골이 아닌, 서울에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무작정 지원한 곳이었다. 서울에 살며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돈을 번다는 사실도 들뜨지만, 방송국에서 볼 연예인들에 대한 생각으로 기대에 부푼 철없는 이십 대 초반. 대학 내내 수석과 차석을 차지하며 얻은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포부, 열정 같은 것들이 가득 차있는 나이. 그녀는 이제 막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한 사회생활 새내기였다.
첫 출근 전날, 부모님과 서울에 올라와 당산역 근처에 오피스텔 원룸을 급하게 구했다. 혼자 살기는 겁이 나서, 졸업하고 아직 직장을 구하지 않은 동생을 끌고 왔다. 5평에서 6평 남짓한 공간에 세간살이들을 집어넣으니, 딱 두 명 몸 뉘일 정도만 남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서울살이란 원래 이런 거구나 생각했고, 혼자가 아닌 것에 다행이라 여겼다.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처음 사회에 나와 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그녀는 기대에 차있었다. 방송국. TV에서만 보던 미지의 세상. 작가, 감독, 연예인들,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태프들. ‘나는 그중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들에 들떠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영상을 보관하기 위해 아주 자그마한 썸네일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대학에서 포토샵을 배운 신애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처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누가 볼까 싶은 옛날 프로그램의 썸네일이었지만,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신애씨.”
“네?”
메신저로, 함께 일하는 계약직 선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대충 해요, 그냥. 괜찮아요.”
그들은 ‘대충’해서 빨리빨리 넘겨주길 원했다. 신애가 시간을 오래 끌고 고민하고 있으면, 괜찮다고 그냥 넘기라고 했다. 신애는 힘이 쭈욱 빠졌다. 안 그래도 단순한 업무가 더 단순해졌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신애뿐만이 아니었다 보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의 업무도 그녀와 같이 단순한 일이었던 거다. 모두 의욕이나 열정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이런 분위기에 그녀는 적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주위로부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는 학생이었다. 열심히 하고 있는 그녀에게 ‘대충’하라는 말은, 무엇보다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9시 – 6시. 시간을 채우고 집에 돌아가는 게 다였다. 타닥타닥 PC 메신저로 지인과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는 소리, 쇼핑몰을 구경하느라 마우스 휠 돌아가는 소리, 이따금씩 들리는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와 코 훌쩍이는 소리만 사무실 안을 메웠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일이 매일의 업무였다. 숨 막히는 정적,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시간만 죽이는 그 공간 속에서, 신애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나마 이곳에서의 낙이란, 같은 처지인 계약직 동료들과 음악 프로그램 대기실 건물에 몰래 들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을 흘끔흘끔 쳐다보고 오는 것이 다였다.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씩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직장이라. ‘어쩌면 꿀일지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사무실 공간에 들어오면, 그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죽은 공기가 그녀의 목을 졸랐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컴퓨터 화면 귀퉁이 조그맣게 띄워놓은 창에 웹툰 스토리를 구상하며, 얼른 뭐라도 해서 이곳을 벗어나자는 생각뿐. 눈치를 보며 띄워놓은 그 조그만 창 마저도 없었다면 그녀는 숨 막혀 죽었을 것이다.
월급 액수도 매번 큰 격차를 두고 지급됐다. 일주일 중에 공휴일이라도 껴있는 날에는 쉬는 날임에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주휴수당이 깎여 월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월급은 100만 원이 넘을 때도, 또 안 넘을 때도 있었다. 게다가 2년 뒤에 끝날 파견 계약직이라는 위치는, 이곳에서 오래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다 그만두고 싶다…."
그녀는 출퇴근 때마다 건너는 여의 2교 다리 위에서 매일 눈물을 흘렸다. 당시 그녀가 사무실 컴퓨터 한켠에서 구상하던 스토리는 여주인공이 자살시도를 하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것 때문에 그녀가 우울해진 건지, 우울감에 빠져 그런 스토리를 떠올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한창 그런 생각들에 몰두했다. 특히 밤에 그 생각들은 더 깊어졌는데, 한강공원을 거닐 때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주인공이 저기서 자살시도를 하고, 그걸 바라보던 남학생이….'
한강 벤치에 앉아하던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에게까지 물음이 되돌아가곤 했는데, 그게 결말이 썩 좋진 않았다. 단순하지 않은 생각은 우울감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사는 걸까….'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 날엔, 다리 위에 올라가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밤에 내려다본 한강은 까맣다 못해 암흑에 가까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 온몸을 휘감아 끌어당기는 듯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상체를 바로 세운다. 무서움, 두려움, 살았다는 안도감. 그렇게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았다.
집으로 돌아와 곤히 잠들어있는 동생의 옆에 슬며시 자리를 펴고 눕는다.
'내가 생각한 서울은….'
이게 아니었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꿈을 안고 상경한 서울생활은, 처음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신애는 자신도 스스로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은… 우울해."
조그맣게 속삭이며 잠에 든다. 반복될 내일 따위 기대하지 않은 채.
신애의 만화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