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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Jul 31. 2024

집밥 디톡스 외 3편

푸른여우, 하루하나 : 2024년 7월

  머리말


   아직 한여름인 듯한데, 절기는 벌써 가을로 접어들고 있답니다. 이번 방학은 신기하게도 학기 중보다 더욱 바쁜 듯한데, 그럼에도 절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꼬박꼬박 쓰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뭐 해, 쓴 이야기가 적은데! 라고 생각하는 당신. 말 그대로입니다. 미안합니다. 그 대신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기원하겠습니다. 지금 바라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불필요한 재난이 당신을 가로막지 않기를.

   덤으로 최근 있었던 일화도 하나 같이 제시드립니다. 얼마 전에 성수동 식기 매장에 갔더니 일본 핫케이크 분말 가루를 팔고 있더라구요. 그걸 들고 계산하러 갔는데, 거기 직원이 그러더라구요. 그거 파는 거 아닙니다, 하고.

   덤으로 최근에 옷을 산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드레스를 샀습니다. 제 옷은 아닙니다. 게임 캐릭터를 위해 사줬습니다. 너라도 어여쁘려무나. 저희 언니는 그 돈으로 유니클로 가서 아무 옷이라도 사지 그랬니라고 했습니다.

   (4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위에 덤으로 드린 이야기 포함하면 6가지......라고 하면 욕하겠죠?)




  집밥 디톡스


   그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조선시대의 친구에게, 어느 날 밤 편지를 썼다. 한문으로 되어 있던 원문을 한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군. 한참 변해버린 세상에 녹아드는 데에도 꽤나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어젯밤 문득 포장마차 앞에서 어묵을 먹고 있던 자신을 떠올리면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것도 같구려. 초여름이 다가오면 나라에 곡식이 없어 백성들이 굶어 죽는 일이 부지기수였거늘, 지금 이곳은 사시사철 먹을 것이 풍부한 것을 보니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소.

   그런데 백성들의 삶을 이리저리 관찰해 본 결과, 먹을 것이 풍부한 것과는 별개로 백성들의 식사 습관은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네. 지금 나의 옆집에는 서른 먹은 노총각이 한 명 살고 있는데, 그는 식량을 구매할 돈을 적지 않게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말과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로 아침밥은 거르고, 점심밥은 라면 같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 때우고, 저녁밥은 먹지 않다가 피로를 푼다는 이유로 야식을 시키곤 했네. 그리고는 소화도 시키지 않은 채 많은 양을 먹은 채 곧바로 잠에 들어버리고, 거의 매일이 그 반복일세.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고안하였네. 달에 한 번, 한 이레 동안, 집에서 밥을 차려주는 일일세. 그때는 나도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없을 때 생기는 문제가 무엇인지 자네는 짐작하는가. 자신이 먹는 음식, 먹는 양을 신경 쓰지 못한다는 것이지. 정신의 피로로 많은 양을 홧김에 먹더라도 그것을 제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을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척 소중한 일이네. 매번 식탁에서 간섭당하던 것을 짜증 냈던 천 년 전의 자신을 요즘 자주 반성하 하네.

   몸에 독소를 없애는 일을 여기서는 서양말로 '디톡스'라고 부르네만, 지금 내가 생각한 사업은 그렇다면 집밥 디톡스라고 할 수 있겠지. 자네도 한 번 실천해보게, 라고 쓰려다가 말았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집밥만 먹던 사람들이지 않았던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천 년이 흐르니 세상이 달라졌. 굶어서 생기는 병을 두려워했던 백성들은 이제는 먹어서 생기는 병도 두려워해야 하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일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일일세. 그대도 부디 몸 조심하게.





  소서小暑


    장마철이었다. 우리는 가게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나 마음에 비가 내려."

    "우산을 써."

    "마음에 우산을 어떻게 써."

    "나야 모르지."

    지금도 우산이 없어서 너랑 있잖아, 그 사람이 웃었다.






  대서大暑


   정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이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책 한 권을 펼쳐서 보여주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이 남긴 '더위를 없애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솔밭에서 활쏘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옛날 사람들은 이런 행위만으로도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인가. 선풍기고 에어컨이고 없던 시대에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르나, 요즘 사람들에게는 궁상맞은 행위일지도 몰랐다.

   냉장고가 멈췄다는 사실을 알자, 동생은 옆에서 이런 지식도 알려줬다. 형, 옛날 사람들은 겨울철에 꽁꽁 얼어붙은 한강물을 석빙고에 넣어서 그걸 여름까지 썼대.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는 동생을 옆에 두고, 나는 단수가 되기 전에 허겁지겁 물을 받아두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났다. 벌써 전기가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도 세상은 깜깜했다.

   휴대폰을 이따금 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전기가 복구될 기미는 전혀 없었다. 나는 단념하고 거실에 누워서 이따금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생을 물끄러미 봤다. 눈 나빠진다, 그렇게 얘기해도 동생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본 더위를 없애는 방법 맨 마지막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달밤에 개울가. 거기에 왜 이리 마음이 끌리는지 생각해 보면, 근 몇 년 간 일만 하느라 여름에 물놀이 한번 제대로 못 간 탓이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요 몇 년 간 나는 동생을 굶기지 않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고, 정작 내가 일을 나가 있는 사이에 동생이 집에 혼자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정전이 일어나고, 깜깜해진 공장 안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진 우리에게 조기 퇴근 명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오랜만에 깨어 있는 상태의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은 어디서 촛불을 발견해 켜놓고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은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 놀러 가자는 말도 못 하고, 조심스레 더위를 없애는 방법이 적힌 페이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아마 뭐라도 말을 섞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눅눅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나갈까?"

   어디로?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눈치로 동생이 나를 쳐다봤다.

   "멀리는 못 가고. 요 앞 청계천이라도 나가자."

   처음에는 무덤덤한 줄 알았더니, 동생은 이내 일어나서는 바삐 방으로 달려가 나갈 채비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수건 두 개에 방금 받아놓은 물을 적셔서 하나는 동생의 목에 걸어주고, 다른 하나는 나의 목에 걸었다. 한참 뛰어놀 나이에 집에만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인천 앞바다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은 이미 아홉 시가 가까웠고, 전기는 금방 돌아오면 내일 아침부터는, 언제나처럼 나는 깨어 있는 동생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달은 저만치 떠 있었다. 깜깜한 세상에서 달을 올려다보던 동생이 아얏, 하고 눈을 가렸다. 달이 밝으면 얼마나 밝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도 이내 눈이 멀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출근할 때 쓰던 스쿠터의 뒷좌석에 동생을 태웠다. 연료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왕복할 정도는 되겠지. 라이트를 켜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평소보다 더욱 확보되지 않는 시야에 사고가 날 뻔도 했으나,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동생이 혼자 있었을 시간들이 자꾸만 나를 재촉했다.

   얼마 후 청계천에 도착해, 우리는 조심스레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동생은 갑갑한 헬멧을 벗고 땀에 젖은 머리를 이리저리 흩날렸다. 동생은 냇가로 조심스레 달려가서는, 마치 바다에 처음 놀러 간 어린아이처럼 이내 신이 난 듯 이리저리 물장구를 쳤다. 튀기는 물방울이 달빛을 반사했다. 어슴푸레 보이는 동생의 미소를 나는 가만히 쳐다보며 냇가에 발을 담갔다.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동생을 비추는 달빛은 꼭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더위를 버텨야 할까. 언제 전기가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동생의 저 미소를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뿐이었다. 열대야에 미지근해진 수건으로 나는 얼굴을 닦고, 흐르는 냇가에 그것을 다시금 적셨다.






  인어 익사 사건


   휠체어에 탄 누군가에게 어느 날 마녀가 다가왔다. 마녀는 그가 탄 휠체어를 잡고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진실을 말해줄게. 넌 인어야. 지금 네가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네가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 말이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 채 매번 남들과 동떨어져야 했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언제부턴가 자신의 하반신을 본 적이 없었다. 내 다리는 어떻게 생겼더라. 그것을 여전히 보지 못했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진짜 인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밤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튿날 익사체로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은 인어가 아니라 인간이어서 죽었던 거군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답했다.

   "아니. 인어가 맞았어. 진짜 인어. 하반신은 정말로 물고기였거든. 적어도 헤엄치는 데에 지장은 없어 보였지."

   "그럼 왜 죽은 건데요?"

   "심장 마비가 온 게지. 준비 운동도 안 하고 바다에 갑자기 뛰어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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