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_완주, 축하할 일일까요?

일상의 완주자들에게

by 경쾌늘보



어떤 제목이 될까?



브런치북 제목에 '멜번 마라톤'이라 쓰고는

멜번 마라톤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오픈 결말이었죠.


25년 10월 12일, 마라톤 날짜가 다가오며

부상 문제로

이번 연재의 마지막 글은

"완주라기보다 도착"

“도전만으로 만족했다. ”

혹은,

“완주만이 마라톤의 전부는 아니다. “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될 예감/조짐이었습니다.


지난주, 두 번째 마라톤을 멜번에서 마쳤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마무리가 생겨났어요.

인생을 닮았다는 마라톤,

전혀 예측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묘미라고나 할까요.



지지 않음은


저는 종종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시 구절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주로 연습과 관련해 의지대로 하지 못하거나,

금세 꺾여버릴 때 적용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비에 졌군. “

“여지없이 추위에 졌다. “

“또 잠에 졌다.”

제가 지는 대상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뱉기 일쑤입니다.


새벽 러닝을 즐기기 위해 일어나는 러너들,

추운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사람들,

비가 와도 가기로 한 거리를 뛰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저의 얄팍한 한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마라톤을 마치고 나니

나도 지지 않는 구석이 한 가지 있음이 떠올랐습니다.

‘부상에 지려는 나에게 지지 않고’


적어도 마라톤의 코스에서는.


미련함과 무리는 한 끗 차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이 동전을 어쩌면 살살 잘 다루어 굴려 갈 수 있는 지혜를 배웁니다.



완주, 축하할 일일까요?


완주를 하면 "축하한다!"는 말을 받습니다.


첫 번째 완주는 완주 자체가 주는 기쁨이 거대했습니다.

자아도취, 자신을 축하하고 즐기기 충분할 만큼의 도파민이 생겼습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축하’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두 번째 도전도 의미 있고 자체가 멋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완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완주는 시작한 일을 달려 끝내는 것입니다.


마라톤 완주자들에게 주어지는 축하는,

열두 달의 자신과의 대화, 조율, 실망, 중재, 화해, 균형 그리고 이해까지

그간의 수고와 버팀을 인정해 주고 기뻐해주는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네 축하할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완주는 마라토너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가족을 돌보는 주부들,

공부하는 학생들,

글을 쓰는 작가와 훈련을 이어가는 선수들 등등.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완주하는 이들 모두가 완주자입니다.


도로 위 완주자들에게 축하를 보내듯,

일상의 완주자들에게도 더 넉넉한 축하와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끝낸 그대, 완주를 축하합니다. 잘 해내셨어요."


마라톤 완주를 통해 시선이 닿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나 봅니다.

자신에게, 자연에게, 달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매일의 완주자들에게.

원하기는, 기록보다 부디 다정함의 온도가 1도 높아졌길 바랍니다.


인생도 마지막, 피니시를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장례식은 장례식이란 말보다,

"인생 완주식"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날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지니며
욕심도 없이
화내는 법도 없이
언제나 조용히 미소 짓는다
...
<비에도 지지 않고> 겐지의 수첩에서


<남반구 러너의 열두달>을

두 눈으로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달씨, 마라톤 여기서 끝은 아니겠지요?

다음은 어디를 달릴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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