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을 아침 일찍 하는 이유
가족장을 처음 해보는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드리는 감사
3일장 둘째 날 밤 11시쯤,
이제 오실 손님은 다 오셨기에 부의금을 동서와 엑셀 작업하는데
다음날 발인이 8시 반인데 6시 반에 아침식사를 해야 하니 대충 마무리하고 일찍 자란 말에
그렇게나 일찍? 의아했지만, 뭐 그러려니 했다.
큰돈을 계산하는 데다 소중한 걸음 해주신 문상객들 정리를 대충 할 수 없기에
꼼꼼히 교차 확인하고.
시누까지 셋이서 맥주 한 잔 하고
새벽 4시 즈음 졸고 있으려니
옆 빈소는 발인이 7시라 그때부터 사람들이 부산했더랬다.
아이들도 느낌이 이상했는지 5시부터 스스로 잠이 깨고, 오전 6시에 식당일 봐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정산도 하고 남은 음식도 정리한 뒤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8시부터 제사를 지냈다.
시아버님이 어찌나 잘 사셨는지
가족들과 운구해주려 남은 신랑 친구들, 시동생 친구들 외에도
발인을 지켜보려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시아버지 친구분들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들이 진심으로 애통해해 주시는 모습은 또 다른 슬픔이었다.
8시 반에 관을 버스에 싣고, 근처 화장터로 이동해서,
유골함에 옮겨지길 기다리니 12시가 되어있었고, '잔디장'으로 장사를 지내니 1시.
다시 장례식장으로 위패와 영정사진만 들고 와서 각자 차로 옮겨 타
초제와 49재까지 지내줄 절로 이동.
절에서 스님이 염불을 외며 간단한 제사를 끝내고 나니 3시가 다 되어가고.
근처에서 간단히 국밥 먹고,
원래는 시댁에 가서 남은 음식이며 일회용품 나누는 등 정리를 하기로 했었는데
애들이 자서 난 집으로 오고, 샤워하고 나오니 저녁 5시가 다 되어갔다.
늘 장례식장 가면 돈 내고 밥만 먹고 나오고,
발인 지켜봤던 장례도 발인제에 가서 꽃만 갖다 놓고 장지까지 갔었던 때에도 여자라서 운구까지 안 해봐 정확히 몰랐는데
가족장을 치러보니 장례절차가 이토록이나 길고 험난한 일이구나,
큰 인생 경험을 하게 되니 배운 게 많다.
아버님,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저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님 가르침대로
늘 겸손하게.
성실하게.
노력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고 하늘이 알아주니 서러워하지 않고 부지런히.
감사하며
잘 살겠습니다.