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찹쌀떡을 사왔다. 신촌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길을 걷고 있는데 창문 쪽에 오동통한 찹쌀떡들이 잔뜩 줄을 서있다.
우리집 아이들이 찹쌀떡을 정말 좋아한다. 가끔 빵집에 갔다가 500원짜리 동전만한 찹쌀떡이 네 개쯤 들어있는 찹쌀떡을 사올 때가 있는데, 두 아이들이 그걸 두 개씩 먹으려다 눈치 없는 엄마가 하나 먹으면, 둘로 나눌 수 없으니 아빠도 하나 먹어야 한다고 밀가루를 뚝뚝 흘리면서 아빠를 쫓아다니곤 했었다. 옛날 생각을 하며, 아주머니에게 한 상자 달라고 주문한다.
근방에서 제법 유명한 떡집인 것 같다. 빵집에서 파는 것과는 생김새부터 제법 다르다. 오동통하고 윤기 흐르는 하얀 찹쌀 겉면 사이로 팥소가 슬쩍 비추는 것을 보니 , 아, 이건 진짜다.
점심 먹고 들어와 배가 부른데도 외면하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무니, 와, 최근 먹었던 다른 찹쌀떡들과 맛이 많이 다르다. 짭쪼롬하지만 거칠지는 않은 흰찰밥을 먹는 것 같은 겉부분하며, 간은 잘 맞지만 아주 달지는 않은 직접 쑨 팥소까지. 이건 분명 이집에서, 본인들만의 레시피로 만든 떡이다. 요즘 이런 찹쌀떡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달인의 수제(手製) 찹쌀떡이구나.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음식이나 판매 물건에 '수제'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경우가 많다. 보통 그런 건 같은 종류의 제품이더라도 가격이 더 높다. 이날 사온 떡도 빵집 찹쌀떡보다는 제법 비싼 개당 1500원. 영어로도 'Handmade'가 붙은 제품들이 가격이 더 높은 걸 보면, 이제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가치가 점점 더 인정받는 세상이 오는 것 같다.
20년 전쯤 대학 때, 태국 방콕에 배낭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길에는 배낭여행자를 대상으로 장사하는 세탁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건 세탁기에 빠는게 사람 손으로 빠는 것보다 더 비싼 가격을 받았다는 것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하는게 더 힘들텐데 왜 기계로 하는 걸 더 비싸게 받는지 궁금했는데 태국어는 못하고 영어도 짧아서 직접 묻진 못했다. 다만 근처 한국 교포에게 물어보니, 개발도상국일수록, 사람의 노동가치가 싼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긴 수제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은 인간의 가치가 더 귀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온라인 어느 커뮤니티에선 '수제치킨'이라는 사진이 올라온 것으로 논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디서는 치킨을 발로 만들어 파느냐고. 다른 이들은 그 말에 수제가 꼭 손으로 만들어 수제냐, 공장에서 만들지 않은게 수제지, 공장에서 만드는 거나 집에서 만드는 거나 거기서 거기지, 뭔 차이가 있냐 등등 다양한 의견이 대립했다. 수제라고 붙이고 비싸게 받는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수제'라는 말이 사실 음식의 맛이나 제품의 품질을 보장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명품 가방 진위 판정 기준 중 하나가 일률적이지 않은 바느질이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수제'라는 단어가 붙은 상품에서 찾는 것이 최상의 퀄리티나 안전, 혹은 안정성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먹은 똑같은 찹쌀떡 사이에서 독보적인 맛을 내고 있는 찹쌀떡을 깨물며, 이 맛이 찾고 싶을 때는 꼭 이 집에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우리가 수제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공장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개성'이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제(手製) : 기계를 쓰지 않고 만든 제품이라는 뜻으로 반대말은 공장제, 공산품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그런데 손 수(手)자가 들어가는 바람에 아래와 같은 비아냥을 듣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