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증식에서 자기 비움으로
지난 화에서는 집단이 어떻게 해방에 이르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글에서는 이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좀 더 자세히 다뤄보려 합니다.
연관된 내용은 전부 링크로 첨부해 놓았으니 함께 참고해주세요!
먼저 도취의 효과에 대해 설명한 내용부터 간단히 되집고 넘어가기로 하자.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성취를 대상으로 도취를 일으킨 사람이 그 자아상징(획득된 사회문화적 성과)에 중심을 잡고 관심을 외부로 향할 경우, 그는 자신의 자아 상징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동일화의 과정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태도는 안으로 조이고 밖으로 밀쳐내는 수동 집중의 특성이 발현되어 나온 것으로, 인식의 측면에서는 자기 과시로, 행위의 측면에서는 모방에의 요구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성상 공격성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자기 복제의 쾌감에 휩싸인 나머지 상대의 영역을 다소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도취 특유의 배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기중심적 행위로서, 사실상 과잉 충전된 자아상징을 상대 인격 속에다 삽입해 넣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는 능동 집중의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아상징을 대상으로 한 능동 집중적 관심이 외부로 향할 때는 능동집중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태도상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아마 이 경우에도 인식과 행위 두 측면으로 나누어서 보면 이 변화의 성질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일단 인식의 측면부터 보면, 도취와 연관된 인식상의 태도인 자기 과시는 상대의 처지에 대한 공감으로 변하게 된다. 자아상징에 대한 인식을 강요하면서 그 자아상징과 반대되는 특성들을 밀쳐내던 당사자는 이제 상대의 영역으로 옮겨가 상대가 처한 상황을 함께 느끼게 되는데, 이 태도에는 능동집중 특유의 개방성과 포용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편, 행위의 측면에서는 모방을 요구하면서 자아상징을 부과하던 태도가 상대의 상황에 맞는 넘쳐흐름으로 변하게 된다. 공감의 노력을 통해 상대의 경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 그의 입장을 이해한 뒤 그 상대의 필요에 맞게 베풂으로써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자아상징을 단순히 강요하는 것과는 분명 구분되는 태도로, 역시나 능동집중 특유의 융화적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그렇다면 공감에 기초한 베풂, 또는 넘쳐흐름이라는 이 태도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같게 만듦’, 즉 동화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베풂이 목적으로 삼는 건 궁극적으로 상대를 자신과 대등한 상태로 이끌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나눔이든 행동을 통한 봉사이든 지식의 공유이든 간에, 이 같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도 자신이 누리는 것을 남들도 누리도록 해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유도하면서 상대를 자신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데서 자기중심성을 초월한 어떤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에 기초한 넘쳐흐름, 즉 동화라는 이 태도를 도취적 자기 복제 행위와 연관된 동일화 과정의 승화된 형태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낮은 차원 욕망을 그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더 높은 차원 욕망으로 대체하는 것이 승화의 본질적 정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적절한 제어를 통해 성욕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떠올려본다면, 동일화와 동화 사이의 이 같은 연관성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어쨌든 이것이 바로 축적된 성과에 능동 집중을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외적 효과이다. 이과정은 합일에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능동 집중 자체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능동 집중이 주변 사물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는지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 영역, 즉 자아상의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리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능동집중의 특성을 머금고 흘러든 자아상징의 기억이 주변에 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아마도 능동집중 특유의 개방성과 포용성으로 주변을 감싸 안으면서 자아상을 질적으로 고양, 확장시킬 것이고, 이를 통해 한 개인의 인격을 유연하고 섬세하게 변화시켜 놓을 것이다.
외부로 향한 능동 집중적 관심에 의해 자아상징이 타인의 인격 속으로 녹아들어갔듯이, 이 경우에도 능동 집중을 통해 기존 자아상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개방되고 넓어지는 것이다. 이는 도취적 관심에 의한 자아상의 팽창 및 분열 과정(아래 링크 참조)과 완전히 상반되는 과정으로, 능동 집중과 수동 집중 사이의 대립 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해준다.
그렇다면 자아상에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일단 그 변화는 아마도 점진적으로 그의 각성을 자극해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에 눈을 뜨게 할 것이다. 즉, 그는 팽창을 일으켰을 때처럼 부족하다는 느낌에 떠밀려 과잉추구와 축적에 몰두 하는 대신 기존 추구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보다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대상에 대한 헌신으로 점차 이행해나가게 될 것이다.
내면 영역이 순화되고 확장됨에 따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식이 흘러들어 관심의 대상을 서서히, 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놓는 것이다.*
* 흔히 말하듯, 욕망에 끝이 없는 이유는 도취로 인한 자아상의 팽창 현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일 이 과정이 넘쳐흐름을 통한 고양으로 전환된다면, 욕망은 점차 고차원적 열망으로 승화되다가 결국에 가서는 본능적 욕망으로서의 성질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편, 이와 더불어 그는 향유에 대한 도취적 탐닉 역시 멀리하게 될 것이다. 팽창에 의해 자아상이 비대해 졌더라면 그 자아상을 먹이기 위해 과잉 향유에 탐닉 했겠지만, 여기서는 자아상의 질이 변하고 관심사가 이전된 만큼 향유를 적당히 삼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이른바 ‘절제’하는 태도를 통해 다시금 넘쳐흐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셈인데, 이 같은 절제는 도취를 경계하고 삼가는 심적 태도가 외부로 표현되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당사자의 관심과 공감 영역이 밖으로 넓어지는 동시에 안으로도 깊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양방향으로 동시에 확장되는 이 운동은 정신적 인식의 쇄신 및 확장 과정을 특징짓는 기본 특성과도 같은 것으로, 관대함과 헌신이라는 두 가치의 근원적 일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추측컨대 이 과정이 오랜 기간 지속된다면 당사자는 외적인 공감 범위를 넓히고 내적 각성을 심화시킴으로써 보다 ‘큰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 ‘큼’은 과도한 추구와 향유 및 자기 증식에 몰두하는 팽창된 자아의 큼과는 다를 것이다. 팽창에 기초한 양적 확장 과정은 자아의 영향력과 지배력 키워나가는 것과 연관되지만, 도취를 절제하는데서 비롯되는 질적 고양 과정은 자기중심성과 자의식을 줄여나가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자아의 주변부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이 과정은, 과잉 향유의 측면이 함께 누리는 것에 중점을 둔 넘쳐흐름으로 이전되고, 과잉 추구의 측면이 기존의 자기중심성을 탈피한 고차원적 가치에 대한 각성과 헌신으로 이전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자기 비움에 더 가깝다.*
*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일에 절제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한 노자의 말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는 도취를 절제하는 태도가 관대함과 헌신 모두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기를 비워나간다고 해서 내면이 쇠약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공허해지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내면은 도리어 더 풍족해질 것이다. 내면에서 자아 관념이 약해지면 그에 의존하는 타인 관념도 함께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나와 남을 가르는 경계가 희미해짐에 따라 그 모두를,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처럼 대하게 되어 존재 영역, 혹은 정체성 영역이 큰 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환의 과정은 모든 역동적 종교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핵심 원리로, 도취의 측면을 절제하여 흘러넘침으로 이행시키는 그 단순한 행위에 내재된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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