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완독한 책 한 권이 있다. 제목은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거야>이다. 봉현 작가가 쓴 에세이이다. 7월 말, 다니던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달하고 이런저런 정리를 마친 뒤 벌써 9월이 되었다. 근 한 달간 아니 어쩌면 지금도 나는 불온함과 싸우고 있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직무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만약 그러한 직무를 경험하게 될 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어떡하지? 란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막상 회사에 덜컥 합격을 해버리면 휴식기를 조금 더 즐길걸 하는 후회도 밀려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 때와 같지 않아서 보장된 방학, 학기가 없다. 어느 책에서 읽기를 행복은 보장된 미래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내가 언제 다시금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 일은 내 적성에 맞을까, 나는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올라온다.
이럴 때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최고다. 누구의 이야기든지 간에 정답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지혜가 더 맞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너 혼자만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주는 힘은 큰 위로가 된다. 그렇게 관련 에세이를 찾다가 발견한 책이 봉현 작가의 에세이였다. 봉현 작가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하루의 루틴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내일의 희망을 그리며 사는 사람이었다. 동생도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던 시절, 혼자 산다는 것은 자기가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나는 삶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그 말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좋든 싫든 출퇴근을 해야 하고 생산적인(어쩌면 소비적인) 삶으로 날 이끈다. 눈 뜬 아침의 기분이 어떻든 사무실에 가면 다들 일하는 분위기에 나도 휩쓸려 일하게 되고 무엇이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그런데 회사라는 울타리도 없어진 지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움직이든 것 등등 누가 이렇게 하라고 말해주는 이 하나 없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고, 그것은 곧 나에게 경험이란 이름이 되어 지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지혜가 더 풍부한 어른들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들으면 실수하는 일이 더욱 적어지겠지만 일차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보니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선택을 앞두고 이게 만약 잘못된 선택이면 어떡하지? 란 걱정이 앞서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사회에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무언가를 배워야 하나, 능력과 기술을 더 쌓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을 활용하고 현장에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조급함에 눈이 가리워 다시 처음의 실수를 반복하는 경험도 하고, 이것 정도는 껌이지~ 하면서 호기롭게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마음은 저만치 앞질러 가있는데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지난한 시간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자신이 온전히 지키고 꾸려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같이 빠른 속도에 맞춰서 빠른 결과 혹은 효과를 보기 원하는 시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만큼이라도 나를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일상에서 나타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눈 있게 캐치하려고 노력한다. 독립을 선언하고 긴장감으로 뻣뻣해진 승모근을 느끼며 잠들었던 새로운 독립 하우스에서의 며칠을 떠올려본다. 회사에서도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계속 곱씹고, 고양이 밥 주는 일조차 계획의 일환으로 수행하고, 장을 보고 밥상을 차리는 것, 내일을 뭐 먹지 고민하는 것 등등이 다 처음 하는 일처럼 어색했다. 분명히 부모님과 같이 살았을 때도 했던 일들인데 물리적으로 독립되고 나니 오롯이 나의 선택에 따른 일들이 된다는 것이 퍽 떨리는 일이었다.
언제쯤 나는 긴장을 풀고 밥을 척척 해내고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독립한지 어언 5개월이 지난 지금은 20분 만에 삼겹살 한 상을 뚝딱 차려낸다. 루트가 익숙해지니 밥하는 시간에 맞춰 음식을 하고 채소를 씻고 국을 끓인다. 그리고 든든한 한 끼를 먹는다. 소화를 조금 시키고 난 후에는 종합비타민도 챙겨 먹는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했는데 지금은 비단 어떻게 해야지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 공간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면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 지금,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생활력이 +1 되었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꾸준함이 있었다. 좋든 싫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행동 말이다. 그저 눈앞에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것. 항상 열심 다해 이뤄내진 못할지라도 그저 하는 것. 이 단순함이 쌓이면 어느샌가 영향력이란 이름이 되는 것을 봐왔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나에게도 그리고 그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우린 정말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