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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Apr 12. 2021

물에 뜨지 않는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친다는 것

봄의 열매, 여름의 사랑 (3)

나는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매번 몰두한다. 그러면 마음이 자유롭게 둥실 떠오르며 넋을 잃어 트랜스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엄마와 수영장을 다니는 동안 계절이 한 번 바뀌었다. 영하 15도를 넘나들던 기온이 어느덧 영상 15도를 넘나들고 있다. 엄마의 사고 이후 아빠의 염려가 더욱 커졌다. 엄마는 워낙 잔잔한 실수가 많은 사람이라 가뜩이나 걱정이 잦았던 터다.


“길가에 젖은 낙엽도 밟지 말어”


아빠 말대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손을 붙잡고 다니던 길. 가끔은 얼어있기도 하던 그 길에 어느덧 꽃이 피고 가로수가 푸르러지는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엄마가 안산 집에 갔을 때만 제외하고는 매주 세 번, 엄마와 나는 함께이다.




엄마는 내가 퇴근할 때부터 ‘산책’이라는 말을 들은 강아지처럼 설레기 시작한다. 수영장에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수영장에 가려면 두 벌의 수영복과 두 개의 수경, 두 개의 수건을 챙겨야 한다. 민트색 메쉬 토트백은 내가 들고 엄마는 진달래색 봄 코트를 입고 나보다 조금 앞서 천천히 걷는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똑같은 뒷모습을 하고 씩씩하게 걷는 엄마. 어느새 우리는 손을 잡고 있다.


엄마는 워낙 키가 작아 (15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엄마와 손을 잡으려면 몸을 약간 기울여야 한다. 낮은 곳에서 말하는 엄마 소리는 때때로 내 귀까지 다 전해지지 않는다. 뭐라고? 몇 번을 되물으며 걷는다. 엄마는 나무와 꽃 이름을 좋아하고, 계절이 바뀌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길의 모습에 관심이 많다. 어떤 날은 꽃잎의 빛깔에, 어떤 날은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줄기에 신기해한다. 길가에 방치된 킥보드를 어떻게 대여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고, 킥보드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궁금해한다. 신호등 앞에 있던 비둘기가 건너편 빌딩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발견하고 또.


가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사람들을 수영장 가는 길에 마주친다.


“엄마 우리 꼭 저 사람들 같아.”


나는 엄마에게 장난을 친다. 짧은 다리로 꼬리를 흔들며 걷는 강아지들처럼, 엄마는 가끔 신이 나면 엉덩이춤을 춘다. 그러면 까르르 퍼지는 웃음.




엄마는 샤워실에서부터 이미 행복해진다. 엄마는 따뜻한 물을 좋아한다. 수술한 허리에 따뜻한 물이 쏟아지도록 한참을 서서 물을 맞는다. 엄마는 자주 척추 수술 부위에 대해 묻는다. 여기쯤이야? 물으면 나는 두 개의 자국을 손으로 짚어준다. 관절경을 삽입해 수술했던 자국이다. 병원에서 엄마가 듣고 온 말은 운동 열심히 하시고 자주 걸으라는 말. 엄마는 수영복을 차려입고 꼭 앞서 걷는다. 나는 부지런히 엄마 시중을 든다. 수영복도 제대로 입혀주고 수모도 비틀어지지 않게 씌워준다. 수영장 레인을 향해 걷는 엄마는 위풍당당하다.


수영장 물높이는 1.3미터. 키가 작은 엄마는 목 아래까지 거의 잠겨버린다. 엄마의 귀여운 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수영장에서 서로 마주 보고 양손을 잡고 점프를 할 때면 엄마가 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다. 내게 가슴까지 오는 물이 엄마한테는 목까지 오는데도, 엄마는 손을 마주 잡으면 기분이 좋은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마주 보고 함께 웃다 옆 레인에서 접영이라도 할 참이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입으로 물을 먹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와르르 쏟아지는 엄마의 웃음.


“엄마. 입 다물어. 물 들어간다.”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 수영장에서 엄마는 항상 웃고 있다. 나와 같은 상급반에서 강습을 받는 수영 친구들도 내게 같은 얘기를 해주었다. 어머님이 항상 웃고 계시다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고.




수영장에 가면 우선 두어 바퀴를 함께 걷는다. 엄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고, 나는 뒤에서 접영 발차기를 연습하며 따라간다. 물속에 잠긴 채로 전진하는 엄마의 위풍당당한 두 다리를 본다. 오동통한 아기 같은 다리. 어쩌다 반대쪽 레인에서 보면 엄마의 하얀 수모만 물 위에 둥둥 떠서 움직이는 것 같다. 가끔 엄마는 명랑만화 주인공 같다.


“물 이제 안 무섭지?”

“응. 익숙해서 안 무서워.”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는다. 물속에서 보면 까치발을 서서 걷는 엄마의 불안한 발뒤꿈치가 보인다.


“요즘은 엄청 빠르게 걷지?”


신나서 말하는데 내 눈엔 속도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구, 어엄청 빠르네에. 하고 말해준다. 엄마는 그럼 또 신이 나서 의욕이 솟는 눈치다.




엄마는 겁이 많아 아직 물속에 고개를 담그고 숨을 쉬지 못한다. 수영을 5년이나 한 내 입장에선 물에 뜨지 않는 게 더 신기한 것 같은데, 엄마는 앞으로 몸을 뻗고 킥판에 팔을 얹은 채 힘 빼기를 아직 해낼 수가 없다. 해보라고 조금이라도 몰아붙이면 킥판을 손으로 잡은 채로 물속으로 고꾸라진다. 그리고 바로 겁먹은 목소리.


“아이 오늘은 안 할래.”


고육지책으로 자유형보다 배영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엄마는 배영 발차기를 먼저 연습하기로 했다. 킥판을 안고 겁먹은 눈으로 뒤를 돌아 선 엄마. 수경과 귀마개까지 착용하고 단단히 준비를 마쳤다. 발 뒤쪽을 살짝 쳐주면 엄마 몸이 물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물에 뜬 엄마는 조금씩 발차기를 시작한다. 엄마가 무릎을 세우고 종아리를 파닥대면 (무릎 대신 허벅지를 써야 한다고 말해줬지만 아직 엄마는 두 발차기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몸이 조금씩 수영장 저편을 향해 전진한다. 목표는 25미터. 엄마는 틀림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영의 아름다운 점은 ‘시나브로’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의 수련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틀림없이 아주 사소한 무엇이라도 어제보다는 더 나아져 있다. 물에 제대로 뜨지 못하는 우리 엄마 역시 그렇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엄마는 수영에 관해서라면 어제보다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있다.


겨울에서 봄이 되는 동안, 엄마의 발전의 단계는 이러하다.


- 벽을 손으로 잡지 않은 채 겁내지 않고 물속에서 걸을 수 있음

- 코를 막고 숨을 참은 채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잠시 멈출 수 있음

- 킥판을 안은 채 물에 뜰 수 있음

- (내가 손으로 등을 안듯이 잡아 상체를 모두 지지해준 채 균형을 잡아주면) 발차기를 해 진행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

- (어느새 양 손으로 양 어깨를 살짝 잡아주기만 해도) 발차기를 해 진행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

- 허리를 좌우로 움직여 균형을 맞춰가며 배영 발차기를 할 수 있음

- 손을 놓아도 물에 3초 이상 혼자 떠있을 수 있음

- (내가 손을 놓아도) 킥판을 안고 배영 발차기를 할 수 있음

- (내가 손을 놓아도) 킥판을 안고 배영 발차기를 할 수 있고 심지어 미세하게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함.


수영장에서는 자꾸만 너그러워진다. 나 자신에게 가혹하던 나도 그렇고, 배움이 느리고 겁이 많은 엄마도 그렇다. 엄마와 나는 아주 느리게 수영을 한다. 초급 레인에서도 평범한 자유형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진로는 막기 일쑤라 자꾸만 길을 비켜주고 만다. 그런 우리에게 가끔 사람들은 말을 걸곤 한다. 레인이 조금만 붐벼도 발차기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봐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에게.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서 갈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가고 싶은 대로 가세요.”

“저도 다쳐서 여기 온 거라서 걸을 거예요. 같이 걸어요.”

“편하게 하세요. 여기 다 비슷해요.”


내가 없을 때 서툰 배영 발차기를 연습하는 엄마에게 많이 느셨다고 박수를 쳐 준 분들도 있다고 엄마가 말해주기도 했었다. 익명의 친절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48년이나 일을 한 허리가 아픈 엄마도, 오늘도 수면제를 먹어야 잘 수 있는 나도.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들의 친절은 늘 조금 뭉클한 데가 있다. 엄마가 내게 수영을 배우는 모습을 보며 자주 말을 거는 분들. 둘이 똑 닮았네, 딸이죠? 딸이 효녀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쪽 집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시는 분들. 엄마는 그런 분들을 만나면 너도 좀 돌고 오라고 자연스럽게 나를 쫓아낸다. 내가 설렁설렁 몇 바퀴를 돌고 오는 동안 엄마는 오늘 생긴 수영 친구에게서 한 가정의 일대기를 듣고 와서 자연스럽게 내게 얘기해준다.


엄마 연배의 여성들이 공유하는 연대감. 그들은 어느 시간대가 가장 걷기 좋은지, 수영이 익숙지 않으면 어떻게 수영장 벽을 짚고 발차기를 해봐야 하는지, 수영장 벽을 붙잡고 양쪽 허리를 돌리면 얼마나 시원한지에 대해 공유한다. 엄마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항상 눈인사를 한다.




본래 나는 평일 저녁 상급반에서 수업을 받았다. 상급반 강습을 함께 받으며 친해진 친구들과 요즘은 다른 레인에서 수영을 하곤 한다. 강습 친구 중 하나인 H가 수업이 끝난 후 초급 레인에서 놀고 있는 엄마와 나를 발견했다. 엄마와 나는 서로 양손을 잡고 점프를 하고 있었다.


“저도 같이 뛰어요.”


활달한 H가 한 손으로는 내 손을, 한 손으로는 엄마 손을 잡는다. 우리는 셋이 되어 동그랗게 뛰기 시작한다. 잠시 후 E도 레인으로 복귀한다. 같이 뛰어요. 또 이어지는 소리. 우리는 이번에는 넷이 되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어쩐지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자꾸만 웃고 있는 엄마. 우리는 강강술래를 하듯 손을 잡고 뛰었다. 수영장의 하늘색 물빛처럼 경쾌하게 부스러지는 웃음소리.


“이번 주엔 지금 제일 크게 웃었네.”

“나도 나도.”


엄마는 화요일이면 또 신이 나서 수영복을 챙길 것이다. 엄마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 팔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부러지고 이가 깨지고 무릎이 저린 엄마. 엄마는 회복하고 있고, 느리지만 틀림없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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