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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관찰: 골목 러너, 도시를 사랑하는 법

달리기는 도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by 경쾌늘보
노잼 도시를 꿀잼 찾게 하는 마법, 달리기


아들레이드? 애들레이드?


달씨가 한국에서 직장 다니며 호주로 이민 준비 하던 시절. 얼추 일정 윤곽이 나왔을 때 직장상사들과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했다.


“아, 아틀란타~”

“아, 아들 뭐?”.

그떄마다 달씨는 웃으며 정정했다.

“미국 아틀란타 아니고 호주 아들레이드요.” “아들 아니고 아들레이드”.


당시만 해도 시드니나 멜번 아닌 생소한 이름의 도시 아들레이드가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은 흔치 않았다. 더구나 왜 그 도시로 간다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 뭐하는 도시인데?”

“그런 곳을 왜 가는거야?”


사실 달씨 또한 그 전에 호주 여행 갔을때, ‘아들레이드’ 또는 ‘애들레이드’라고 발음하는 Adelaide는 방문 일정에서 넣을 생각도 안했었다지.



MGS 빠진 도시에서


그 도시에 달씨는 오게 되었고, 벌써 10년 이상 살고있다.

어린시절을 애들레이드에서 보내고 다른 도시에 살았던 현지인들이 은퇴 후 살고싶어 하는 도시.

누군가는 Second Home Country라고 좋아하기도 하며 정붙이며 사는 이 도시를,

달씨는 사랑할 엄두가 안났다.


그들의 축제도 운동경기도 패션도 심지어 유머도 공감이 안갔다.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아 어둡고 인구밀도도 낮아 어딜가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달씨에게는 건강에는 매우 좋으나 맛은 없는, 오가닉 푸드 같은 도시.


역동성과 흥이 주는 신명, 그녀가 아직 대도시의 MSG맛이 아직 안 빠져 나갔던 때였다.

불빛과 시끌벅적함이 그리웠고 아마 무엇보다 가족들이 그리웠던 것이다.

살아갈 수 는 있지만, 사랑할 수 는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오감으로 달리는 골목길


그런 그녀는 골목길을 좋아했다. 걸어다니며 보았던 골목들을 달려보았다.

궁금한 것은 못참는 성격에 새로운 골목들까지 섭렵하며 조금씩 멀리 닿게 되었다.

그 길들에는 오감으로 느끼는 일상의 스토리가 살아 있었다.


후각

집집 저녁 준비하는 냄새들이 새어나온다.

한국처럼 구수한 된장찌개나 청국장 냄새는 없지만

마늘 볶는 냄새, 고기 굽는 냄새, 숯불 냄새, 카레와 같은 향신료가 강한 냄새 등 코를 자극하다.

겨울이면 장작 타는 냄새들이 고향의 향을 떠올리게 한다.


철마다 길에서 맡게되는 기분좋은 향들이 달리며 하는 아로마테라피이다.

골목에서 전해지는 장미향, 라벤더향, 자스민향, 나무들이 내어주는 유칼립투스향, 아카시아향은 시마다 때마다 농도가 다르다.


청각

러너가 달리면 짖는 개들의 바킹(barking), 그 개를 혼내는 주인의 꾸짖는 소리, 담장너머 아이들이 노는 소리, 자전거가 따르릉 소리, 새들 소리, 비가 오면 내는 시냇물 소리, 낙엽이 깔려있는 길에 밟는 소리, 다른 러너의 숨소리까지.


시각

같은 계절이어도 매일 바뀌는 풍경들, 혼자 보기 아까운 식물들과 동물들, 빛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풍광들. 달리기를 멈출 수 밖에 없는 유달리 예쁜 장면들이 보물찾기이다.

보랏빛 자카란다 꽃이 활짝 핀 길을 달리는 것은 특권이었다.

달씨는 열심히 풍경을 주워 담는다. 찾아야 보이고, 나가야 보인다.


촉각

그녀는 길에 있는 로즈마리나 라벤더를 만져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미각

무엇보다 골목에는, 어디에나 작은 커피숍이 하나쯤 있다. 달씨의 달리기 친구, 카페인. 달리기의 끝은 주차 고민없이 불쑥 예쁜 카페에 들러 잠시 라테를 마셔주는 맛에 그녀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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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길, 계절을 달리는 맛


일상으로의 여행, 달리기


어떤 길을 갈까?

오늘은 어느 지역을 가볼까?

무슨 코스를 달려볼까?


그녀는 골목런이 좋았다.

구상하고 선택하여 달린 길들을 돌아보니,

애들레이드는 달리기를 시작하기 좋은 도시였다.

인구가 많지 않으니 좋은 길에서도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고, 줄 서거나 기다릴 일도 없다.

공원이나 좋은 코스들도 어디든 무료이니, 달리기만 ‘잘’ 하기만 하면 되었다.


골목길에 있는 주택들에서 사람사는 소리와 냄새, 풍경들을 지켜보니 조금 더 도시에 마음이 다가갔다.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으면 치워주게 되고, 물웅덩이가 보이면 마주 오는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작음 마음이 생겼다.


러너들이 사랑하는 책,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유명한 문구 ‘내면의 풍경을 바라보게 한다.’ 처럼 그녀의 내면의 풍경도 달리기와 함께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일까?


노잼 도시라고만 여겼던 도시에서 두 발로는 누릴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골목이나 도심에 있는 공원 속 오솔길,

작은 강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산책길,

바다나 산을 끼고 있는 트레일이나,

혼자만 알고 있는 작은 숨은 명소들.


특별하지 않은 곳, 일상의 장소들을 달리며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지고 느끼며 새로운 발견들을 계속한다. 여행하는 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주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나쁘진 않네’로 가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도시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일상으로의 여행, 달리기는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달씨는 생각했다.



| 골목길 위너

달씨는 늦은 저녁 골목길을 달렸다.

마치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외국 어딘가를 온

여행자처럼.

그리고 왠지 골목길을 혼자 달리면 위너 같았

다. 골목길 위너!













| What Inspires You?


달씨가 어느 학교 담장이 있는 골목을 지날때 걸려있는 문구가 가슴에 왔다.


어디에 사느냐 보다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멋지고, 나이에 상관없이 꿈을 이루려는 과정들이 아름답고 꿈을 이뤄낸 인생들이 멋진 것이다.


그 문구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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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nspire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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