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뭔 의미예요?" / "의미는 아니고, 단서. 해석은 알아서."
학기에 접어들면서 세상에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느끼는 요즘. 반대로 말하면, 삶을 그만두기에 아직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기대하고 기다렸던 일들이 오늘 아침에 무산되고, 동시에 저 자신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팠습니다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새로운 길로 향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인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로해보는 어느 가을날입니다. 이번에는 쓴 게 별로 없어서, 5개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에 힘을 좀 실었어요, 라고 말해도 변명이겠죠?)
"이 길이 맞나?"
"뭐야, 또 고민돼?"
"응.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다른 길로 가면 더 낫지 않았을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네."
"괜찮아. 발 밑을 봐봐."
그 말에 소년이 손전등을 바닥으로 향했다. 그러자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는 무빙워크야. 그러니까 돌아갈지 말지는, 끝을 본 다음에 결정하자구."
"제가 슬퍼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멀어졌어요. 그러니까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든 밝은 척 살아야만 해요."
그리고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이 아이에게 슬픔에 잠길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래서 그녀는 살며시 아이를 품 속에 집어넣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가 한 말, 다 맞아. 사람은 어떻게든 웃으면서 살아야 돼. 근데, 그러려면 우는 시간도 있어야지. 내가 너한테 슬퍼할 시간을 줄게. 10분, 아니 20분도 괜찮아. 원하는 만큼 울고, 원하는 만큼 슬퍼해. 여기 있을게, 나는."
"오늘 내가 김밥을 사러 갔어."
"근데."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계산을 해야 됐는지 내 쪽으로 손을 뻗고 이러는 거야."
"어쨌는데."
그 말에 그가 재연해 보이듯 내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그것은 분명, '저리 비키라'는 수신호였다.
"기분 나빴겠네."
"응. 무지 기분 나빴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가만히 있었어. 정중히 얘기할 때까지."
머리맡에 귀신이 서 있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이 시야에서 흩날렸다. 나는 지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으로 시선을 향했다.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그런 것에 무서워하기에는, 이미 주변에 무서운 게 너무 많았다. 월세라든지 마감이라든지.
억울해. 귀신이 얘기했다.
나도 억울해. 내가 외쳤다.
뭐가 억울한가. 귀신이 무릎을 굽혀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애써 얼굴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몰라, 그냥 잠 좀 자게 옛날이야기 좀 해줘. 그러자 귀신이 토라진 듯 이야기했다. 눈은 감더라도 마음의 눈은 감지 말게.
일어나서 확인해보니 진짜 조선시대에 나온 이야기였다.
정연이 허리가 나은 후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한밤중의 집 앞 놀이터였다. 정연은 곱게 놓인 모래밭을 큰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이윽고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갔다. 가만히 몸을 웅크린 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얼마큼 시간이 지났을까, 땅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정연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았으나, 가로등 불빛이 눈부셔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고 있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고, 정연이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이 세상에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래서 나도 사랑을 줬는데, 본전도 찾지 못한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사랑을 줬는데, 너는 그것을 믿지 못했어."
정연은 실눈을 뜨고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거기에 서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근데 누구세요?"
그렇게 묻자, 땅 위의 인간이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며 말했다.
"그쪽 사주팔자에 있는 사람인데요. 계속 이러고 계시면 저 그냥 지나갑니다."
그 말에 정연이 몸을 일으켜 구덩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래사장에는 자신의 발자국밖에 없었다. 곧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