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 하루하나 : 2024년 9월
그런 무더운 와중에 이번 달은 추석 연휴가 있었습니다만, 잘 쉬시면서 보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란 뭉치면 싸우고 흩어지면 그리워지는 아이러니한 생물인지라, 매번 추석 때만 되면 집집마다 고함 소리가 바깥에까지 들리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희 집은 옹기종기 모여서 전을 부치면서 다소 평화롭게 연휴를 보냈던 터라, 돌이켜보면 행복이란 건 거창한 무언가 없이 그런 '오순도순함'을 간직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 옛날에 우리 집 감자탕 한다고 놀렸잖아."
"응, 그치."
"그리고 성인 되더니 술 마실 때마다 우리 가게 오고."
"그야..... 몰랐으니까. 너희 집 감자탕이 그렇게 맛있는 줄."
"어쩌냐, 우리 가게 다음 달에 문 닫아."
그러자 잠시 뒤,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어릴 적 일에 대한 사과를 이십 년 만에 받았다.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없이 라면사리를 넣어주었다.
회의가 끝나고 둘이서 술 마시러 갈 때 이 질문은 항상 나왔으나, 항상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항상 건널목에 있는 삼겹살 집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그러므로 나는 여느 때처럼 '뭘 어딜 가, 그냥 거기로 가'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계란말이 잘하는 집으로 가자."
동기의 대답은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왜 계란말이냐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나도 왠지 모르게, 계란말이가 먹고 싶어졌다. 그냥 계란말이가 아니라, 안주로 만들어진 계란말이를.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며, 내가 원하는 드라이브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조수석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뒷좌석에도 사람이 있어야 했다. 날씨는 비가 내려야 했다. 달리는 장소는 어디든 좋았다. 단지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면 되었다. 그리고 운전석에는, 그래.
운전석에는 아빠가 있어야 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은 월말에는 꼭 여행을 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고, 아빠는 이따금 아는 노래가 나오면 조용히 흥얼거리셨다. 내가 떠나고 싶은 드라이브는 그런 형태였다. 온 가족이 빗속을 뚫고 어딘가로 달려야 했다. 어디까지라도 이어져 있을 듯한 길을 함께 달려야만 했다.
"접니다."
그 말에 국왕은 아무 말도 않은 채, 입에 갖다 댔던 차를 탁상 위로 내려놓았다. 자수의 말을 뱉은 관원을 보는 눈빛은 얼핏 다정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눈동자에는 증오의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추분도 되었으니, 반란을 꿈꾼 관원들을 참수하라고 자네에게 지시했네. 봄에 조사하기로 반란자는 총 여섯 명이었으나, 붙잡힌 관원은 정작 다섯 명이었지. 아무리 그들을 고문해도 남은 한 명의 이름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는데. 방금 자네는, 그 마지막 한 명이 자신이라고 밝혔어. 이유가 뭔가."
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정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도모했던 반란이 봄에 한 차례 꺾였을 때, 붙잡힌 동료들은 운 좋게 체포되지 않은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끔찍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고문 현장에는 자신도 참석했다. 피 흘리는 동료들의 옷에 꽃잎이 흩날렸다. 혼자 남은 그는, 다음 계절에는 세상이 나아져 있기를 빌었다. 한 번도 임금이라 여긴 적 없던 이 자에게 천벌이 내려지기를 빌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은 반란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바로 결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봄, 여름, 초가을에 이르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기도. 언젠가 저잣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가 '도와주신다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자신은 그 거지를 경멸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그렇게 따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은 그 자의 최측근에서, 권력에 누구보다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고한 죄로 옥에 들어가는 이들은 늘어갔고, 그 사이에서 옥에 갇힌 동료들에게 식사량을 좀 더 늘려주는 식으로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이러다가 언젠가 풀려나겠지, 영웅이 나타나주겠지.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형 집행은 추분 이후에 실시한다. 그렇게 추분이 되었다. 다섯 명의 동료는 반란을 도모했으나 바로 죽지 않았다. 남은 한 명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목숨을 유지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반란을 달성하지 못한 분노로 몇 달을 지새웠다. 그리고 어제, 날씨가 부쩍 선선해진 어제, 결국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이 내려왔다. 처음에는 자신을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반란자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들지 못한 채로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택지임을 알았다. 너의 손으로 너의 우유부단한 삶에 마침표를 찍어라.
그리고 하늘이 너무나도 높아 보이는 오늘, 그는 자신이 마지막 남은 한 사람임을 시인했다. 그리고 왕은 왜냐고 물었다. 등에 숨긴 활을 움켜쥐었다. 그간 잃어버렸던, 아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그 활을 다시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밤은 더 길어질 것이다. 밤이 더 길어지기 전에 이 어중간한 인생에 마침표를 찍자. 그는 단지 우스갯소리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말했다.
"가을걷이는 하고 죽어야겠다 싶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