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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민 회계사 Sep 15. 2020

아빠에서 아버지, 그리고 다시 아빠로...

마지막 이별 인사

안녕하세요 김승민입니다

아버지가 떠난 후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써보고 있습니다




NEXT의 '아버지와 나 PART 1'

자세히 기록해둔 건 아니지만

제가 가장 많이 들은 한국 가요 앨범은

1992년에 발매된 넥스트(NEXT)의 1집 <Home>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딱히 듣고 싶은 노래가 생각나지 않을 때

<새우깡>의 광고음악처럼

'손이 가요 손이 가'는 앨범입니다

한 그룹의 첫 번째 앨범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모든 트랙이 다 좋습니다.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FAST FOOD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 바늘 보면서~'

로 시작하는 3번 트랙 <도시인>이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었던 곡이었습니다


사실 이 앨범을 어린 시절에 들을 때는

2~3개의 히트곡만 골라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며 많이 듣게 된 곡이 있는데

바로 7번 트랙의 '아버지와 나 PART 1'입니다


이 곡은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혹은 넥스트의 팬이 아니라면 접근하기 약간 어렵습니다

1. 일단 곡의 길이가 무려 약 8분에 이르고

2. 일반적인 노래가 아니라 배경음악이 있는 나레이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디오 등 대중매체에서 이 곡을 들은 기억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사의 모든 내용이 모든 이에게 공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가사를 둘러싼 정서가

신해철이라는 한 아티스트의 내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 곡은 제게 8분이라는 시간을

아버지만을 오롯이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빠'

저 역시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어가며

아버지에 대해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점차 변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과 생각들이 변한 최초의 시점은

그를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부터 가 아닐까 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아버지를 <아빠>로 부르게 되면

버릇이 없거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아빠>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것처럼

<아빠>를 <아버지>로 부른다는 것은

더 이상 <아빠>의 곁에 있는 아이가 아닌

독립적인 인생을 찾아가는 

<어른>이 시작되는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아빠'

장례를 치르면

그 과정 중에 입관이라는 절차가 있습니다


입관은

화장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고인과 이별의 인사를 하는 시간입니다

시각적으로는

고인의 육신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본인의 인생에서 상상해본 장면이 아닐 것이기에

저 역시 입관의 순간 굉장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저의 인생에 날개를 달아주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

아들로서 별로 해드린 것이 없다는 자식으로서의 미안함

투병으로 볼이 패인 어색한 마지막 얼굴조차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이별에 대한 슬픔


이런 감정들이 모여서

제가 마지막으로 관을 붙잡고 울면서 할 수 있었던 말은


아빠...


였습니다

아쉽게 나머지 말들은 울음 속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른이라는 틀 속의 <아버지>가 아닌

어린아이로서 마음속 깊이 품고 있었던 <아빠>와

마지막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첫 아이가 6살 때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른되면 아빠 안아주고, 목마도 태워주고, 감기 걸리면 사탕도 주면서 돌봐줄게"


아마 본인이 아팠을 때 제가 해준 것들을 기억해서 한 말 같은데

저도 기분이 좋아서 스마트폰에 바로 기록을 해두었습니다


저는 저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없기에

아빠도 어린 시절의 저로 인해

기록을 해둘 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 있으셨을까

궁금해지는 어느 새벽입니다




[참고] '아버지와 나 PART 1'의 가사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 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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