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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해석이 문제일 뿐

서천석 선생님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10년, 아니 15년 전에도 강남구 아이들이 소아정신과를 더 많이 찾았다. 우울증도 많고, 불안장애도 많고, ADHD도 많았다. 그건 그 아이들이 병원을 찾을만한 여건이 되기 때문이지, 그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더 심각해서는 아니다.


강남/서초/송파구에는 여타 지역에 비해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인구 대비 7-10배 존재한다. 수요가 그만큼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질병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의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많다보니 이 지역에선 진료를 보기도, 상담을 받기도 한결 쉽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아이들에게 어려움이 더 많다. 진단 가능한 수준의 문제를 가진 경우도 많고, 그 정도는 아니어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병원을 데리고 갈 사람이 없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시간과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원을 오지 못하고, 그래서 진단되지 않을 뿐이다. 공적 서비스가 더 많이 필요한데, 강남구 아이들의 우울증 유병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면 오히려 그쪽으로 국가 자원이 더 많이 분배될 수 있다. 좋지 않은 방향이다.


사교육이 아이들의 우울증을 만든다고. 사교육 걱정하는 부모도 우리 사회에서는 일부에 불과하다. 사교육에 매달리는 부모도, 그런 부모들을 보며 혀를 차는 부모도 다수가 아니다. 절반 좀 못 되는 수가 아닐까 싶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돌봄 기능을 가진 사교육 외에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못하며 자란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아니 거의 없는 부모도 많다. 그런 부모조차 없이 자라는 아이들도 많고,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정신건강 문제가 가장 많이 존재한다. 사회가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다.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걱정해줄 누군가라도 있지만 그 아이들에겐 걱정해줄 누군가가 없다. 그러니 국가가, 사회가 좀 걱정을 하고,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통계에 속아선 안 된다.

통계를 어리석게 해석해선 곤란하다.
사실 통계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해석이 문제일 뿐.


서천석 선생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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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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