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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Apr 26. 2021

겁쟁이 60대 수영 초보, 엄마의 배영 발차기

봄의 열매, 여름의 사랑 (5)

내가 수영을 하는 건 물에는 어떤 정직함이 있기 때문이다. 수영은 삶에 대한 내 인식을 바꾸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알 수 없는 물의 특성이 내가 사라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생각하게 만든 것 같다.
매들린 월러 <수영하는 사람들>






엄마는 요즘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 같다. 처음 배우는 단어를 시험해보느라 신이 난 사람처럼 쉬지 않고 조잘댄다. 수영장을 오가는 길이면 말문이 닫힐 새가 없다. 진달래빛 코트를 입고 내 손을 잡은 채 가구단지를 지나던 엄마가 불현듯 멈춰 섰다. 


"어머!"


왜 무슨 일 있어? 놀란 나. 엄마는 벽을 타고 내려오는 꽃몽우리를 본다. 노란색 개나리가 어느새 피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지나칠 수 없는 풍경. 엄마는 갈라진 벽을 타고 자란 풀 하나에도 감탄한다. 쑥을 캐러 나선 젊은 엄마를 따라 논둑 사이로 난 길을 걷던 일곱 살인 내가 생각난다. 도시 아이인 사촌 언니가 벼를 보고 '쌀나무'라고 한 순간을 엄마는 여러 번 기억하며 즐거워하곤 했다. 이 풀 무슨 풀인지 알아? 이건 미나리지. 이건 비듬나물. 풀과 나무의 이름에 대해서라면 늘 엄마가 옳았다. 엄마가 해주는 나무 이야기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거면서도 나는 매번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이 나무 이름은 뭐야?"

"사철나무지."


반질반질하게 넓은 이파리가 햇볕을 받아 빛난다.




엄마의 어떤 면을 새로이 발견할 때마다 우리의 물놀이의 빛깔도 다채로워진다. 수영장에서 엄마가 천재인가? 생각했던 순간이 여럿 있었다. 첫 번째는 내 방정으로 엄마의 귀마개가 물에 떨어져 없어져버린 날의 일이다. 엄마를 안으려다 귀 옆을 잘못 스쳐 귀마개가 날아가버렸다. 연두색 귀마개를 찾으러 잠수로 수영장 바닥을 샅샅이 몇 번이나 훑어봤지만, 끝내 한쪽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엔 수경에 달린 걸로 귀마개 사줘."


남이 하는 일이라면 늘 유심히 보고 있는 엄마가 가리킨 사람들. 귀마개를 실리콘 끈과 연결해 수경에 연결하는 방식의 귀마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귀마개를 쓰지 않는 나는 저런 아이템을 팔고 있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엄마 언제 그런 걸 보고 있었어? 엄마 천재 아니야?" 하고 깜짝 놀랐다.


원하는 귀마개를 획득한 이후 엄마는 수경에 귀마개를 장착 후 늠름하게 레인을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워낙 대범해 수경을 머리에 얹는 방향 같은 사소한 것 따윈 신경 쓰지 않는데, 가끔은 수경이 뒤집혀 수경에 매달린 (고무 고리 형태의 귀마개가 수경의 양쪽 끈에 매달려 있다) 귀마개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기도 한다. 그럴 때 엄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맨티스 같다. 맨티스도 꼭 우리 엄마처럼 섬세하고 귀여운데.


가끔 엄마는 맨티스처럼 귀마개를 하늘을 향해 솟구치게 한 채 수영장 레인을 걷는다.




두 번째 사건은 수영장을 걷는 엄마에게 자유형 팔 돌리기를 알려줬을 때의 일이다. 아직 엄마는 물에 뜰 수는 없지만, 알아두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길 거니까 손바닥으로 물을 미는 법을 알려주었다.


"엄마, 손바닥으로 이렇게 물을 밀어. 그럼 물을 미는 힘으로 엄마 몸이 앞으로 나가는 거야."


엄마의 손등을 내 손으로 덮고 물을 밀어 팔을 돌리는 감각을 연습했다. 엄마는 신이 나서 양 팔을 이렇게, 이렇게, 하고 풍차처럼 돌리며 25미터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깜짝 놀라 물었다.


"엄마, 팔 돌리면서 양 어깨 같이 돌리는 건 어떻게 알았어?"


수영 초급자도 숨쉬기, 발차기, 팔 돌리기, 발차기와 팔 돌리기(스트로크)를 동시에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익히기 전까지는 상체를 롤링하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엄마는 '롤링'을 하며 왼쪽, 오른쪽 어깨를 차례로 앞으로 밀며 걷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너 보니까 이렇게 하던데?"


엄마가 쉬는 타이밍이면 나는 후딱 갔다 올게! 하고 50미터씩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엄마에게 돌아오곤 했다. 엄마는 주로 수영장 벽에 붙어 허리를 돌리거나 점프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양 어깨를 롤링하며 물을 상체로 미는 걸 엄마는 보고 있었다. 엄마 진짜 천재 아니야? 나는 엄마에게 감격해 엄마를 물속에서 안은 채 엄마의 몸을 물 안쪽에서 붕붕 띄웠다.




세 번째는 얼마 전 일이다. 퇴근 후 함께 수영장으로 가던 길. 요즘 덩치가 커진 내게 엄마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했다. 남산 만하다, 미륵바위 같다. 처음엔 엄마, 딸한테 미륵바위가 뭐야? 하고 깔깔 웃었지만 내가 미륵을 좋아하니 엄마의 이 농담도 즐겁게 들렸다. 나는 고려 미륵상의 유쾌한 얼굴을 좋아했다. 함께 수영장에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고려 미륵을 검색했다. 어쩐지 얼굴도 지금의 나와 조금 닮은 것 같았다.


"엄마, 얘 나 좀 닮지 않았어?"

"이거 논산에 있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알아? 가봤어?"

"어릴 때 책에서 봤는데. 관촉사 아니야?"


엄마는 오십 년 전쯤 학교에서 배운 불상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논산과 절 이름까지. 나는 또 엄마 천재 아니야? 하고 놀라 되물었다. 엄마가 이렇게 천재 같아 보이는 순간, 나는 엄마가 잃어버렸을 가능성을 생각하기도 하고, 자꾸만 엄마 자랑을 하고 싶은 내가 조금 머쓱해지기도 한다. 아이가 없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 자꾸만 내 식구를 자랑하고 싶고 내 식구의 모든 게 놀라운 그 마음을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상입상




엄마는 매 강습 시작 전 정시에 시작되는 체조 수업을 무척 좋아한다. 어깨 등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인데 늘 벙긋벙긋 웃으며 신기해하며 따라 한다. 목 스트레칭을 하느라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 물을 먹을 수 있어 종종 입을 막아주곤 한다. 엄마는 거의 50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워보는 사람이다. 운동을 좋아해 나는 많은 운동을 해왔고, 또 많은 운동을 배웠다. 볼링, 골프, 웨이트 트레이닝, 스키, 스노보드, 달리기, 서핑, 수영. 엄마에겐 수영이 처음이다.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엄마의 수영이 신기할 정도로 늘었다. 엄마는 다친 허리가 확실히 덜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엔 새우처럼 조금 구부러지곤 하던 등이 조금 더 부드럽고 평평하게 펴지면서 물 위에 눕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겁을 내며 발차기 연습을 하기 전까지 서너 바퀴를 걸어야 하는 엄마는 이제 없다. 딱 25미터만 걷고 나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킥판을 쥐고 물을 등지고 선다.


"발차기 해볼테야?"


그러면 엄마는 킥판을 꼭 안은 채로 등을 물에 띄우며 물 위로 눕는다. 조금씩 팔랑대는 엄마의 다리. 엄마의 몸은 점점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엄마의 배영 발차기는 이런 과정을 거쳐 발전했다. 


1) 내가 손으로 양 허리를 잡아 들어 올려줘야 뜸. 전진도 내가 손으로 당겨야 밀어주어야 미는 힘으로 가능, 실질적으로는 다리 힘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함.

2) 내가 손으로 양 어깨를 살짝 잡아주기만 해도 뜸. 엄마의 발차기 힘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힘이 빠지면 제 자리에 멈춰있음. 이때 속도를 내도록 몸을 쭉 끌어당겨 도와주면 발차기가 조금 빨라짐.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내가 손을 놓아도 킥판을 안은 채 혼자 발차기를 해 전진하는 데에 성공했다.


"어, 엄마 왜 이렇게 잘해?"


나는 너무 놀라서 칭찬을 멈추지 못한다. 나는 엄마처럼 말이 많은 엄마의 딸. 엄마가 갓 말을 배운 아이처럼 조잘조잘 대듯, 나 역시 25미터를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엄마 칭찬을 한다. 2/3 지점까지는 제법 엄마 힘으로 나아가다  마지막 목적지를 앞두고는 다리에 힘이 빠진 게 느껴진다. 그러면 내가 어깨를 잡고 조금 끌어준다. 한 줄로 나아가지 못하고 조금 틀어지는 경로 정도만 손을 대어 살짝 잡아주면 엄마는 거의 엄마 힘으로 배영 발차기를 해낸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발전이다.


"빨리 왔지?"


목적지에 도착한 엄마의 얼굴엔 자부심 같은 것이 스친다. 나는 또 칭찬 로봇이 되어 따발총처럼 칭찬을 내뱉는다. 빈말은 하나도 없다. "물개 될 날 얼마 안 남았어!" 하면 엄마는 또 부스스 웃는다.


이제 심지어 엄마는 킥판을 안지 않은 채로도 물 위에 떠서 배영 발차기를 할 수 있다. 아직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뜰 수는 없어 킥판을 안지 않았을 땐 내가 절반 정도는 어깨를 잡아 몸을 고정시켜줘야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엄마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자유형보다 배영을 배우는 게 쉬웠다. 물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몸은 엄마의 몸에서 왔다. 수영을 하며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하는 실수를 엄마도 하고, 내가 겁먹는 방향으로 엄마도 겁을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손가락을 붙여 손바닥으로 물을 미는 게 익숙지 않아 손가락을 벌리고 물을 밀곤 했는데, 처음 스트로크를 배울 때도 엄마는 손가락 사이로 물이 다 빠져나가도록 스트로크를 했다. 정확히 나와 같게!)


처음 자유형을 배울 때 내 문제는 물이 눈에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눈을 감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주사를 맞는 것도 무섭지 않았고, 귀신의 집도 참을 수 있었다. 물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됐다. 처음 킥판을 떼고 자유형을 시도하던 날은 긴장한 다리에 힘을 잔뜩 주는 바람에 다리에 쥐가 나 절뚝거리며 물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엄마가 어떤 걸 어려워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서 출발한 사람이니까.




엄마도 자유형 발차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앞으로 발차기'라고 엄마가 말하는 과정. 킥판 위에 팔을 얹고 자연스럽게 몸을 띄우지 못하고, 자꾸만 킥판에 힘을 주며 고꾸라지려 했다.


"엄마 오늘 앞으로 한번 해볼 거야?"

"아이 안 할래. 오늘은 걷기만 할래."


겁을 내고 피하려 하던 엄마는 이제 없다. 배영 발차기를 통해 엄마가 나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된 후로 엄마는 자신감이 바짝 붙었다. 이제 앞으로 하는 것도 해보겠다며 용기를 낸 엄마. 나는 킥판 아래를 한 팔로 받치고, 다른 한 팔로는 엄마의 상체 중심을, 코어를 받쳐주었다. 완전히 물에 뜨진 못하지만, 걷는 것과 뜨는 것 그 사이 어디쯤, 45도 정도의 각도로 물에 뜬 엄마가 발차기를 한다.


언젠가부터 25미터를 한 번에 자유형 발차기를 해서 레인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엄마의 실력이 발전했다. 나는 역시 칭찬을 멈추지 않는다. 칭찬은 엄마를 물에 띄운다.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던 60대의 몸이다. 엄마는 오래 '노동일'을 했고, 엄마의 몸은 그 노동에 맞추어 진화했다. 쓰레기봉투를 쥐고 나르던 오른팔의 힘은 괜찮지만, 왼팔의 근력은 형편없다.  엄마는 25미터를 한 번에 오면 심장이 두근댄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힘든 거라고, 처음엔 25미터 자유형도 진짜 힘든데 끊지 않고 한 번에 온 것도 너무 대단하다고 엄마를 칭찬한다.




"발차기 뒤로 할래? 앞으로 할래?"


중심을 잘 못 잡아주면 몇 번이나 다시 가라앉을 뻔하면서도 엄마는 이제 앞으로 가는 자유형 발차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뒤로는 이제 조금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더 할래."


엄마가 도전을 할 줄 아는 육십대라는 게 나는 너무 멋있게 느껴진다. 엄마는 한번 더 힘을 내어 킥판 위에, 혹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몸을 띄운다. 아이구 잘하네. 아휴 잘하네. 나는 엄마의 자유형 발차기를 돕는다. 엄마는 눈에 띄게 나아진다.




"전에도 오신 거 봤는데 많이 느셨어. 아주 많이 느셨어."


초급 레인 끄트머리에서 허리 돌리기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엄마 또래의 여성분께서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는 예에, 하고 조금 머쓱해하며 웃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붙잡아줘도 뜨지도 못했던 엄마다. 이제 조금만 물에 뜨는 게 익숙해지면 배영 팔 돌리기까지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장족의 발전을 발견한 사람들은 엄마에게 칭찬을 하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옆 레인인 중급 자유수영 레인에서 수영하던 분도 엄마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려주셨다.


"금방 늘지. 딸이 이렇게 지극 정성인데."

"말씀 감사해요."


칭찬을 받을 땐 조금 머쓱하다. 나는 에헤헤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쁜 마음이 든다. 사랑스러운 사랑하는 엄마를 사랑할 뿐인데 나까지 엉겁결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딸도 최고! 엄마도 최고!" 엄마를 칭찬해주시던 같은 레인 여성분이 수영장을 떠나며 엄지를 쌍으로 들어 올려 응원을 전해주신다.


엄마는 조금 얼떨떨해한다. 나는 엄마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었을 때의 특유의 표정을 안다. 귀마개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소리가 잘 안 들렸을 것이다.


"엄마 최고래! 엄마 되게 잘한대!"


엄마의 귀에 바싹 달라붙어 엄마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을 번역한다. 나는 엄마가 알아챌 때까지, 엄마의 멋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엄마의 말로 번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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