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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시골집

(연작소설)영이의 일기 7

by 민들레

어젯밤 봄비가 조금 내렸다. 비죽이 얼굴을 내밀었던 감나무의 새순들이 우유 먹은 아가들처럼 새살새살 웃는 것 같다. 촉촉하게 젖은 작은 마당에 아침 햇살이 갸웃이 비쳐 든다.

영숙 이모가 아까부터 마루 끝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다른 날 같으면 아직 일어날 시간도 아닌데. 느긋하게 늦잠을 즐길 기분이 아닌 모양이다. 껌도 씹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이모의 모습이 조금은 생경하고, 가냘프다.


이틀 전 일요일 아침, 영숙 이모의 째지는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아휴, 신경질 나. 그렇잖아도 구질구질해 죽겠는데 이 그지 같은 것들은 뭣 때문에 끌고 와서 정신 사납게 하는지 정말 미치겠다니까!

영숙 이모가 무언가를 내동이 치는 것 같았다. 이어 마당 수돗가에서 그릇 구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내다봤다.

-오늘은 아침보톰(아침부터) 웬 야단이래여? 냄편 깨것네잉.

영숙 이모는 플라스틱 대야의 물에 후적후적 얼굴을 씻고는 엄마를 돌아보지도 않고 씹어 뱉었다.

-그 씨팔 새끼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그 사이 방에서 나온 할머니는 영숙 이모가 내동댕이친 양은냄비며 플라스틱 김치통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이 멀쩡한 걸 우에 베리노. 깨깟이 씻기만 하모 새기나 마찬가질 긴데. 이것도 살라코믄 다 돈 아이가.

-제발 궁상 좀 떨지 말라니까요! 있는 것도 할머니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텐데 남이 버린 것까지 뭐 하러 자꾸 주워 와요. 집구석을 쓰레기장 만들 일 있어요?

영숙이모 짜증에 할머니는 이모눈치를 보며 오물오물 들리지도 않게 몇 마디 하더니, 누군가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헌 그릇들을 새로 산 물건처럼 포개어 마루에 다시 올려놓았다.

엄마가 영숙이모 눈치를 흘끔 봤다.

-색시가 화가 단단히 났는갑네잉.

-지겨워서 정말 못살겠어요. 씨팔 새끼! 내가 지 봉인 줄 안다니까. 이번에는 정말 무슨 결판을 내든지 해야지 더는 못 참겠어요.

영숙 이모는 껌을 짝짝 씹는 게 아니라 질겅질겅 씹으면서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씩씩거렸다. 이빨에 꾹꾹 힘을 주는 것이 껌 속에 어떤 벌레라도 들어 있어 몽땅 깨물어 죽이겠다는 얼굴이었다.

자고 깨면 껌을 씹는 영숙 이모에게 엄마가 핀잔을 주었었다. ‘아부지가 끔 공장 사장이라도 못 당허겄네잉. 무신 끔을 그릏게 날마다 깨물어 싼대요? 냄편허고 잠잘 때는 안 깨무는가 몰라. 그러자 영숙 이모는 뱅글뱅글 웃으며 말했다. ‘왜 안 깨물어요, 준호 씨하고 잠잘 때는 더 꽉꽉 깨물죠.’ 했다. 그러나 그날은 영숙 이모 기분이 최악인 것 같았다. 화풀이를 하듯 양팔을 걷어 부치고서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털고 쓸고 야단이었다.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던 영숙 이모가 코를 팽 풀었다.

-내가 미쳤었죠. 그런 골 빈 자식을 믿는 게 아닌데. 술이나 따르던 년 팔자가 어디 가겠어요.

엄마가 영숙 이모를 위로하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씰디 없는 소리 허네. 신랑이 안직 철이 없어서 그럴 것이여. 참은 짐에 쪼까만 더 참고 지둘려 봐아. 사람은 나이가 갈치는 것잉께. 이적지(여태껏) 고상허고 살었는디 넘덜같이 살아 봐야제잉.

그러나 영숙 이모는 자꾸만 울먹였다.

- 언제요.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데요. 아줌마 말마따나 나이가 든다고 양은그릇이 스텐그릇 되겠어요. 난 그래도 저밖에 모르고, 이제라도 사는 것 같이 살아보려고,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적금도 붓고 계도 들고, 그런데 그 자식은 틈만 나면 내 돈이나 울궈다 다른 년 밑구멍에 쑤셔 넣을 궁리만 한다니까요.

영숙 이모가 티셔츠 앞자락에 코를 찡 한 번 더 풀어서 닦았다.

-딸년 하나 버린 셈 칠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 그래도 나 시집도 가서 잘살고 있다고 신랑 앞세우고 고향에도 가고 싶었는데······.

준호 아저씨가 집에 안 온 지 며칠 째인 모양이다. 영숙 이모는 주말에 준호 아저씨가 집에 있는 날이면 생글생글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영숙 이모를 흉내 내어, 우리 준호 씨 우리 준호 씨, 끔찍이도 귀헌 신랑, 이름은 닳아지까 아까와서 어찌 부를까 하고 놀리면 영숙 이모는 또 뱅그르르 웃었다.


준호 아저씨는 멋쟁이다. 빨갛고 노란 티셔츠로 매일 갈아입고 반질반질 윤기 나는 구두가 다섯 켤레도 넘는다. 엄마는 준호 아저씨에게도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말을 톡톡 쏘았다.

얼마 전 준호 아저씨가 선글라스를 끼고 향수 냄새를 풍기며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엄마가 말을 걸었다.

-사업한다등만, 일은 잘 돼야 가요?

-자금이 든든해야지, 일이 그렇게 쉽습니까.

-선무당이 장구만 탓 한다드니 능력 없단 소린 안 허고 맨날 밑천 타령만.

엄마가 혼자 중얼중얼하다가,

-어치케 첨보톰 맘에 딱 맞게 헐 수가 있다요. 첨에는 조까 모지랜다 싶게 시작하는 것이제. 그런다고 가지가고 저런다고 가지가고 색시한테 가지 간 돈만 해도 많은 거 같은디, 그 돈은 언제 벌어서 갚을 것이다요?

-아따, 아주머니도 차암, 개구리가 주저앉는 뜻은 멀리 뛰자는 생각에서고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은 매미 되자는 생각이 있어서란 옛말도 모르십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이 김준호가 누굽니까. 어느 날 갑자기 매미 돼서 날아오를 때가 있을 테니까.

준호 아저씨가 구두코의 먼지를 입으로 한번 후 하고 분 다음 휘파람을 불면서 나가자 엄마가 그 뒤통수를 쏘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구, 넘 밥 보고 시래깃국 끓인다 등만, 지 힘으로 살어 볼 생각을 안 허고. 저런 인사를 냄편이라고 하눌 같이 떠받드는 시약시가 불쌍허당께. 밤 버럭지(벌레) 맹키로 투실투실 살만 쪄갖고, 언지나 속이 찰까잉.


멀건이 앉아있던 이모가 입을 뗀다.

“우리 시골집은 지금쯤 감나무에 예쁜 새순이 돋아났을 거야.”

영숙 이모는 또 시골집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열몇 살 때, 농사일은 하기 싫고 공부는 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고향을 잊고 살았다고 말하던 이모는, 요즘 부쩍 고향생각이 나나 보다.

나도 시골집이 생각난다. 우리 시골집에도 감나무가 있었다. 내가 두 팔로 안고도 남을 만큼 몸통이 큰 감나무였다. 봄이면 감나무는 초롱처럼 작고 예쁜 감꽃을 나무 가득 피웠다. 밤새 하얗게 떨어진 감꽃을 바가지가 차도록 주워 담아 친구들과 함께 긴 꽃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치렁치렁 걸고 다녔다.

감나무 곁으로는 외양간이 있었다. 암소 한 마리와 송아지도 있었는데 그놈들이 그립다. 나는 송아지와 자주 놀았다. 송아지는 내가 만져주는 걸 좋아했다. 내가 저를 쳐다보면 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동그란 송아지 눈 속에 거울처럼 내 몸이 비쳤는데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저녁때면 아버지가 외양간에 걸린 솥에 쇠죽을 끓였다. 나는 어느 때, 아궁이의 아버지 옆에 앉아 불에 넣어놓은 옥수수가 빨리 익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기어 나오는 불을 부지깽이로 밀어 넣곤 했는데, 그걸 내가 해보겠다고 얼굴이 벌게져서 때를 쓴 적도 있다. 송아지 엄마인 암소가 팔려갈 때 나는 송아지가 불쌍했다.

“너 고사리 꺾어 봤니? ”

영숙 이모가 갑자기 묻는 바람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아니. 먹어는 봤는데.”

“이모가 어릴 때는, 이렇게 봄비가 촉촉이 온 날 새벽이면 바구니 하나씩을 끼고 앞산으로 가서 고사리를 꺾는 게 일이었어. 통통한 고사리가 쑥쑥 올라와 있었거든. 밤새 비를 맞고 나무며 풀들이 쑥쑥 자라 있는 걸 보면 신기하고 기분이 무척 상쾌했지. 맹감나무 이파리에 파란 물이 또그르르 구르는 걸 보면, 아 보고싶다······.”

이모가 이모 같지 않게 차분해서 나는 살짝 불안했다.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했지만 이모 얘기를 조금만 들어주기로 한다.

“혜숙이 명자 정미 나, 이렇게 넷이서 우리는 몰려다녔단다. 하얀 코를 늘 달고 있어서 우리가 코보쟁이라고 불렀던 남자애 영철이도 있었고, 학교 갔다 오면서 산딸기랑 찔레순이랑 따 먹고, 토끼풀꽃으로 시계랑 반지도 만들고. ”

“나도 산딸기는 따 먹었는데. ”

나도 또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이모는 자기 말만 했다.

“ 뽕밭에서 오디 따먹던 일은 정말 신났어. 빽빽한 뽕나무 밭에 들어가 밑에서부터 올려다보면 오디가 까맣게 달려 있거든. 뽕밭을 헤매며 오디 서리를 실컷 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마나 웃었던지. 까만 오디 물이 입 주위뿐 아니라 얼굴을 다 칠해서 볼만했거든. 헐렁한 바지춤을 맨날 추켜들고 다니던 코보쟁이 영철이는 장난꾸러기였단다. 선물이라며 주먹 쥔 손을 내밀면 손바닥에 청개구리가 있는 거야. 알면서도 놀라 주곤 했지.”

영숙 이모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나는 이제 안심했다.


개구리 말을 하니까 나도 생각이 난다.

국민학교도 다니기 전이니 나는 아주 어렸던 것 같다. 오빠가 못자리에서 둥둥 떠있던 개구리 알을 건져왔다. 날계란 흰자에 까만 씨가 박힌 듯한 그것을 처음 본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이게 뭐야?

-올챙이 알이여.

그러자 곁에 있던 아버지가 참견했다.

-그게 어찌 올챙이 알이여? 깨구리 알이제.

엄마가 맞다고 대꾸했다.

-올챙이 알이 아니라 그것이 깨구락지 씨구나.

나는 ‘씨’라는 말에 다시 물었다.

-이 씨를 땅으다 심으면 깨구락지 새끼가 나와?

엄마와 아버지가 어이없어했다.

-뭐여? 깨구락지 씨를 땅에 심어야? 하하. 깨구락지가 들으믄 하늘까지 뛰겄다. 거기서 올챙이가 나오능겨. 그게 깨구락지 새끼여.

그 뒤로 나는 그 까만 씨가 올챙이가 되고 올챙이가 커서 개구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왠지 깨알처럼 조그만 그 씨가 개구리 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자꾸만 올챙이 알이라는 착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니?”

추억에 빠져있던 영숙 이모는 정신이 돌아온 듯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리고서 나를 챙긴다.

“ 너 학교 갈 시간이다 얘.”

나는 책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근데 할머니가 정말 많이 아픈가 보다. 왜 지금까지 안 일어나니?”

영숙 이모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등 뒤로 들린다. 할머니는 어젯밤 저녁도 못 먹어서 영숙 이모가 미음을 끓여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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