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가, 성인, 현자와 군중 지도자 사이의 차이점

정태적 종교에서 역동적 종교로

by 이정표
카리스마 넘치는 군중 지도자는 가끔 종교적 성인들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둘은 질이 완전히 다르지요.

이번 화에서는 이 두 유형의 지도자(그리고 그들이 형성하는 '군중')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다뤄보려 합니다.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한쪽 끝에는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의 집단 지도자가, 다른 쪽 끝에는 집단정신의 파생물을 머금은 군중 지도자가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속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 둘 사이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두 지도자의 특성 모두를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 어느 쪽도 아닌 완전히 다른 유형의 지도자가 존재한다. 가장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은 의미에서의 신비가성인, 현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합리적 집단의 지도자를 넘어선 지위를 차지함에도 군중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가장 문제시되는 지도자 유형인 군중의 지도자와 종종 혼동되곤 한다.


하지만 이 유형의 지도자가 지닌 본성을 검토해나가다 보면 닮은 것은 오직 외관뿐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독특한 유형의 지도자가 나타내 보이는 특성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이 유형의 지도자는 군중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자체가 일반적인 군중 지도자와 완전히 상반된다. 앞서 군중의 지도자가 매혹 통해 군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일상적 의식에 억눌려 있던 욕망이 분출될 수 있도록 매혹을 통해 의식적 인격의 중심부를 잠재우는 경향이 있다. 그가 군중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같은 최면효과 덕택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이 지도자는 결코 구성원들의 의식을 마비시키지 않는다. 이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는 인격의 중심부를 잠재우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깨어나게 한다.


즉, 그는 매혹과 정반대 되는 과정인 일종의 감화를 통해 세속적 관심사와 욕망이 지배하는 인격의 주변부를 잠재워 조건을 조성한 뒤,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의식 앞에 심층적 각성을 자극하는 공유표상(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관심과 욕망의 대상, 이 경우에는 언어화된 진리)을 제시함으로써 인격의 중심의 중심부로부터 새로운 인식과 각성이 분출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001-20260220-014947.jpg 이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는 인격의 중심부를 잠재우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깨어나게 한다.



말하자면 감각 세계를 향해 꽉 조여져 있던 집착을 느슨하게 만들어 보다 전체적이고 고차원적인 광경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잠재 상태에 있는 심층 의식의 내용물을 일깨우기 위해 관심과 주의력 수준을 일시적으로 고양시키는 일종의 능동집중 과정으로, 억압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식을 잠재우는 매혹의 과정과는 사실상 정반대 된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하는 공유표상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물론 고차적 인식의 총체인 그 자신의 초월적 자아상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궁극적 가능성을 실현하고 완성한 뒤, 마치 그것을 나눠주기라도 하듯, 그 자신의 정신적 신체이자 심층적 각성의 본체인 초월적 자아상의 측면들을 차례로 떼어내어 공유표상으로서 제시한다.


그런데 사실 이 표상에 대응되는 의미나 가치 등은 구성원들 인격의 심층부에 가능성의 형태로 이미 잠재되어 있는 것이므로, 비교적 간단한 자극만으로도 깨어나 그들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군중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된 집단적 차원의 열망이란 점에서 만큼은 본능적 욕망 충동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군중 역시 일종의 집단정신을 형성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집단의 지도자가 자신의 초월적 자아상의 단편들을 연달아 제시하면, 구성원들은 그 공유표상과 그 표상에 의해 내면에 공동으로 촉발되는 의미를 집단적으로 향유하면서 일체감 누릴 것이고, 이를 통해 기존의 것과 다른 집단정신, 아마도 지도자의 자아상과 닮은 새로운 집단정신을 서서히 살찌워 나갈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 지도자가 자신의 심층적 각성을 다 전할 수는 없을 것이고, 사실상 다 전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여전히 남아있는 자아상의 인간적인 측면을 활용해 집단의 구성원들과 공감을 한 뒤, 그들의 필요와 능력에 부합하는 표상들부터 순차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010-20260220-014812.jpg 이 '군중'의 집단정신을 형성하는 건 결국 지도자 자신의 자아상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가 제시하는 공유표상을 통해 형성되는 집단정신이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초월적 자아상을 향해 근접해 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지도자는 마치 자신이 품고 온 초월적 자아상을 집단정신을 향해 서서히 불어넣듯 군중과 교감을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집단의 형태로 재창조해낼 것이다.


이후 그 지도자는, 그 역시 인간인 만큼, 삶을 마감하거나 떠나가거나 처형을 당하겠지만 그가 불어넣어 준 초월적 자아상은 집단정신으로 살아남아 그 집단과 접촉하거나 집단에 몸을 담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성숙시키고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소위 말하는 ‘역동적 종교’*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방식일 것이다.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기본 사회 조직과 함께 발달하는 정태적 종교가 무르익은 곳에 나타나 그 종교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완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활동을 통해 형식적인 제의와 규율에는 더 고차원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악습과 인습은 철폐되며,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던 이론적 교리는 말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격상된다.


* 역동적 종교와 정태적 종교에 관한 내용은 앙리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참고. 이 두 유형의 종교를 인도 전통에 등장하는 ‘신들의 길devayana’과 ‘아버지들의 길pitryana’에 각각 대응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습관의 몸을 타고 기예가 문득 습득되듯, 정태적 종교라는 기반 위에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이다.*


* 현실에서는 정태적 종교에서 역동적 종교로의 이 같은 이행이 그리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외부에서 유입된 역동적 종교가 기존의 정태적 종교를 완전히 몰아내거나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자체적으로 분출된 역동적 종교가 기존의 종교와 갈등을 빚으며 쇄신을 자극한 뒤 다른 곳으로 유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정태적 종교와 사회라는 기반 없이는 역동적 종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점만큼은 분명하다. 역동적 종교의 출현 과정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설명은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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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유형의 지도자를 통해 형성되는 이 고차원적 집단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일단 다소 반사회적이고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한 사회집단 내부에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통로, 또는 탈출구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초월적 인격의 구현체인 이 고차원적 집단을 통해 절대적인 진리를 일별하고 궁극적인 해방에 이를 수 있는 길이 마련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뿌리째 뒤흔들 정도로 혁신적인 성과인 만큼, 그야말로 ‘하늘의 문이 열린 것’에 빗대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광경이 펼쳐진다. 즉, 이 집단의 출현은 그 집단의 이상에 맞게 기존 사회의 구성원들을 조율하고 끌어올리라는 암묵적 요구로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특정 기예와 관련된 직감적 이해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이 그 최초의 이해와 일치하도록 자기 몸의 부분들을 서서히 조율해 나가듯, 기존 사회집단 역시 집단의 구성원들을 그 이상에 참여시킬 나름의 의무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일은 과연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 관대함헌신이라는 두 용어로 표현되는 하나의 원리를 통해서이다. ‘공감에 기초한 넘쳐흐름’과 이 태도에 내재된 무집착을 통해 촉발되는 ‘인식 수준의 고양 및 각성’, 이것이 바로 고차원적 가르침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축적된 성과물에 대한 능동 집중적 관심에 기반을 둔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온 주제 하고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이점에 대해 조금만 더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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