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달 반 유럽 여행 사진을 오랜만에 봤다. 거기에 우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한 해가 다르게 부쩍 자랐음을 사진을 통해 새삼 느꼈다. 요즘, 아니 정확하게 어제오늘 사춘기 초입인 딸에게 폭풍 잔소리와 함께 통제하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 지치고, 힘들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지금의 딸은 안보이고 통통한 아기 같은 딸이 보여 나는 준비물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심란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뜬금없이 아이와 역할을 바꿔 대화해 보자고 했다. 내가 딸, 딸이 나.우리는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를 대변했다. 딸은 울먹이고 있었다. 왜 울먹이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엄마가 널 대변해서 이야기했는데 어땠냐고 물어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한다. 뭐가 틀리냐고 물어보니 엄마의 생각을 내게 강요한다고 말한 게 틀리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나는 마음이 풀렸다. 내 입장에서 엄마의 생각을 전달하는 딸을 보며, 아이는 뚱한 표정으로 뚱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뚱한 표정으로 엄마의 마음과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 말대로 나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림을 그리기위해 4장의 사진을 각자 골랐다. 그리고 각자 그리기 시작했다. 딸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마냥 신나서 에펠탑과 베네치아 사진은 꼭 그리겠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이 골라주신 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 속 작은 몸을 가진 아이를 그리며, 정성을 다했다. 그 아이가 그리워졌다. 그런데내 옆에서 신나서 그림 그리는 아이를 보니사춘기 초입의 딸은 없었고 그냥 그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그림을 그리니깐 좋다. 그냥 그림 그리는 딸과 엄마가 있네. 딸도 그렇다며,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 대한 생각은, 통통한 아기 같은 딸을 놓아주지 못해서 온, 내 마음의 준비물을 챙기지 못함에서 오는 오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