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무 Jun 13. 2024

교원상담 기록 4./ 정신 건강 병원 상담 3.

ISTP는 사회생활이 힘들다.

 상담을 하기 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는 편이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담담한 어조로 상담사에게 전달한다. 대부분 듣는 입장인 상담사는 중간중간 재진술이나 그때 나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등 나를 객관화하는 질문을 한다. 근황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오늘은 평소 나의 '잠의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약을 의존하지 않으면 1시간 단위로 깨는 '나', 약을 먹으면 2~3시간 정도 푹 자고 나머지 시간은 각성이 돼서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나 내게 ' 잠'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충분하게 잠을 자지 못하는 나를 걱정했다.

 우연히 이틀 정도 남편이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내 수면의 질이 높았다. 중간에 깨는 현상이 있어도 각성하지 않고 다시 잠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전달했더니 수면 분리가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부부는 한침대에서 자야 한다고 주장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고민이거니와 또한 남는 방이 없어서 계속 누구 하나가 소파에서 자는 것도 힘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지금은 나는 침대에서, 남편은 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어제 코 고는 남편 소리에 깨 각성해 소파로 나와서 잤다. 오늘은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다.


 나는 상담사에게 말했다.

 "요즘 괜찮아요. 학부모 민원전화도 줄었고,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 처음과 지금을 1~10 숫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어요?"

 "처음은 9나 10으로 한다면, 지금은 3 정도인 것 같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하지만 외부 자극이 들어온다면 아마 7 이상이 되겠죠."

 "그렇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것 같나요?"

 " 예전과 달리 길게 말하진 않을 것 같아요. 학교로 오시라고 하거나, 제가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것 같아요."

 그렇다. 나는 내가 많이 회복됐음을 안다. 다만 잠이 부족하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집으로 간다는 사실이 염려될 뿐이었다. 그래서 상담 선생님과는 한 달 후에 뵙기로 하고, 다음날 병원을 갔다.


 평소와 달리 내 목소리 톤이 높았는지 의사 선생님께서 학교에서도 이 톤이냐고 물어보셨다.

 "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꼴로 편도가 부어서 병원에 다녀요."

 "마이크 사용하세요. 선생님 학교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시는 것 같네요."

 "안 그래도 남편이 에너지가 100이라면 너는 90 이상을 학교에서 쓰고 온다며 예전에 많이 다퉜어요. 적어도 30, 40 정도 되는 에너지를 집에 가지고 오라고..... 이번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어요. 나름 조절하려고 하는데 막상 수업 시간에 잘 안되긴 해요. 그리고 아이들과 있다 보면 다양한 일이 발생하니깐 신경도 많이 쓰고요."

 "요즘 많이 괜찮아요. 글 쓰는 거나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하니 잡생각이 적어요. 다만 우리 집 아이들이 아쉬워하고 에너지가 적으니, 친절하지 않아요. 어제도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어요."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힘이 없다고 엄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세요."

 " 다행히 아이들에게 아침에 미안했다고 말하면, 엄마가 힘이 없었잖아요. 괜찮다고 말해줘요."

 "아침에 아이들을 꼭 안아주세요. 에너지가 있을 때 나눠 주세요."



 나의 MBTI는 'ISTP'이다. 일반적으로 MBTI가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I와 P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밖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서 혼자서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멍하니 있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무 즉흥적이라 계획 세우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조직 사회에서 틀에 짜인 대로 움직이는 것을 굉장히 불만을 느끼며 힘들어한다. 수업도 중간에 아이디어가 핑퐁처럼 튀어나오면 아이들과 즉흥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학교에서는 내 수업에 자율권도 없어, 각기 다른 선생이면서도 반 아이들은 획일적인 수업을 듣고 있고, 그걸 진행해야 해서 나는 힘들다. 또한 에너지를 90 이상 향적인 것처럼 하며 지내고 있으니, 집에 오면 에너지가 남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피할 수 없는 상황,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집에 오면 최대한 움츠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에게 요즘 미안하기도 하며, 나를 이해해 주는 가족이 고맙다.


그림 동화책, '별이 빛나는 밤, Jimmy Liao, 천개의 바람

이전 14화 정신 건강 병원 상담 2. 결핍의 승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