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올해도 다 갔습니다. 아, 이제야 제 정체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서재의 주인이신 여우님을 모시고 있는 견습입니다. 저는 때로는 남자가 되고, 때로는 여자가 되고, 때로는 노인이 되고, 때로는 어린아이가 되고, 때로는 다람쥐가 되고, 기타 등등. 올 한 해는 여러 형태로 변화, 변화, 변화해가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변화하기만 하면 '자아'라는 게 어디 있냐고 나이 드신 분들께서 말씀합니다만, 자아란 본래 공허한 것. 사람의 자아는 굵은 심지가 아니라 테두리 같은 것이어서, 나와 바깥세상 간에 어떤 식으로 접해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어떠한 세계와 접해 있더라도 자신을 그 형태에 맞춰가는 노력. 맞춰가기가 너무 어려워 짜증 날 때에는 희롱을 하든 뒤집어엎든 해서 즐겁게 살려고 하는 노력. 그런 걸 여러 해 동안 수행하면서 살려고 했습니다만, 아직 견습인지라 제 성격은 왜 이리도 까탈스러운지, 잘 안 될 때도 많네요. 제가 올해 변신한 대상은 대학원생인데, 매번 죽을 것처럼 인생에 잿빛 구름밖에 없다고 살려달라고 했습니다만, 막상 또 먹을 거 몇 개와 돈 몇 푼 쥐어주면 또 헤헤 대곤 해서 주변에서 어떻게 봤을지 참 궁금하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원생의 심리라는 걸 아직 잘 모르겠어서, 어느 날 주인 여우님께 여쭸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건 어떤 거예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자기가 무식하다는 겸손은 가져가되, 그래도 내가 말할 수 있는 단 하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사람."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어머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자식은 끊임없이 혼내고 야단치지만, 다른 어른들이 해코지하려고 하면, 눈을 부릅뜨고 우리 아이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정신을 말이에요.
말하는 게 꼭 옛날 사람 같다고요? 아차, 아직 변신이 덜 되었나 봅니다. 그래도 사람으로는 봐주시니 기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만 콩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