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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Mar 06. 2018

바라보다. 당신을 바라보는 나를.

Maudie, 2016

내 사랑

Maudie, 2016

에단 호크 ,샐리 호킨스 / 에이슬링 윌쉬


. "Show me how you see the world."

불구의 몸으로 태어난 모드를 처음으로 인정해준 문장이었다. 당신이 보는 세상을 나에게 보여달라는. 부자유한 신체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방법을 몇 갖지 못했을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아마 작은 방에 홀로 남아 늘 창 밖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작은 액자 너머의 세상을 오래도록 지켜보며 맑은 눈 속에 작은 풍경 하나 놓치지 않도록 천천히 담고, 시간 따라 변하는 풍경을 머릿속에 한 장씩 그리면, 그들은 서로 겹쳐가며 그녀만의 시선으로 남는다. 그녀의 세계는 짙고 넓어지고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둘 수 없는 때가 되어 붓 끝을 타고 흘러나온다.



.  당신의 시선 닿는 곳

지저분한 창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드와 에버렛의 시선이 맞닿는 지점을 쫓다가 나는 어느새 그들의 눈길 닿는 곳을 함께 바라본다. 영화는 내내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네모난 영화 속, 액자 같은 창문의 프레임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끝없이 일깨운다. 무뎌져 왔던 '바라봄'의 행위를 다시금 낯설게 만들고 마치 처음처럼 시선을 내딯게 한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나 한 번도 여기 도착한 적 없던 풍경, 그 위에 몇 겹이고 쌓여온 시간, 늘 흐르고 있었지만 매일 달랐던 공기,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의미 있게 만드는 당신의 모습. 우리는 가끔 아주 가까운 이의 얼굴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나는 당신의 얼굴에 쌍꺼풀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당신은 새삼스레 내 얼굴의 주근깨를 발견한다. 다만 아름다운 것들은 그 자리를 지키는 법이 없다. 잘 보고 있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 인생이 담긴 창을 가지고도,

우리의 세상은 대체로 시간에 뭉개져 그 자리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알고 있는 장면, 충분히 그려낼 수 있는 다음 풍경들처럼,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도 꽤 훌륭하게 '보지 않는 세상'을 보는 체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새로 찾아든 계절을 한참 놓치거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아름다움과 슬픔에 무뎌진다. 다만 영화의 처음부터 모드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옷을 잘 입던 오빠가 차려입은 근사한 정장, 집에 찾아온 손님의 예쁜 구두, 상점의 진열대에 새로 들어온 상품, 걸어가는 그녀를 스쳐가는 장면들까지. 아마 그녀에게는 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증명하기 위한 치열한 분투였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좋아해요." 말하던, 보는 것 외에 자신이 끼어들 틈 없는 세상을 마주한 그녀에게 가끔은 '보는' 것만이 가장 소중해 보였다.





. 당신이 담긴 창

모드는 걷는다. 풍경에 자신이 온전히 담기는 줄도 모르는 채로, 창문 속 주인공이 되어 걷는다. 저 너머는 바다, 푸른 경계로 이어지는 하늘, 투명한 배경에 수채화로 칠한 노을과 흐린 안개 속을, 푸른 초록과 포근한 눈밭 위로, 모드가 걷는다. 스치는 모든 길, 지나쳐온 수많은 당신들, 시간은 정성들여 보는 사람에게만 기억된다. 다만 스스로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에 담겨간다.

에버렛은 불안했다. 늘 흐릿하고 뿌연 장면만 안개처럼 남아 불안은 분노가 됐다. 상대방이 잘 보이지 않기에 뾰족한 날을 세웠다. 처음으로 맑게 보였던 것은 모드였고, 이 빛이 모두에게 너무도 밝고 찬란해 더 이상 자신을 비추지 않게 될까 걱정했다. 다만 모드는, 그와는 반대로 다른 이들의 시선에 자신이 담기지 않는 줄만 알았다. 대신 더 많이 사랑하고 담으며 살았으나, 늘 당신의 포근한 품이 그리웠다.






. "I SEE YOU" / "I WAS LOVED"

가끔 의도된 말들은 우리가 공들여 쌓아온 다른 언어들을 망가뜨린다. 뛰어난 영상미와 곳곳에 숨은 연출 장치들, 우리의 몸짓을 의미 없게 만드는 말들이 있다. 다만 이곳에 흐르는 언어는 당신의 가슴에 성실하게 발화되어 울음처럼 흔들고 갈뿐,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사라진다.

에버렛은 모드에게 당신 때문에 불행해졌노라 말한 뒤에야, 불행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에버렛은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모드를 찾아가 고백한다. "I see you." 나는 당신이 보인다고. 그제야 모드는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비춘다는 걸, 본인 또한 창 속의 한 장면이었음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에버렛에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완성되는 한 마디를 선물한다. "I was loved." 당신에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이 나의 모든 마침표가 되는 순간, 나의 전부가 당신으로 인해 충분했다는 말을 전한다. 에버렛이 견뎌온 흐린 시간 속 모든 불안을 거두어 가는 위로. 모드에게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에버렛에게는 사랑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간절하지 않았을까. 사랑이 존재할까 의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랑할 대상이고,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일 테니까.


.  바라보다. 당신을, 바라보는, 나를

자식을 잃고, 가족이 나를 서로 떠넘겨온 시간 속에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모드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았다. 모드와 에버렛을 지켜보다가 이내 깨닫는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 속에 담긴 나를 바라보는 일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행위에 담긴 영원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을 바라보는 순간은 영원하고 이 시간은 언젠가 끝난다. 아름다운 것들은 제자리를 지키는 법이 없다. 지금 정성을 다해 보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이 희미해진 뒤에야 놓친 당신을 그리워하며 흐릿한 이미지 속을 언제까지나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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