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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늘보 Dec 02. 2023

글쓰기와 명상

글쓰기와 명상은 닮은 꼴

며칠 전 글쓰기 모임에서 "글쓰기를 위한 명상 강의"라는 주제로 명상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명상과 글쓰기를 함께 놓고 보니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닮은 꼴 자매 같은 느낌입니다. 상생하는 관계임은 분명합니다.


명상의 목적은 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갖 생각들과 감정들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명상은 그 모든 것들이 잔잔히 가라앉았을 때 생각과 감정 너머에 있는 나의 깊은 내면과 친해지게 도와줍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명상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의 내면을 잘 이해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더 잘 이해했으면 그 이해에 기반해서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그 궁극적인 목표란 생각입니다.


글쓰기는 명상과 아주 닮았습니다. 글쓰기도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자 수단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나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  남에 대해서도 씁니다. 하지만 그 세상도 남도 결국 나의 시선을 통해 비친 모습에 대해 씁니다. 심지어 나에 대해서 쓸 때마저도 세상을 통해 비친 나의 모습을 쓰게 됩니다.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시선의 틀마저도 세상에서 영향을 받으며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하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결국 글쓰기 역시 나를 통해 비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에 비친 나를 더 잘 이해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명상과 글쓰기는 목적마저도 닮아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글쓰기와 명상의 관계를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명상을 위한 글쓰기"와 "글쓰기를 위한 명상" 이렇게 말입니다. 무엇이 주가 되고 무엇이 수단이 되느냐의 차이입니다. 어느 쪽에 더 무게의 추를 싣느냐의 차이입니다.


명상을 위한 글쓰기


명상 중에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명상을 위한 글쓰기는 그렇게 바라보는 생각들을 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음 관찰의 보조 수단으로 글쓰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하다 보면 생각이 뒤죽박죽 섞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글쓰기가 명상 중에 드러난 나의 모습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명상을 위한 글쓰기의 목적은 명상이지 글쓰기가 아닙니다. 때문에 쓰는 글이 논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명상 중 나타나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답보다 질문이 중요한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얻어지는 답이 말로 표현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그 지점, 더 이상 답할 수 없는 지점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느낌에 머물며 통찰을 얻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나의 사고가 확장되기도 합니다. 논리를 넘어선 직관의 느낌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명상을 위한 글쓰기를 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남에게 보여줄 글이라면 더욱더 솔직해지기 어렵습니다.


글쓰기를 위한 명상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 명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글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머리에서 나올까요? 손에서 나올까요? 머리나 손은 창조의 원천이 아니라 도구일 겁니다. 그렇다면 과거 경험에서 나올까요? 생각이나 감정에서 나올까요? 그렇다면 생각이나 감정 과거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영성가 에카르트 톨레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답니다.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마음이 비어있는 자리,
즉 내면의 고요함에서 창작합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EckhartTolle



저 역시 2년 전에 제주 있을 적에 <글은 텅 빈 마음에서> 나온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과 온갖 어지러운 것들이 다 거두어진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에서 글이 흘러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아마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님들이라면 마음이 어지러울 때 글이 나오지 않은 경험을 한번쯤은 다들 해 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글을 쓸 때 흘러나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들과 생각들을 연결하는 통찰은 모두 텅 비어있는 자리, 우리 내면의 깊이 연결되어 있는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에는 명상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도 많이 나왔습니다. 마음 챙김 명상과 마음 챙김 활동이 창의성과 학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우세합니다. 과학적으로도 마음이 현재에 머물며 현재에 일어나는 것들에 집중하여 마음을 비우는 것이 창조적인 과제를 수행하거나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작가님들의 입장에서는 명상도 하나의 글쓰기의 도구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마음의 빈 공간과 친해지는 도구, 창의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마음의 습관을 키워주는 하나의 도구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출처: www.pexels.com/



창조와 명상


스티브 잡스는  명상이 자신의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역시 산란한 마음 너머의 여백에서 드러나는 직관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인도에서 7개월을 보내고 돌아온 후 저는 서구 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다 보면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출처: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민음사


예전 글 <스스로를 믿는 법>에서 말씀드린 대로 조건화된 작은 나의 생각과 의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 나의 본성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깊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8년 전에 제가 마음이 확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 글 <우연히 행복을 발견한 날> 참조)


당시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에카르트 톨래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을 읽은 후 명상을 하면서 마음 확 열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에 온전한 평화와 깊은 만족감 속에서 약 1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때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 않겠습니까?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찰나 찰나 현존하는 가운데 모든 일이 너무나도 쉬운 겁니다. 보고물과 발표물을 제작하는 것이 그토록 쉽고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며 하나하나 눈앞의 일들을 해결해 나갔는데 저는 오로지 은은한 평화와 즐거움 속에서 자연스러운 리듬에 맞추어 움직였을 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이야기하는 Flow State (몰입 상태) 라는 상태에서 마치 찰나 찰나 순간을 따라 나의 마음이 흐르는, 말 그대로 flow 하는 느낌 속에서 흐르는 영감에 따라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2년 전 제주도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마음이 온전히 평화로운 상태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원래부터 그렇게 쉬운 건 줄 알았습니다. 사실학구적인 공부만 잔뜩 했던 저는 창의적인 글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은 모두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논문밖에 없었고 그것도 영어로만 썼었습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마음이 편안하고 현존하고 있을 때는 에세이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제 글쓰기에 대해서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고 표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후 현존의 느낌이 사그라들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서 흘러나오던 글이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는 글쓰기가 마냥 쉽고 즐겁기만 한 건 줄 알았습니다.



출처: www.pexels.com


의식과 무의식 너머에 더 깊은 의식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깊은 의식에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감의 회복> 글 참조). 우리가 어느 것을 창조하든,  그것이 글이던 작품이던 현실 창조이던 이 깊은 자리, 모든 것이 연결된 이 자리에서 할 때 그 창조의 영감이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아무리 의식에 자리에서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어 하고 의지를 불태우고 심지어 풍요롭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외쳐도 무의식을 포함한 마음에서 나는 못해, 나는 부족해, 나는 가난해. 이런 생각들이 어지럽게 맴돌고 있으면 마치 물살을 꽉 막아놓은 큰 돌멩이가 있어서 아이디어도 풍요도 잘 흐르질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꽉 막아놓은 구멍 옆으로 물이 쫄쫄쫄… 흘러나오는 셈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의지라는 것, 생각이라는 것이 아주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의식으로 애를 써서 열심히 구멍을 파서 구멍의 크기를 늘여가며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힘든 길입니다. 그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던 무의식을 넘어 선 이 깊은 내면의 자리에서 창조하는 것이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길입니다.


명상은 그 무의식을 넘어 깊은 내면의 자리와 친해지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 현존의 자리에서 영감의 원천인 나의 깊은 의식에 닿아 함께 흐르게 되는 하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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