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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Jun 02. 2021

엄마는 엄마의 삶이라는 작품의 예술가

봄의 열매, 여름의 사랑 (9)

또 물보라를 일으켜
오마이걸 <돌핀>






엄마의 수영은 실을 풀듯 꾸준하게 이어졌다. 상전벽해에 가까운 발전도 없었고, 한번 익힌 지점에서 물러서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수영과 함께 평화롭게 한 시절을 나고 있었다. 수영 가는 길은 내겐 늘 같았는데, 엄마에게는 늘 달랐다. 엄마는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해바라기가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걸 발견하고, 여기에 해바라기가 다 있다고 신기해했다.


"엄마 해바라기 꽃은 언제쯤 피어?"

"글쎄. 곧 피겠지?"

"아직 이렇게 작은데. 몇 년 걸리나?"


나는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라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한다. 자주 부딪치고 어디서 다쳤는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해바라기가 몇년살이 풀인지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한참 웃으며 금방 꽃이 핀다고 말했다. 해바라기는 팔구월이면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더디 늙는 거야."


엄마는 예순둘인데도 아직도 너무 귀엽다. 원시인도, 현대인도 보통 3대가 한 싸이클로 삶을 경험하다 삶을 마감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인류의 기원>에서 읽은 적이 있다. 우리의 수명이 길어진 게 아니라, 삶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론이었다. 엄마의 계절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 나는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와 여름을 살고 싶다.




트위터에서 보고 저장한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시립 수영장과(동행인 친구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바르셀로나에서 계획 없이 돌아다니다 몬주익 언덕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데, 그러다 발견한 언덕 옆 공원에서 에스파냐인들이 강아지들과 물장구를 치며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풍경과 함께 와인을 먹던 추억이 있어 몬주익이라는 지명만 봐도 무척 애틋해졌다.) 베를린의 공공 수영장 사진을 보며 코로나가 끝나면 꼭 이런 데서 수영을 해보자고 느슨한 약속을 해보기도 했다.


엄마의 수영은 목표 없이 진행됐다. 수영장이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몇 번 수영을 건너뛰었다. 배가 터지도록 곱창구이에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은 날, 배가 빵빵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영 가방을 단단히 다 챙겨 왔지만 도저히 물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 날. 오늘은 물에 들어가면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에 수영장 앞 벤치에 앉아만 있던 엄마와 나.


"오늘은 수영 못 해."


결정은 늘 엄마가 내렸다. 위화도 회군처럼 늠름하게 집을 향하는 엄마의 결단력이 빛난 순간이었다.




몬주익 언덕의 시립수영장 (사진 출처 : 트위터 @PlanBarcelona )




올봄에는 유독 비가 잦았다. 엄마는 자주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사람이라 비가 오면 움직이는 걸 무서워했다. (그러면서도 비를 이유로 출근을 미룬 적은 한 번도 없다.) 할머니도, 아빠도, 나도 엄마에게 젖은 길을 조심해서 밟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엄마를 살살 꼬드겼다.


"엄마. 오늘 그냥 가지 말래?"

"아휴. 그래 말자. 비가 너무 드세다."


그렇게 토요일 오후, 수영 가방을 모두 챙겨둔 엄마와 나는 수영장에 가는 대신 블루투스 스피커에 핸드폰을 연결해 엄마가 좋아하는 배호의 노래를 들었다. 배호의 노래엔 유독 비와 궂은 날씨가 연상되는 노래가 많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며 비 내리는 명동.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들의 지명을 하나하나 얘기하며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엄마가 좋아하는 배호와 최백호의 차례가 지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쇼팽과 리스트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들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야상곡을 들으며 엄마도 이 곡은 참 좋다고 말해주었다. (백건우의 녹턴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MGf07UBHQ )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번갈아 듣는 게 우리의 규칙이었다. 엄마는 빨래와 연예인의 결혼과 가족관계, 나무와 꽃의 이름에 관심이 많다. 아빠와 나는 장난으로 엄마한테 늘 빨래박사, 연예인 족보 박사, 나무박사라고 놀리곤 했다. 엄마는 배호의 이른 죽음과 백건우의 아내의 투병에 대해 염려하며 이야기했다. 엄마는 참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비 오는 토요일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락을 지나 재즈를 지나 클래식에 입문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정확히 이 흐름대로 음악 취향을 바꿔왔다. 린킨파크를 듣는 중학생이던 나는 노라 존스를 듣던 시기를 지나 슈만을 듣고 있다. 언젠가부터 사소한 소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진 나는, (내가 앓고 있는 신경증과 연관 있을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이 없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내가 듣는 음악까지도 너무 번다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미 죽은 지난 세기의 사람들이 작곡한 음악들을 듣고 있었다. 바흐의 겸허함을, 모차르트의 풍성함을, 베토벤의 단단함을.


매해 봄이면 통영에서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엄마와 함께 가기 위해 바이올린 리사이틀 티켓을 두 장 샀다. (여행에는 동행했지만 아빠는 도저히 클래식 공연장에 앉아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거제에 숙소를 잡았다. 인피니티 풀이 있는 리조트였다. 오전엔 인피니티풀에서 수영을, 오후엔 통영에서 음악회를 보는 게 내 계획이었다.


큰 욕심을 부린 게 아니었는데도 자꾸만 사소하게 일이 꼬였다. 회를 먹지 않는 아빠는 밥을 먹는 둥 마는둥했다. 리조트 아침 식사는 맛이 없었고, 예약해둔 인피니티풀 라운지에는 직원이 자리에 없어 체크인을 하는 데에도 20분이 걸렸다. 수영복 가방을 들고 로비에 선 엄마, 아빠를 보며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최악이었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친 날이었다. 허희정의 <실패한 여름휴가>라는 소설을 떠올리며 수영을 했다. 이 여행 정말 망한 걸까? 고민하면서.




그날의 미세먼지는 미세미세 기준 '최악'이었다



인피니티풀을 예약한 사람들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아빠는 돈을 냈으니 돈값을 받아내겠다는 태도가 없는 사람. 남 눈치를 잘 보는 아빠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서비스를 이용한다. 나는 아빠의 그 남을 부리는데 자연스럽지 못한 태도를 좋아한다.


"저 사람도 우리 때문에 못 들어가네. 적당히 하다 일찍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아빠는 풀장에서 저수지 수영을 했다. 집에 이런 수영장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빠와 나는 경쟁적으로 물 이쪽에서 저쪽을 오갔다. 바람까지 너무 불어 잠시라도 물 밖으로 나가면 한기가 몰려와 물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배영 자세를 취한 채 물에 혼자 둥둥 뜰 수 있는, 엄마의 엄청난, 상전벽해 급으로 발전한 수영실력을 아빠에게 선보이려던 내 계획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는 물을 어색해하진 않았지만, 킥판이 없는 채로는 물에 떠보려 시도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적지만 엄마는 싫으면 안 하는 사람이다...) 벽을 잡고 몸을 띄워보는 정도만 살살해볼 뿐이었다.


"어, 물 이제 안 무서워?"


아빠는 그 정도 발전을 보고도 신기해하고 귀여워했다. 엄마는 이내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아이스크림 무늬 수영복을 입고 자쿠지에 몸을 담근 엄마. 나는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수경에 달린 귀마개를 달랑대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미세먼지를 뚫고 체조를 했다. 뜨거운 물이 아래에서 솟아 나오는 자쿠지에 앉아 안전봉을 잡고 몸을 좌우로 돌리며 몸을 움직이는 엄마. 적어도 더는 겁먹은 표정은 짓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TIMF 출입 스티커를 붙였다




거제에서 통영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아빠는 일부러 천천히 운전을 했다. 벚꽃이 잔뜩 흩날리는 길. 우리는 동피랑 언덕을 향해 차를 몰았다. 마을버스나 지날 법한 좁은 길을 천천히 스쳤다. 아빠는 통영고와 통영여고를 지나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통영 출신 배구선수 얘기를 했다. (아빠는 한국 프로 스포츠의 위키백과 같은 사람이어서 학교 이름을 입력하면 유명한 선수 이름이 출력되곤 한다.) 마침내 아름다운 국제음악당에 닿았다. 윤이상이 바라봤을 바다.


"촌뜨기가 출세했네."


음표를 형상화한 조각 앞에서 엄마와 아빠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엄마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에이, 엄마가 왜 촌뜨기야. 하고 대꾸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이 이 땅의 남쪽 끄트머리에 와있다는 사실 자체에 무척 감격했다. 머스터드색 코트를 입은 엄마를 통영 국제 음악제 벽면에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자꾸만 피하려고 했다. 엄마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엄마 좀 찍자."

"싫어. 쑥스려."

"엄마는 예술가잖아."

"내가 무슨 예술가야."


삶과 예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예술의 예술가. 엄마는 엄마라는 예술을 계속 무르익게 할 것이다. 엄마의 삶이 곧 엄마의 예술이라는 것을 엄마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김봄소리의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듣기로 했다. 엄마는 김봄소리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너무 멋지다고 몇 번이나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는 엄마가 좋아하는 화사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엄마, 이 사람 이름은 김봄소리. 엄마 이름은 오봄열매."


우리 엄마, 오춘실 여사는 아마 김봄소리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연주자 김봄소리는 베토벤, 슈만, 윤이상,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기로 되어있었다. 피아노 협연자로 일리야 라시콥스키가 함께 나왔다. 봄꽃 같은 드레스를 입고 선 연주자는 열정적인 자세로 곡을 연주했다. 현은 선명한 음을 내며 공연장을 지배했다. 나는 엄마에게 졸아도 된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엄마에겐 낯선 음악일 수 있어서 지레 염려를 한 것이다. 엄마는 연주 내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열정적인 연주를 감상했다. 피아노의 흐름에 맞추어, 엄마는 처음 들어보는 곡의 여리고 센 흐름을 파도처럼 타며 음악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후 엄마의 그 진지한 옆얼굴을 종종 보게 되는데, 성가를 들을 때의 엄마의 얼굴이 정확히 그와 같다.) 엄마는 진짜 좋다고, 다음에 피아노 들으러 갈 땐 같이 가주겠노라고 내게 약속을 했다.


다시 거제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배호 힛트곡 전집'을 카오디오로 들으며 한 시간 가량 밤길을 달렸다. 나는 컴퓨터 학원 두 달 외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돈이 있었다면 내게 플루트를 가르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언젠가 엄마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이 연주되는 공연장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플루트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나가는 순간, 새벽처럼 밝아오는 그 소리의 깨끗함이 내 오염된 마음을, 내 신경증을 어떻게 다스려주었는지.


엄마는 평생 교회를 다녔다. 많은 클래식 음악가가 종교 음악을 작곡했다. 바흐의 음악은 또 얼마나 종교와 가까운지. 엄마와 마태수난곡을 유튜브로 찾아들었다. 엄마는 마태복음을 알고 나는 바흐를 안다. 우리의 예술은 실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거제 여행 이후 엄마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엄마의 새로운 취미는 컬러링북 색칠이다. 엄마는 자신의 작업을 '색칠 공부'라고 명명했다. 청소며 빨래를 하고 시간이 남으면 엄마는 유튜브로 설교말씀을 틀어놓은 채 색칠공부를 시작했다. 엄마의 첫 작품은 진달래 꽃무리였다. 엄마는 힘 있는 터치로 꾹꾹 눌러 꽃잎을 칠했다. 엄마는 역시 천재가 분명하다. 그림을 오십 년 만에 그려보는데도 엄마는 자연스럽게 꽃잎에 그러데이션을 넣었다. 엄마의 완성된 그림에선 동양화의 아취가 느껴졌다.


"이거 봐. 엄마 예술가 맞잖아."


엄마는 내 말에 벙긋 웃었다. 엄마는 화전을, 첫 아이 입학식을, 공기놀이를, 민들레를, 유선 전화기를, 장미를, 딸기 쟁반을 완성했다. 이건희 사후 기부될 그림 목록을 뉴스에서 보며 엄마는 이중섭의 그림을 봤다.


"나도 더 그리면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


색연필을 꾹꾹 눌러 힘을 주어 그리는 엄마의 그림은 이중섭의 힘 있는 터치와 결이 같다. 백은선 시인은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에서 자신이 1세계 서양 남성의 작품을 너무 많이 읽어 '오염'되었다고 말했는데 이 표현에 무척 공감했다. 나는 주워들은 게 너무 많아 너무 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엄마가 처음 들어보는 브람스, 엄마가 처음 본 이중섭을 나는 볼 수 없다. 엄마는 토끼처럼 세상을 본다. 엄마의 갈색 눈동자에 비칠 세상의 오묘함이 궁금하다. 영화 <벌새>의 대사처럼 엄마에게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겠지. 나는 엄마의 첫 작품을 휴대전화 홈 화면으로 설정했다.



엄마의 첫 작품, 대담한 터치가 인상적이다




4월 29일은 세계 춤의 날이었다. 아침에 인터넷을 하다 세계 춤의 날 20분 이상 춤을 추면 특별 배지로 '댄스'배지를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수영장에서 춤을 추며 배지를 획득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계획 중독자다.)


20분 동안 춤을 춰야 한다는 내 말에 엄마는 영문을 모른 채 나와 같이 춤을 췄다. 강습이 끝난 내 수영 친구들도 레인을 건너와 나와 같이 디스코를 췄다.


"오늘 세계 춤의 날이라 춤추면 애플워치 배지 준대요."

"난 애플워치가 아닌데."


갤럭시 워치를 차는 언니도 영문을 모르고 계속 춤을 췄다. 우리 엄마 오춘실 여사도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나는 어깨춤에 재능이 있고 엄마는 엉덩이 춤에 재능이 있다. 수영장 라운지 배경음악에 맞춰 엄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볍게 추곤 하는 엉덩이춤. 오마이걸은 <돌핀>을 부른다. 엄마는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채로 그 맑은 음악의 청량함을 그대로 듣고 춤으로 옮긴다.


또 물보라를 일으켜.

엄마의 물장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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