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열매, 여름의 사랑 (7)
그러니 물속에서는
밖에서의 규칙들을 잊어버려도 좋아요
주민현 <오리들의 합창>
“요즘은 수영하는 게 제일 즐거와.”
엄마가 이모와 통화를 하며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노래를 하는 것처럼 지저귀며 말한다. 엄마가 내는 목소리에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엄마는 그 목소리로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말을 건넨다. 수영장에 가는 길, 신호등 앞에서 엄마는 멈춰 선 강아지에게 말을 걸었다. 나 혼자라면 절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이 깨어지는 순간. 엄마는 쉬지 않고 재잘댄다.
“우리 강아지는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왔어요.”
“어머 진짜요?”
양 귀와 꼬리를 형광 분홍색으로 물들인 흰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엄마는 왕왕 소리를 내며 꼭 개와 의사소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종종댄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께선 스케이트보드를 탈 줄 아는 강아지로 방송에 나왔다고 말해주신다. "몰라, 방송국 사람들이 지나가다 우리 개를 봤나봐." 저 할머니는 자기 강아지를 또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신호등을 지나 우리는 수영장으로, 강아지는 마포 쪽으로 갈라서며 나는 눈인사를 했다. 엄마와 함께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풍경이 오늘도 지나가고 있다.
수영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잠시, 엄마는 그 앞에 서서 가볍게 엉덩이춤을 춘다. 엄마 그렇게 신나? 물어보니 엄마는 노래가 좋잖아. 하고 대답한다. 수영장 라운지에서 틀어놓은 음악은 조정석의 목소리로 부르는 아로하. 나는 엄마와 하와이에 가서 해가 지는 야자수를 배경으로 수영을 하고 싶다.
적도에 가까운 발리에선 석양이 지고 눈 깜빡할 사이에 해가 바다에 잠기듯 져버리곤 했다. 순식간에 밤이 찾아오는 발리의 해변의 경이로움을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와이도 적도에 가까우니 비슷한 석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노래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 마오리어로 ‘아로하’는 사랑.
엄마의 수영은 죽순처럼 늘었다. 어느 날이면 쑥 자라 있었고, 또 며칠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엄마 수영 평생 할 거면 천천히 늘면 돼. 십년쯤 하면 언젠간 되겠지 뭐.”
이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엄마가 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났다. 조바심은 내가 가진 수많은 어려움 중 하나였다. 나는 잘하지 않는 나 자신을 잘 납득하지 못한다. 운동은 오래 전부터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어른이 된 후 나는 그 '운동'마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만들었다. 모든 운동을 잘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운동만큼은 못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유연하지 않은 대신 힘이 센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빨리 달릴 수 없는 사람인 대신에 오래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영도 내겐 달리기와 같아서, 수영을 멋진 폼으로 빠르게 할 수는 없지만 스트로크를 오래 이어나갈 순 있다. 나는 느리게나마 얼추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어 할 순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늘지 않는 수영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엄마에게 다음 진도를 시도했다. 엄마는 하기 싫을 땐 딴 짓을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수영은 잠시 멈춰 있었다.
엄마처럼 잘 뜨지 못하는 사람들은 등에 ‘거북이’등(헬퍼)을 차고 수영을 배우기도 한다. 엄마에게 배영 팔 돌리기를 가르치기 위해 거북이를 채워주면서 실수를 했다. 상체가 끈 때문에 조일까봐 단단히 고정하지 않은 채 헬퍼를 채웠던 것. 부력이 강한 헬퍼는 제 멋대로 균형을 잡으려 수면 위에 떴고, 엄마는 등과 헬퍼가 밀착되지 않은 느낌을 받고 만다. 헬퍼와 등이 따로 돌아가는 경험은 엄마의 물공포증을 도지게 했다. 엄마는 한번 싫은 건 굳이 좋아해보려 다시 노력하지 않는 사람. 엄마는 내가 거북이를 채워보려 할 때마다 딴 짓을 하거나, 못 들은 척을 하거나, 다음 주에 채우겠다고 우선 미루거나 하는 식으로 거북이를 피했다.
“엄마 거북이 싫어?”
“응. 하기 싫어.”
엄마는 아아아 하고 진저리 치는 소리를 내며 거북이를 달고서는 수영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거북이’를 등에 단 그 모습 자체가 엄마가 추구하는 엄마의 멋을 망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 말대로 거북이는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엄마의 양 허리를 들어 물에 띄워주는 방식으로 배영 팔 돌리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엄마는 싫으면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엄마는 물에 얼굴을 담그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물에 엎드려 뜨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자유형 팔 돌리기를 처음부터 엄마에게 설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유형과 배영은 모든 것의 방향이 반대다. 팔을 앞으로 돌리면 앞으로 가는데, 배영은 반대방향으로 돌려야 가고 싶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엄마를 혼란에 빠트렸다. 시계는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마땅한 것인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야만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시계가 있다니? (적으면서 나도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1) 팔을 머리 위로 뻗는다. 귀옆으로 팔이 붙을 정도로 바짝 붙이면 더욱 좋다.
2) 손바닥을 평평하게 하고 국자로 국물을 퍼내듯 물을 손바닥으로 위에서 아래로 민다.
3) 물을 미는 힘에 의해 몸은 후진한다.
누워서 후진하듯 전진하는 영법이기에 배영은 뒤로 가면 곧 앞으로 가는 것. 엄마는 몇 번이나 난관에 부딪쳤다. 엄마의 난관은 다음과 같다.
1) 물에 빠질까봐 빨리 팔을 휘두르고 싶어 천천히 물을 밀지 못한다.
2) 몇 번 물을 몸 뒤쪽으로 밀어내다 다시 몸 앞쪽으로 자유형하듯 물을 밀어버린다. 팔의 방향이 바뀌며 후진하는 것이다.
3) 찌개 위의 ‘거큼’(엄마의 발음이다)을 퍼내듯 물을 손바닥으로 찹찹 퍼내기만 한다...
“팔을 이렇게 하면 아퍼.”
엄마의 말에 나는 비로소 엄마의 몸이 지닌 한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는 평생 오른손으로 일했다. 오른손으로 빗자루질을 하고, 오른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오른손으로 김치를 담고, 또 오른손으로. 그런 엄마의 왼팔에는 근육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몸의 양쪽을 같은 힘을 들여 쓰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엄마 아픈 데가 어깨야? 아니면 팔이야?”
“여기, 팔 뒤쪽.”
엄마가 가리키는 곳은 상완 이두근이었다. 엄마의 말랑한 팔 안쪽은 힘을 주어 물을 밀고 잡는 데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엄마는 팔을 머리 옆으로 바싹 붙이는 동작부터 힘들어했다. 왼쪽 팔을 귀 바로 옆으로 붙여 뒤통수와 맞닿게 팔꿈치를 굽히는 스트레칭 동작도 엄마는 유독 어려워했다. 오른쪽 손바닥으로 팔꿈치를 잡으면 된다고 몇 번이나 알려주었지만 자꾸만 고개가 더 숙여졌다. (엄마는 키가 작아 고개가 자꾸 숙여지면 입을 손으로 가려주어야 물을 먹지 않는다. 너무 신이 나서 항상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게 통증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챈 것이다.
엄마랑 수영장 벽에 붙어서 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릴 때가 있었다. 일행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던 분이 팔을 귀로 날렵하게 붙이고 수영을 해야 한다며 영법을 설명했다. 팔을 양쪽으로 휘두르며 스트로크를 하면 아무래도 효율이 나지 않는다.
“팔을 제대로 안 붙이면 아줌마 수영하는 거야.”
나는 그제야 할머니들의 영법이 다 어느 정도는 비슷한 이유를 알아챈다. 허벅지 근육이 약하고 팔을 귀 뒤로 찰싹 붙이기 어려운 할머니들은 대체로 물 위를 팔랑대며 수영을 한다. 팔을 수직으로 붙이지 못하고 수평에 가깝게 스트로크를 하는 통에 대개 수영장 레인을 많이 차지한다. 팔을 휘두르고 다리로 수면을 찰싹대며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는, 대개는 배가 나오고 다리가 약한 몸.
안희연의 겸허한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시인은 이런 말을 썼다.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 엄마는 아마 앞으로도 이런 수영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
“어깨가 아프면 병원 가야하는겨. 그래도 팔은 괜찮아. 팔은 운동 열심히 하면 근육이 생겨. 근육 생기는거여. 나아질 거여.”
“그렇겠지?”
수영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했다. 잘못된 자세라는 걸 얼추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수영을 하기 전 웨이트트레이닝도 오래 해서 나름 어깨 힘엔 자신이 있었다. 접영을 더 잘하려면 상체 힘이 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해 헬스장에서 랫 풀 다운을 열심히 당겼다. 제대로 된 웨이트트레이닝은 근육을 미세하게 찢는다. 나는 근육이 상처 입은 팔로 물을 세게 당길 때의 싸한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잘못된 자세로 어깨를 과도하게 쓰며 물을 잡아당겼다. 다소 냉소적이었던 수영 선생님은 회원님들 운동하는 정도로는 어깨를 다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어쨌든 어깨 통증은 내게 벌어진 일이었다. 정형외과에서 눈물 나게 아픈 충격파 기기로 어깨의 석회질을 깼다. 당분간 수영하지 마세요, 진단을 받았어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엄마에겐 같은 일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엄마는 앞으로도 도라에몽 속 진구의 프로펠러처럼 팔을 돌리며 수영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다시 아아 소리를 내며 수영장 벽에 매달려 허리를 양쪽으로 돌린다.
엄마의 수경에 매달린 귀마개가 달랑거린다.
수영장이 익숙해지면서 엄마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쯤은 겁먹은 채로 입수하던 엄마의 눈이 다시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수영장이 익숙해지면서 생긴 엄마의 변화 중 하나는 꾀가 생겼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발차기가 익숙하지 않으면 우선 킥판 위에 상완을 늘어뜨리고 수영장을 걷는 연습부터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신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요?”
나는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서서 양팔로 벽을 꽉 잡은 엄마를 수영장 벽에서 떼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바위틈에 찰싹 붙은 전복처럼 가끔 수영장 벽에서 떨어져 나오질 않았다.
“엄마가 벽에서 안 떨어져요.”
나는 한참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못들은 척 계속 허리를 돌렸다. 엄마는 발차기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았다. 실은 나는 그런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 나처럼 싫어도 해보는 사람이 아닌 엄마가, 나와 떨어져 산 11년 동안 이런 사람이 된 엄마가 귀엽고 신기했다.
엄마가 방어적이게 된 데에는 내 실수 탓도 있었다. 엄마를 어떻게든 물에 띄워보려고 나는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엄마를 업은 채 수영장을 걸으며 띄우기를 시도하기도 했고, 킥판 아래만 손으로 받쳐보기도 했다. 윷놀이를 하듯 엄마를 내 등에 얹은 채 함께 헤엄쳐보려다 그만. 풍덩.
엄마가 내게서 미끄러지며 엄마와 나는 동시에 물에 빠졌다. 나는 금세 일어났지만 엄마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건져준 후에야 겨우 물에서 나온 엄마는 물을 엄청 먹은 채로 깔깔대며 웃었다.
“와. 와야.”
나도 엄마를 따라 깔깔대며 웃었다. 엄마는 가끔 놀랄 때 잔뜩 웃곤 한다. 와! 아야! 리듬을 타듯 이어지는 엄마의 환호성. 이 사건 이후 새로운 영법을 시도할 때마다 엄마는 또 빠트리려는 거 아니지? 하고 나를 경계했다.
엄마에게 수영장은 너무 낯설고 새로운 세계였다. 엄마는 다이빙 연습하는 상급반 사람들을 유심히 봤고, 팔 돌리기 자세 교정을 하는 상급반의 내 친구들의 강습을 유심히 봤다.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했고, 오늘은 그 사람들 안 왔네? 하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목장갑을 끼고 스트로크 연습을 하는 사람을 보고 엄마는 왜 팔에 저런 걸 낀 건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건 왜 끼신 거예요?
나와 안면이 있는 분이라 내가 대신 여쭤봤다. 물을 당기는 힘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손에 무게를 얹은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엄마는 궁금한 게 많다. 모래주머니 같은 거래. 설명하니 엄마는 그제야 아 그렇구나, 하고 또 열심히 허리를 돌렸다.
극장에서 <노마드랜드>를 봤다. 아마존 등에서 임시직 일자리를 오가며 저임금 노동으로 ‘먹고 사는’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알몸으로 계곡에 누워 물에 뜨며 온 몸으로 물을 느꼈다. 그는 그 순간 이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워보였다. 엄마가 하는 수영은 꼭 그런 수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