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길고 긴 여름이 끝, 나지는 않은 듯하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에는 선선한 요즈음입니다. 휴가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평소 때보다도 업무가 과중되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인형 뽑기 기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가 단체로 안녕! 하고 인사를 하기에 사진을 찍어봤어요. 갇혀 있는데도 저렇게 해맑을 수 있다니, 저 긍정적인 마인드를 본받아야겠......다는 말을 하면 안 되겠죠?
여유라는 건 누가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기 위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번 방학 동안 했어요. 바쁘고 귀찮은 때에도 '우리 여행 가자'라고 용기를 내주신 분이 있어, 험난한 8월의 한가운데에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결국에는 지나가버리는 계절처럼, 지금의 걱정과 고민도 예상보다 순탄히 지나가기를.
(9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만든 글만 절반 이상이 됩니다만...... 저번에 양이 부실해서 나름대로 좀 만회하고 싶었답니다.)
입추立秋
마을 사람들이 신당 앞으로 모여들어 농경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농경신은 또 나만 갖고 그런다는 생각을 겨우 감추고는, 무슨 일로 이렇게들 찾아왔는지를 물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마을 사람들은, 입추가 며칠 지났음에도 날씨가 시원해지지 않는 것을, 농경신인 자신에게 따지러 온 것이었다. 무리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인 채로, 그러나 강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신께서는 여름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알고 계시나이까."
"나는 날씨를 관장하는 신이 아니라서, 자세한 연유는 모르네."
"신께서 문 앞에 써붙이신 종이를 보십시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늘은 초복이니 삼계탕을 갖다 바치게'라고."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초복에 자신은 왠지 모르게 삼계탕을 공양받고 싶었다. 그래서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에게 삼계탕을 바치라고 이야기했다. 중복이 지나고 입추가 지날 때까지, 여전히 그 종이는 문 앞에 붙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신께서 쓰신 종이에 계속 오늘을 초복이라고 지칭하셨으니, 계절신께서 문 앞에 붙은 종이를 보시고는 아직 여름인 줄 알고 돌아가신 것임이 분명하옵니다."
"허, 허튼소리를!"
농경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큰 소리로 화를 내긴 했으나,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님을 깨달았다. 자신은 신이었다. 신이 하는 말은 보통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효력을 발휘하곤 했다. 농경신의 머리에, 매일 밤마다 가을신이 문 앞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농경신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흘깃, 흘깃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농경신은 부끄럽기도 하고, 또 매번 자신을 몰아세우는 마을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문 앞에 붙인 메모를 주욱, 뜯어낸 후, 그것을 구깃구깃 뭉쳐서 마을 사람에게 던졌다.
"이러면 됐지! 이러면! 왜 맨날 나만 갖구 그래! 이런다고 날씨가 좀 시원해질 것 같아?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야! 다! 내가 고작 글 하나 잘못 써붙였다고 계절이 안 바뀌었겠어? 어? 다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애초에 니들이 삼계탕을 한 번이라도 바쳤으면 내가 저걸 놔뒀겠냐! 그렇게 오래 써붙였으면, 한 놈은 사서 바칠 줄도 알아야지! 다들 나가! 어디 오늘 밤부터 편하게 잘 수 있나 두고 보자!"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계절은 가을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선선해진 날씨에 조금은 편안히 잠에 들었다. 방황하던 계절신이 드디어 가을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해 농사 또한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날 밤 마을 사람 몇 명이 돈을 모아 삼계탕을 사서 바치며 농경신을 위로했기 때문이었다. 이번만, 봐줄게. 낮에 화낸 것이 부끄러웠던 농경신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닭다리를 물었다는 모양이다.
토핑 추가
어느 날 아침 밀린 월급이 들어왔다. 매주 샀던 로또도 처음으로 적지 않은 돈이 당첨이 되었다. 계좌를 열었을 때, 마치 돈이 증식이라도 했듯 자릿수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나는 휴대폰을 꼭 끌어안았다.
나는 그날 밤 길을 지나다니며 난생처음 사치라는 걸 부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끌리는 곳이 없었다. 결국 나는 매일 가던 분식집에 들어갔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였다.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라면을 시켰다. 그냥 라면이 아니라, 떡라면을 시켰다. 그리고 나는 옆에 써져 있는 '토핑 추가'를 보고 얘기했다. 만두도, 치즈도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김밥도 하나 주세요. 아니, 두 줄 주세요. 아, 그냥 김밥 말고, 저 저 밑에 있는 저 제육김밥이요. 저거 하나랑 참치김밥 하나랑. 나머지는 그, 사장님, 사장님 저기 초밥집처럼 그, 오마카세로 해주세요. 여기 오만 원이요.
마음의 정원
정신을 잃기 직전인 내 앞에서 친구가 손을 붙잡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정원이 있어."
또 성경 얘기야, 짜증 난다는 목소리로 힘겹게 내가 되물었다.
"어디에 있어, 정원이."
"마음에. 마음에 정원이 있어."
"무슨 싸이월드야? 마음에 정원이 있게."
더 듣지 말자. 그 상태로 정신을 놓은 나는 어느 잔디밭에서 눈을 떴다.
여기가 설마 내 정원......? 잔디밭 한가운데에 흰색 서랍이 있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20년 전에 쓴 글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훈훈한 마음으로 하나 둘 읽어보려다가, 다시 서랍 속에 글을 쑤셔 넣었다. 갖고 있던 도토리로 장작불을 사서 서랍을 태워버렸다. 초원에 불이 옮겨 붙을 위험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윽고 서랍은 다 타버렸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뒤에서 어떤 여인이 어깨를 잡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살아생전의 기록은 다 태웠느냐고. 제 친구가 다 없애주기로 했어요. 그러자 여인이 다시 말했다. 자기는 남동생한테 부탁했는데 배신당했다고. 그 사람은 허난설헌이었다.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친구에게 물었다.
"내 블로그 어떻게 했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 글 잘 쓰더라. 그냥 지우기는 아까워서 출판사에 보내려고. 너도 좋지? 네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거야."
나는 손을 휘저어 결국 친구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링크를 남기는 죽음
"백 년 뒤면 다 잊혀. 니도 죽고, 내도 죽고, 사람들도 다 죽고 다 잊혀. 그러니까 자기 부끄러운 과거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어. 흑역사라고 하지? 요즘 사람들은."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신 할아버지의 인터뷰는 아직도 유튜브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할아버지로서는 그 인터뷰가 본인의 흑역사이신 듯했다. 텔레비전에 한껏 멋을 부린 당신의 모습이 나올 때, 할아버지는 덮고 계시던 이불을 발로 차셨다. 이불킥이라고 하지? 요즘 사람들은. 나는 속으로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했다.
어쨌든 할아버지가 그런 명언을 남기신 바람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흑역사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따금 회상되곤 했다. 역사에 기록되고 싶었던 사람들이 직접 쓴 문서는 나무위키에서 삭제되는 가운데, 어째선지 남이 만든 할아버지에 대한 문서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제사 때마다 노트북이랑 휴대폰 전원을 꺼야 했다. 혹여 할아버지가 몰래 사촌들 휴대폰으로, 당신의 흑역사가 아직도 정보의 바다에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하실까 봐. 잔인한 시대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지지 말게
"지지 말게."
타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있다가, 어떤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근데 분명 나는 편의점 위치를 여쭤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지지 말게'라는 말이 무언가 암호는 아닐까 계속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응원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일을 끝내고 다시 그 길을 걷다가 또 그 할머니를 마주쳤다. 나는 오전에 하신 말씀의 의미를 여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흡족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지 않는 일일세."
여전히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애매모호하게 방치된
요즘 들어 그가 밤마다 술을 같이 하자고 권유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적당히 키위주스 같은 것을 시키고는, 혼자 잔뜩 취한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새벽 1시가 되기 전에 그는 반드시 집에 돌아갔다. 그때까지 그는 즐겁게 이야기하더라도, 12시가 조금 넘어갈 즈음이면 잠깐씩 핸드폰을 보면서, 죄송해요, 거래처 연락이네요, 하고 메일 답장을 했다. 나는 그저 이번에 그가 맡은 곳이 까다로운 곳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잠시 몸살로 조퇴했을 때 내가 임시로 그 거래처의 연락을 받게 되어 물어보니, 거래처 쪽에서는 밤에 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순간 나는 서늘한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가 술에 잔뜩 취한 채 다시금 휴대폰 메일함을 들어갔을 때, 자신의 상상을 조심스레 부딪쳤다.
"너 설마, 업무 메일 확인하려고 술 마시는 거야?"
그는 그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상태가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낮에는 말을 이따금 버벅거렸고, 손을 떨기도 했다. 처음엔 그저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맡은 탓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알코올 중독 초기 증상이었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수라도 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한번 큰 실수를 하고 나서, 날아오는 거래 메일에 무슨 말이 쓰여있을지 확인하는 게 두려워졌다고. 그래서 메일을 열어 볼 용기가 들지 않아 일을 미루다가, 결국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야 용기를 얻어 겨우 메일을 열어 답장을 한다고.
나는 그의 앞에 놓인 소주병을 조심스레 자기 앞으로 옮겼다. 그는 첫날 회식 때 소주 반 잔만 마시고는, 집으로 오는 길에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알코올 중독에 걸렸던 아버지를 아직도 증오하고 있어 술을 별로 안 마신다고. 내가 그 이야기를 하며 그를 꾸짖자, 그는 울부짖듯 이야기했다. 이제야 자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건 진심으로 부친을 이해하는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어느새 부친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자신에 대한 증오에서 나온 말일 것이었다. 그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무심코 언성이 높아졌다.
"왜 말하지 않았어. 적어도 선배인 나한테는 상담했어야지. 하다 못해 내가 그 메일 대신 열어서 이야기해 줄 수도 있었던 거잖아. 왜, 왜 너 먹고살려고 일하는 건데 자꾸 너를 죽여가면서 일을 하는데."
그러나 먼저 그의 상태를 물어보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음날 상부에 이 일을 보고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나를 원망할까? 겨우 얻은 중요직책에서 자신을 쫓아내 버린 나를? 나는 그때마다 언젠가 인사팀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조치를 취하는 일은 잘못된 게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건 사람을 애매모호한 상태에 방치하는 일이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고유명사
전날 밤 긴장 때문에 잠이 안 와서, 유튜브로 어떤 젊은 CEO의 강연을 보았다. 그 사람이 그랬다. 유명한 사람들은 이름만 대도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본다고. '나는 어떠어떠한 일을 하는, 누구누구입니다'라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 이름 석자 만으로도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성장하자고.
다음날 면접장에 들어설 때까지 나는 내 고유명사에 대한 생각을 했다. 생각해 간 형용사, 부사가 모두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 고유명사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간략하게 자기소개해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나는 유례없는 자기소개를 해버렸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감사합니다."
처서處暑
항상 방학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여름이 끝나고 드디어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날씨가 되면 어김없이 방학도 같이 끝나버리곤 하니까. 결국 방학이라는 건 날씨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자가 격리 기간 같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서 밤까지 자습을 하는 우리는 뭘까? 고3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우리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시원한 듯 시원하지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아빠 요새 담배 피우신다고 밤에 자주 나가셨거든."
"많이 힘드신가 보네."
"근데 어제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단 말이야."
"왜. 담배 냄새 때문에?"
"아니. 놀이터에 있는 트램펄린을 몰래 타고 계셨던 거야. 밤마다."
"그건 무섭긴 하겠다."
그리고 잠시 동안 우리는 다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습은 앞으로 30분 남았다. 내일도 어김없이 학교에 나와야 한다.
"방방이나 타러 가자. 내일. 방학 끝난 기념으로."
"좋지. 근데 우리 고딩인데 받아주긴 할까?"
"안 되면 성인용 방방 찾아보지 뭐."
"성인용 방방이 있어? 이름만 들으면 되게 선정적인데."
"찾아볼게...... 와 있긴 있네. 코엑스에 있대. 한 시간에 만 오천 원."
"겁나 비싸. 거긴 얼린 요구르트도 안 팔겠지?"
그날 우리가 여름의 끝자락에 했던 일은, 고3 수험생이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을 인터넷에서 모조리 긁어모으는 일이었다. 여름에 놀지 못한 모기가 가을에 활개를 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가을이 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데, 이날도 자습 중에 모기에 물린 걸 보면, 지구온난화가 심각하긴 한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코인노래방
"코인노래방에 비유하면, 저는 방에 들어가면 옆방 사람이 내 노래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신경 쓸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자기 노래 부르다 보면 어느새 그런 거 신경 안 쓰게 된단 말이죠. 남들도 똑같겠죠. 남이 나를 많이 신경 쓰겠거니 싶지만, 정작 자기 노래에 열중하다 보면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어지듯이.
물론 가끔 자기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그 잠깐 한가한 시간에, 옆방 노래 듣고 잘 부르네 못 부르네 무의식 중에 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집에 가면 옆방에서 뭔 노래를 불렀는지도 까먹는 게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예민해질 때, 저는 세상은 코인노래방 같은 거라고 자기 암시를 걸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