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위신과 카리스마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합리적 지도자에서 독재자나 전쟁광까지

by 이정표
이상적인 집단과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보기 전에 현실에서 발견되는 지도자의 특성부터 간단히 다뤄보려 합니다.

2부에서 다룬 내용이 많이 등장하니 생소한 용어는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3. 지도자의 세 유형과 역동적 종교


이제 이 능동 집중에 기반을 둔 새로운 유형의 집단에 대해 다룰 차례인 것 같다. 순수하고 강력한 능동 집중을 토대로 하는 이 독특한 집단은 조직화된 집단이나 일시적 집단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데, 그 차이점은 이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성질을 통해 가장 뚜렷이 부각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도자와 관련된 문제를 다소 소홀히 다루어온 만큼, 이 지도자의 특성부터 늘어놓으면 다른 집단의 지도자와 혼동을 일으키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설명에 임하기에 앞서 사회적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자질과 관련된 문제를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럼 조직화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기본적인 특성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자.


앞서 말했듯이, 조직화된 집단의 지도자는 그 집단의 의식적 행위자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이 역할을 떠맡은 사람은, 개인적 차원의 자아상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의식적 행위자처럼, 집단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공유표상(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욕망의 대상)의 추구 및 향유 과정을 진두지휘하면서 집단의 자아상이자 공유표상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집단정신을 유지하고 발달시켜 나가게 된다.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집단정신의 측면을 감지한 뒤 그에 맞게 집단 전체를 이끄는 인물이 바로 조직화된 집단의 지도자인 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할을 위임받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집단정신과 닮은 자아상을 이미 성공적으로 발달시킨 상태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집단정신 전체와 두루 공감하면서 집단 성원들의 필요와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집단 전체의 가치와 충분히 공감을 못하거나, 상당 부분 공감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시킬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는 결국 자신의 집단을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고 가게 될 것이다.



008-20260220-014812.jpg 집단의 지도자 = 집단이 발달시켜온 가치 체계에 두루 공감하며 그 가치들을 실현해 나갈 역량이 있는 사람.



사실 사람들이 지도자 선출 시 그 사람의 내적 자질을 눈여겨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인식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로 앉혀지는 그 순간부터 집단정신을 자아상처럼 등에 진 채 의식적 행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중요한 인물인 만큼, 그가 발달시켜온 자아상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집단정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갈 가능성을 미리 가늠해보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서, 적합한 지도자의 선출 및 임명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 담당한다.


하지만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일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지도자 선출 과정에는 내적 자질들에 대한 고려 이외의 다른 요인이 섞여들기 쉽다. 어떤 요인이 섞여드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취적 위신, 또는 왜곡된 형태의 위신에 대한 매혹일 것이다. 여기서 왜곡된 형태의 위신이란 감정적으로 과장된 비합리적 형태의 위신을 말하는 것으로, 현실적 자질들에 의해 형성되는 정상적 위신 위에 부가되어 그 위신을 비대하게 팽창시켜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즉 이 왜곡된 위신이 현실적 위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경우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서는 일시적 집단, 즉 군중의 지도자에 관한 설명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앞서 군중 지도자의 영향력이 집단적 욕망의 대상인 공유표상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실로 대부분의 경우 군중을 이끄는 지도자는 공유표상의 운반자에 불과한 존재인 만큼, 공유표상의 매개 없이는 집단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때로는 군중의 지도자에게 도가 넘는 위신이 부여되기도 한다. 지도자의 존재 자체가 공유표상을 거의 완전히 대체해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공유표상의 과잉 충전 때문이다. 과잉 충전되어 정신을 닮게 된 공유표상이 그 지도자의 몸에 깃들다시피 하기 때문에, 군중 구성원 모두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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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특정 욕망을 공유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그 욕구의 충족과 분출을 위해 군중을 형성한다고 해보자. 하지만 그들은, 욕망 자체의 비대함 때문이든, 즉각적인 충족을 방해하는 어떤 현실적 요인 때문이든 간에, 자신들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해내지 못한다. 그러면 그들은 반복적인 군중 행동으로 공유표상을 과잉 충전시키면서, 원래대로라면 집단정신으로 흘러들어갔어야 할 정신적 자양분을 공유표상 주위에다 축적시키게 될 것이다.


한 번의 모임만으로 욕구가 충족되는 이상적인 상황이었더라면, 공유표상을 중심으로 한 공동 향유가 기존의 집단정신을 살찌우거나 그 집단정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 했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정신으로 향해야 할 양분이 그 정신과 동떨어진 외부에, 즉 공유표상 주위에 엉겨 붙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해서 공유 표상에 어떤 ‘정신적’ 성질이 배어들고 나면, 그 공유표상은, 마치 몸을 찾는 영혼처럼, 허공을 떠돌다 자신의 속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특정 인물과 결합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엄청난 위신과 권위를 부여해줄 것이다.*


* 이 순서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집단의 욕구를 반영하는 공유표상을 처음으로 제시하면서 그 자신을 중심으로 기존의 것과 다른 집단정신을 형성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미리 충전된 공유표상에 의해 힘을 얻게 된 지도자가 계속해서 군중을 끌어 모으며 집단적 도취를 더 강화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공유표상의 운반자에 불과했던 지도자가 카리스마 넘치는 군중의 지도자로 변환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이다. 새로이 등장한 이 지도자는 기존의 집단정신으로 통합되지 못한 정신력의 총체, 즉 괴리된 형태의 집단정신에 의해 힘을 부여받은 인물인 만큼, 개인들의 대표에 불과한 기존의 군중 지도자와 질적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너무 강조해서도 안 된다. 그 지도자의 자리에 삽입되기 위한 조건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군중의 임시대표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다수의 군중 앞에 공유표상을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군중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전적으로 공유표상의 강조충족과 연관되어 있다.



012-20260220-014812.jpg 구성원들은 집단의 열망을 뚜렷이 대변하는 인물에게 열광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군중 지도자의 일반적 특성으로, ‘맹목적이거나 광기어린 확신’, ‘단순하고 호소력 있는 언변’, ‘단호한 결단력’, ‘불굴의 의지 및 실천능력’ 등이 제시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점이 좀 더 명백해질 것이다.*


* 귀스타브 르 봉, 『군중 심리』 참조.


그렇지만 양자 사이의 이 같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두 번째 유형의 지도자는, 어쨌든, 집단 전체의 강렬한 욕구를 토대로 형성된 집단정신의 파생물을 자신의 인격 속으로 흡수해 들인 다소 비개인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개인들의 대표에 불과한 첫 번째 유형의 지도자와 분명히 차별화된다.


* 이런 비개인적 성질은 조직화된 집단의 지도자에게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지도자로 임명을 받고나서 자아상을 집단정신에 연결시키는 순간 그의 개인적 위신에는 어떤 집단적 성질이 배어들게 된다.

하지만 그는 집단정신을 집어삼키다시피 하는 군중의 지도자와는 달리,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이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군중 지도자에게 부여되는 이 위신은 결코 정상적인 위신이라 할 수 없다. 정상적인 위신이 한 집단의 다양하고 풍부한 공유표상을 두루 충족시킬 가능성을 통해 형성되는 반면, 이 위신은 단 하나의 절박한 공유표상을 확실히, 넘치도록 충족시킬 가능성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양적인 요인이 질적인 요인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두 종류의 위신은 서로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욕구가 절박해지면 그 하나의 욕구가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강렬한 하나의 욕구를 확실히 충족시켜주겠다는 약속은 다양한 욕구 고르게 충족시켜주겠다는 약속 못지않게 매혹적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조직화 집단의 지도자 자리에 이 두 번째 유형의 군중 지도자가 앉혀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 그가 제공할 수 있는 건 절박함을 통해 과장된 그 하나의 공유표상 뿐이다. 그의 모든 관심과 역량은, 그것이 집단의 위대함이든 도외시되어온 어떤 가치이든 간에, 그 특수한 공유표상을 향해 온통 집중되어 있다. 다른 공유표상에 관한한 그는 사실상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011-20251212-013947.jpg 강렬한 하나의 욕구를 확실히 충족시켜주겠다는 약속은 다양한 욕구 고르게 충족시켜주겠다는 약속 못지않게 매혹적이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극도의 일방성으로 그 하나의 공유표상만 광적으로 추구하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섬세하고 풍부하게 발달되어온 집단정신을 크게 위축 시켜 놓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과정을 그 극한까지 추구하다가 결국 자신의 집단을 붕괴의 위험으로까지 몰아넣게 될지도 모른다. 과잉 매혹의 후광을 안고 조직화된 집단의 지도자 자리를 차지한 군중의 지도자로 인해 집단 전체가 군중 단계로 퇴행을 하고 마는 것이다.


팽창된 위신이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위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이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강력하게 억눌렸던 욕구가 터져 나오는 지점 부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독재자나 전쟁광, 양극단의 포퓰리스트 등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바로 이런 환경 하에서이다.


하지만, 물론, 이처럼 극단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욕망의 불균형이야 어디든 존재하지만, 광기어린 매혹과 집단 최면을 일으킬 정도로 욕망이 축적되는 경우는 오직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지도자의 위신이 일정부분 팽창을 일으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조직화된 집단의 지도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집단적 욕망의 대변자인 만큼, 이처럼 군중 지도자의 특성도 적든 많든 보유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가 여전히 조직화된 집단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누릴 수 있는 건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위신이 우위를 점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한쪽 끝에는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의 집단 지도자가, 다른 쪽 끝에는 집단정신의 파생물을 머금은 군중 지도자가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속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 둘 사이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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