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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14. 2023

[D-293] 에너지를 섭취하는 올바른 방식

73번째 글

오랫동안 열중해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당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에너지를 다 소모해 버린 것만 같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고, 피로감에 몸이 축축 늘어지고,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서, 빨리 에너지원을 몸속에 공급해 주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입에 밀어 넣을 간식거리를 찾게 된다. 웬만하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내게 '당'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간식류로 말이다. 예를 들면 초콜릿. 또는 도넛. 아니면 사탕이나 카라멜이나 쿠키나 마카롱. 아니면 시럽과 드리즐이 뿌려진 달달한 커피. 당이 떨어질 때는 자연스럽게 이런 류의 에너지원을 찾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3시간 정도 연이어서 회의를 하고 나니 뒷목이 뻐근하니 아프고 머리도 잘 돌아가질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할 일은 남아 있었고 시간은 촉박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카페에 가서 바닐라 라떼와 마들렌이라는 에너지원을 내 몸과 두뇌에 공급해 주었다. 마치 수혈을 하듯이 당분과 탄수화물이 내 혈관을 타고 퍼지도록 했다. 맛있는 것을 먹어서 그런지 지치고 울적했던 기분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 먹고 나자 후회가 밀려왔다. 단 음식을 먹고 난 뒤 혀끝에 남는 불쾌감과 군것질을 자제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이렇게 에너지원을 갈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에 대한 피로가 모두 뒤섞여서 갑작스러운 '현타(현실 자각 타임)'로 나를 찾아왔다. 물론 한 번 정도 간식을 먹는다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간식 한 번에 극도의 죄책감이나 자기혐오를 느낄 필요도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후회가 밀려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원래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건강을 생각하느라 일부러 자제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습관이다. 치아 교정을 어릴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뭔가를 먹으면 바로 양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군것질을 한 뒤 양치를 하는 것이 귀찮다 보니 아예 군것질 자체를 안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더 군것질을 피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평소에 아침 점심 저녁 외의 다른 간식을 잘 먹지 않는다. 먹더라도 커피 같은 음료 종류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커피나 우유를 먹고 난 뒤에도 양치를 해야 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엔 내가 너무 게을러서 그냥 씹는 동작이 필요한 음식만 꺼리는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만 군것질을 하게 된다. 어려운 일을 맡아서 하는 중인 데다가 일정까지 촉박해서 이래저래 바쁘게 지내고 있는 탓이다. 식사 시간이 되기도 전에 에너지를 다 소모해 버려서, 그래서 자꾸만 두뇌가 간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두뇌가 빨리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신선하게 공급해 달라고 보채면 정말로 어쩔 도리가 없다. 이건 '오늘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하며 내게 정신적인 보상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 예전에 이 정신적인 보상을 주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글 보러가기). 그때 나름대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에너지원을 공급해 달라는 두뇌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지금 당장 급하게 끌어다 쓸 에너지가 필요해서 뭔가를 섭취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는 내 마음에게 만족감을 주려는 결정과는 다르니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의 일상을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추가적인 에너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게 살면 안 되는 거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좀 더 편안한 일상을 보내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인생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를 찾아오곤 하고, 모두가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이 방법은 논외다. 장기적으로 보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오늘도 고민 중이다. 몸에 곧바로 에너지를 쏘아 주는 초콜릿이나 빵을 먹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법은 없을까? 먹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방식으로 내 두뇌가 요구하는 에너지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부디 올해가 가기 전에 해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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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4일,

책상에 앉아서 웅성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Denise Michaela Baum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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